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보영

벽을 앓는 모든 것은 집이 된다. 벽에 중독된 모든 것은 벽이 된다.(···) 벽을 뚫으면 벽이 딸려 나오고. 세상 모든 문장의 종지부와 벽은 또 어떻게 다를까? 봄이 개과천선한들 봄이 봄이듯 멀리 있는 모든 것은 벽. 하나의 벽은 다른 벽을 해명하는 데 일생을 걸지만. 벽에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고. 아니,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것은 벽.(···) 벽은 믿을 수 있는 만큼 아프고 믿을 수 있는 만큼 헤어진다. 벽은 언제나 넘치거나 모자라다. 벽이 벽을 실토하는 사이 벽은 어디로 갔나? 벽은 벽을 벗어도 벽이 되었다. 
 

 하늘이 파랗던 초여름, 친구와 함께 일광 바다에 갔습니다. 다정한 말들로 시작한 대화였지만, 몇 시간 뒤 우리에게는 벽이 생겼지요. 하늘과 바다는 끝없는 파란색을 우리들의 마음에 심어주고 있었지만, 제 마음에는 작은 불안감이 움텄습니다. 너무 오랜만에 만났기 때문일까요? 친구의 변화를 알아채지 못했기 때문일까요? 아주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 사이에 벽이 생겼고, 그날 약속은 불편함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벽을 만들고 살아갑니다. 어느 사람들은 벽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단절의 의미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 다른 시선으로 벽을 바라보면, 벽이란 사람마다의 고유성입니다. 이런 시각으로 벽을 해석하면, 이 시에서 말하고자 하는 벽의 의미에 대해 조금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문장에서 ‘벽을 앓는 모든 것은 집이 된다.’ 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이 문장에서 벽을 앓는 모든 것이란, 자신의 개별성과 독립성을 지키고 주장하려는 사람들일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리고 ‘하나의 벽은 다른 벽을 해명하는 데 일생을 걸지만. 벽에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고.’ 이 문장에서는 고유성을 가진 한 사람이 타인을 이해하고 답을 찾으려고 일생을 걸 정도로 노력하지만, 결국에 그 사람에게서는 자신이 원하는 답을 찾을 수 없다고 해석됩니다. 또한 ‘벽은 믿을 수 있는 만큼 아프고 믿을 수 있는 만큼 헤어진다.’ 에서는 다른 사람에 대한 신뢰와, 신뢰가 허물어진 두 상황을 나타낸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벽>에서 화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고유성입니다. 벽은 단절을 뜻하기도 하지만, 위험한 것으로부터 나를 지켜준다는 뜻으로도 해석이 됩니다. 이처럼 시에서 말하는 벽의 의미는 사람의 고유성이며 개별성이죠. 우리는 모두 다르기 때문에,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벽은 벽을 벗어도 벽이 됩니다. 그러므로 나는 나로부터 벗어나려고 해도 나입니다. 나는 다른 누군가가 지닌 고유함을 가질 수 없으니 우리는 우리를 지키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벽’이란 무엇인가요? 저는 사람마다의 고유성이라고 생각했지만, 여러분들은 더 다채롭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시선으로 시를 감상하듯, 벽 또한 여러 시선으로 보는 것은 어떨까요? 여름날 이후 친구와의 사이에 생긴 벽은 관계의 거리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하늘이 파랗던 날, 벽의 기억도 어느 초여름의 날씨처럼 자연스러운 것이 될 수 있겠지요. 

 

박시현(국어국문학·3)
@garnetstar__

저작권자 © 충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