“역사는 패러디가 아니다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가장 극적이고 파장이 컸던 제4공화국에서 제5공화국으로 넘어가는 역사적 사건을, 그리고  정치 드라마인 MBC의 ‘제4공화국’과 SBS의 ‘코리아 게이트’가 비교적 높은 시청률을 보이며 방송되고 있다. 또한 그에 대해 신문ㆍ방송은 물론 PC통신을 통해서도 시청자의 반응과 의견이 적극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정치 드라마가 시청자에게 이렇듯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은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직접적으로 다루지 못하고 허구적 성격을 기초로 하는 드라마를 통해 다룰 수 밖에 없는 우리의 상황에 대한 자조와 그동안 충족되지 않았던 알고 싶은 욕구를 조금이라도 해결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를 반영하고 있음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방송사에서 이들 정치 드라마를 통해 시청자에게 단지 흥미와 재미만을 전달해주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건에 대해 진실을 규명하고 나아가 역사를 기록하려는 의지를 강하게 보이고 있는 것도 시청자의 호응을 얻고 있는 한 이유이다. 또 한편으로는 드라마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인물들에 의해 역사가 격변했고 지금까지 정치ㆍ사회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으며 그로 인한 상처를 아직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아울러 5ㆍ18 불기소 처리와 전직 대통령의 부정축재 파문으로 온 국민을 경악하게 하고 정치적 불신은 물론 인간적인 비애마저 느끼게 하는 일련의 정치상황의 본 뿌리가 두 드라마를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져 시각적인 만족을 주는 것도 중요한 이유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강하게 어필하고 있는 정치 드라마가 시청자의 호응은 물론 우려도 함께 자아내고 있다. 그것은 권력에의 굴복, 공정성의 외면, 시류에의 영합등 그동안 방송이 보여준 행태가 장르의 특성상 극히 민감하고 미묘한 문제를 다루는 ‘정치 드라마’에서 다시 나타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에 기인하는 것이다.
  즉 동일한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도 사람마다 제각각의 시각을 가질 수 있고, 특히 관련 인물이 생존하고 있어 역사적 판단에 논란의 여지가 제기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세력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쪽의 행정을 왜곡하거나 사태를 축소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더욱이 당초에 유신시대를 집중조명하기로 했던 두 드라마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이 불거져 오고 그 사태가 점차 확대되자 드라마 내용의 상당부분이 이 사건의 추이에 따라 가감첨삭되고 있으며, 인물에 대한 묘사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식의 제작태도는 역사 가치관의 혼란을 야기하고 중요한 역사적ㆍ정치적 사건을 단지 드라마의 한 소재 정도로 평가 절하하는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정확한 재현을 위해서는 작가와 연출자의 객관적인 시각 유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지 못하면 결국 내용의 흥미만을 부각하는 선정주의로 흐르게 되고 이로 인해 진실을 보고 듣기 원하는 시청자의 바람을 저버리게 될 것이다.
  드라마를 제작하는 과정에는 철저한 고증과 특정한 사건에 대한 진위여부와 확인이 함께 요구된다. 정치 드라마와 같은 다큐멘터리 드라마는 사실에 허구를 가미하여 만들어지기 때문에 지나치게 드라마적 재미에 집착하거나 드라마적인 현실이 실제 상황인 것처럼 제시될 가능성이 항상 잠재해있다. 이것은 시청자에게 혼란을 줄 수 있으며, 선의의 피해자를 만들어내고 또 한편으로는 특정인에게 역사적인 면죄부를 주게 될 위험을 수반한다.
  정치 드라마가 시청자의 바람을 외면하지 않고 역사의 충실한 기록자가 되기 위해서는 결국 시청률 경쟁이나 시류에의 편승, 연출자의 과욕, 내적ㆍ외적으로 있을 수 있는 압력을 얼마나 극복하는가가 관건인 것이다.
  지금 정치 드라마에서 보여주고 있는 시청자의 호응은 시청자가 단지 드라마적 재미만을 원해서가 아니다.
  시청자는 ‘그 때 그 사건들’의 진실을 알고자 하며 객관적인 해석을 원한다. 따라서 정치 드라마는 이러한 시청자의 알고자 하는 욕구를 충실히 반영함은 물론 객관적이고도 신중한 역사의 재현을 통해 역사의 복원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또한 정치 드라마가 진정한 정치드라마가 되기 위해서는 방송사의 노력은 물론 시청자의 책임있는 감시와 신중한 비판이 함께 있어야 한다. 역사는 특정인의 손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그 시대 사람이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경란<한국 방송위원회 정책연구실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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