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야 하나

  처음 대학에 들어왔을 때였다.
  선배님들을 따라다니며 이루어지는 많은 술자리와 이야기판 속에서 남자들의 대화중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전설과도 같은 군대시절 이야기였고 군대에 가지 않은 우리들은 그런 복학생 선배님들이 그렇게 부러웠었다.
  이렇게 대학에 다니는 남학우들이 갖는 고민들 중의 하나가 바로 군대 문제일 것이다.
  자유와 낭만이 넘치는 생활에서 통제와 복종이 요구되는 군대생활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게도 요란한 술자리와 가슴 시린 이별을 뒤로 하고, 푸른 제복을 입은 ‘군바리’가 되어 입대전의 화려한 날들을 추억하며 시간을 보내던 군대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도 기다리던 제대!
  학교에 돌아와 복학신청을 하면서 드디어 나도 자랑스런 예비역의 일원이 된다는 사실에 혼자 웃었던 생각이 난다.
  하지만, 막상 시작된 나의 복학생 생활은 상상했던 것처럼 멋지고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모든 복학생들의 생활은 아니지만 일반적이라고 생각하는 복학생의 하루를 살펴보면 복학생의 비애를 조금 더 실감할 수 있을 것 같다.
  새벽 6시에 어머님의 아침잠을 설치게 하면서 아침밥을 얻어먹고, 영어회화가 나오는 워크맨을 들으며 버스에 몸을 싣는 것으로 우리들의 하루는 시작된다.
  도서관까지 가는 길에 수많은 사람 행렬을 보면서 긴장감과 경쟁의식을 느낀 우리의 복학생은 열악하기 그지없는 도서관중에서 그나마 좋다는 3열람실에 가방을 내려 놓고서야 겨우 한숨을 돌린다.
  주위를 둘러보다가 역시 비슷한 처지의 복학생 동기를 발견, 그와 함께 커피 한잔을 마시며 시험정보를 주고받고 취업경쟁률을 이야기하며 막막한 취업에의 절박함을 다시 한번 느낄 수 밖에.
  영어단어를 정신없이 외우고 수업시간에 맞추어 강의실을 찾아 뒷자리에서 토플 책을 읽다 문득 고개를 돌려보니 모두들 예비역 일색이었다. 창문밖에서 간혹 들려오는 구호소리, 건물 벽을 채우고 있는 각종 집회공고나 모임을 알리는 대자보도 더 이상 복학생에게 다가서지 못할 머나먼 일처럼 다가선다.
  후배가 꼭 나오라고 몇번이나 당부한 개강모임에 그래도 사람 모이기를 좋아하는 동기 몇을 모아서 참석해본다.
  술잔이 돌고 점점 대화가 많아지지만 복학생들은 대화의 중심에서 밀려나고 술기운에 용기를 내어 우스개소리를 한마디했다가는 단번에 썰렁하다는 반응과 폭소속에 무안함을 느껴야한다.
  예전에는 재미없는 이야기라도 같이 웃어주고, 들어줬는데 요즈음은 끼리끼리 모여서 이야기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결국 2차로 노래방을 가는 후배들을 보내고 노래방비가 아까운 예비역들은 근처 소주방에서 술잔을 기울인다.
  어느덧 그들의 입에서는 작은 목소리로 ‘님을 위한 행진곡’이 흘러나오고 지난날 선후배가 함께 어울려 가슴 뜨거운 청년학생이 살아야할 길에 대해서 이야기하느라 밤이 깊었던 막동의 정경이 흑백영화처럼 흘러간다.

정훈영(정외ㆍ4)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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