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대신문에 기고한 지 세 번이나 지났는데, 내 글은 통일성 없이 중구난방이다.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역시 아직 안정되지 않은 마음으로 글을 쓴 것이 원인 같다. 마감 당일에 급하게 써서 낸 글이 대부분인 데다 투고 텀이 꽤 길어서 이전의 글을 잊기 일쑤다. 내 글을 자주 들여다보는 것도 아니라 이전 글은 기억에서 쉽게 사라진다.
  어떤 날은 나름 체계를 잡고 쓰기도 했지만 어떤 날은 밑도 끝도 없이 추락하는 기분에 의무감 하나로 글을 써내기도 했다. 그동안 나는 여전히 병원과 상담을 전전하며 살았다. 상담 내용이나 의사 선생님께 들은 내용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쓰겠다던 다짐은 잊지 않았으나 여태껏 쓴 적이 없다. 정리되지 않은 마음으로 글을 쓰는 게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그에 대한 글을 쓰고자 한다.
  병원은 한 곳으로 고정돼 있지만, 상담 선생님은 꽤 많이 바뀌었다. 병원에서는 상담과 약물 복용을 겸할 것을 권유하셨고, 여러 곳을 전전하며 상담을 받았다. 지금의 상담 선생님은 적당히 친절하고 객관적인 분이다. 상담 선생님은 내가 사적인 이야기를 늘어놓게 놔두기도 하지만 어떤 부분에서 문제점을 발견하면 그 부분에 대해 적절히 질문해주신다. 가끔 고민거리를 한 아름 들고 가면 같이 고민해주시며 더 현명한 방법을 택하도록 도와주시기도 한다. 물론 답은 내가 내 안에서 찾는 것이 맞는 것이겠지만, 목적지에 가는 지름길을 알려주는 사람이 상담 선생님이라 생각한다.
  병원에서도 상담을 아예 안 하는 것은 아니다. 10분에서 15분의 시간 동안의 짧은 대화가 어쩌면 바깥에서 나누는 대화들보다 밀도 있는 대화일 수 있다. 자신의 상태를 정확한 병명으로 확정하는 것이 누군가에겐 독이 될 수도 있지만, 나의 경우에는 득이었다. 내가 왜 이런 것인지, 이런 기분은 왜 일어나는 것인지,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 것을 무엇이라 부르는지, 선생님께서 명명해주실 때마다 거기엔 어떤 형체가 생기는 것 같았다. 추상적인 상태였던 마음이 선명해지는 기분. 일단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그것을 인정하고 똑바로 바라볼 수 있으니까. 물론 그것의 이름을 알았다고 해서 그게 사라지거나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내가 그것을 안다는 것이 내게는 중요했던 것 같다.
  이래저래 오늘의 글도 역시 갈피를 못 잡고 흔들리는 글이 된 것 같아 마음이 편하지 않다. 그래서인지 다음 번엔 더 나은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생각이 건강한 생각이라 느낀다. 다음번에 더 나아져야겠다는 다짐은 약속이고 발전하겠다는 의지이니까. 여전히 새벽에 떨어지는 마음들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하지만, 그다음에 밝아오는 빛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안다. 지금은 심해에 잠겨 있지만, 어스름하게 비치는 불빛에 누군가의 마음이 녹기를 바라며, 그리고 나의 글이 누군가에게 그런 글이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안미진 (국어국문학·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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