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사는 여자

  10년째 혼자 사는 여자다. 최근엔 코로나19 사태로 방에 있는 시간이 늘었다. 집안일 하는 손이 좀 빨라졌을까 했는데, 오늘 낮에 먹은 달래장 만드는 데 한 시간이 걸렸다. 요령이 없어 주방에 내내 서서 달래를 손질했더니 허벅지가 잔뜩 땅겼다. 두 시가 다 돼 먹는 점심은 혼자여도 맛있을 수밖에 없었다. 점심을 먹은 후에는 무거워진 다리를 의자에 내려두고 책상 앞에 앉아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일곱 평짜리 방에서 온종일 보내는 내가 침대로 가지 못하게 분리해 둔 공간에서다. 기력이 넘치던 사람도 녹아내리게 만드는 푹신한 침구는 밤에만 친하고 낮에는 사양해야 하는 곳이다. 그곳에 누워버리면 일곱 평 방은 한 평이 된다.
  대전에는 나 같은 1인 가구가 20만 가구 더 있다. 전체 가구 수의 33%가 넘어 전국에서 1인 가구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일하는 형태가 변하고 가치관이 바뀌고 지역 이동이 쉬워지면서 생긴 당연한 결과라지만 대전은 다른 지역보다 더 많은 편이다. 그래서인지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움직임이 눈에 보인다. 시청에서는 1인 가구 네트워킹 프로그램을 주선하고 시의회는 1인 가구를 위한 정책 간담회를 연달아 개최했다.
  그중 3월 30일에 대전시의회에서 열린 청년 1인 가구 의견 청취 간담회에 다녀왔다. 시의원, 구의원과 한 자리에서 정책 간담회를 한다고 너무 긴장했나 보다. 논문을 읽고, 일자리, 주거, 정신 건강에 대한 정책 대안을 준비하고, 정장을 차려입고 갔더니 혼자 좀 힘주고 간 모양새였다고 멋쩍어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떤 사람에게는 그 자리에 힘주고 갈 수밖에 없는 절실함이 있다.
  2021년의 대전에서 살아가는 청년은 높이를 알 수 없는 벽에 갇힌 느낌이 든다. 정부에서 숫자와 업적을 위해 양산하는 '청년 일자리'는 7개월짜리 체험판으로 퇴직금을 받기는커녕 이력서에 쓰기도 민망한 기간에 상여금 없는 생활 소득만을 지급한다. 주거 비용을 낮추고 싶어도 전세 매물이 행정동을 통틀어 하나, 두 개 있으니 수강 신청하듯 빠르게 낚아채지 않으면 월 수십만 원의 고정비용을 지출해야 한다. 대전시 집값이 싸다는 것도 ‘라떼’이야기. 2020년에는 주택가격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많이 올랐다. 집이 아닌 방에 사는 대전 청년 1인 가구는 20%가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곳에 살고 있다. 대전시가 전체 광역시 중 자살률이 가장 높다는 수치는 이 모든 통계의 합이다.
  그런데 1인 가구 정책 간담회의 여성 청년 참가자들은 여기에 더불어 조금 다른 이야기를 했다. 벽간 소음과 안전고리 없는 현관문 때문에 집에 있는 시간이 불안하다고 했다. 안전고리를 달아달라고 요청했다가 설치를 불편해하는 월셋집 주인과 갈등 상황에 놓인다. 결국 안전고리를 달지 못해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방에 있으면서 다음 계약을 연장할 수 있을까 하는 또 다른 불안이 생긴다. 1층 창문 밖에서 내 방 안을 쳐다보고 있는 사람, 폐쇄회로가 없는 길거리, 밤늦게 떠드는 옆집에 항의했다가 당할 수 있는 보복 등 그들은 세세한 종류의 두려움을 표현하며 안전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CCTV가 공개돼 강간미수와 주거침입 논란이 일었던 신림동 사건과 대전시에서 일어난 주거침입강간 사건을 고려하면 이들의 요구는 가장 사적인 영역에서조차 편안할 수 없는 현실을 반영한다.
  여성 청년의 불안감은 단지 얇은 벽으로 둘러싸인 방에서 만들어진 상상이거나 그들의 마음속에서 피어오른 개인적인 감정에서만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언론에서는 코로나19로 가장 타격받은 집단으로 대면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여성과 청년을 꼽았다. 여성이며 청년인 20대 여성은 작년 한 해 세 명 중 한 명꼴로 퇴직을 경험했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대전세종연구원에 따르면 대전시 산업구조의 80% 이상이 서비스업이며 20대 대졸 여성의 60%가 서비스직에 종사한다고 하니 공적 영역에서 사라져간 여성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을 했다.
  나는 그 와중에 또 다른 이야기를 했다. 작년 상반기 자살을 시도한 20대 여성은 전체 중 32%로 전 세대와 연령을 통틀어 가장 많았다. 이들의 자살률은 전년과 비교해 25% 증가했다. 정부에서는 그 원인을 코로나19 이후 경제적 취약계층으로서의 고용 불안,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고립감, 돌봄 노동의 누적으로 파악했다. ‘조용한 학살’로 불리는 이 현상을 국무총리가 나서서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벌써 수개월이 흘렀다. 내 주변에는 스스로 정신의학과를 찾거나 그조차도 시도하지 못하는 이들이 너무 많이 보인다. 한 평의 침대에서 밖으로부터의 해일을 견뎌내고 있는 여자들이.
  대전시 정신건강복지센터와 연계 사업을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며, 그것을 받아적는 의원을 보며 안도감을 느끼던 중에 옆자리에서 와장창하고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방금 말씀하신 분 다음에 이런 말씀 드려 죄송하지만……. 제가 아들이라 어머니를 많이 돕지 않아서 그런지 저는 청소하는 게 제일 어려웠어요. 진짜 방이 너무 더럽고 정리가 안 됐고요. 쓰레기 처리도 그렇고, 반찬 하는 게 1인 가구로서 제일 힘들었어요” 그것은 차근차근 쌓아 올리던 논의의 층위를 위에서부터 와르르 깨부수는 문장이었다. 무겁던 머리가 하얀 포탄을 맞은 것 같았다. 같은 대전에 산다고 해서 절대 같은 일상을 살지 않는다. 같은 청년이라고 해서 절대 같은 고민을 하지 않는다. 청년 1인 가구를 위한 방 정리 서비스 같은 프로그램이 생기고 예산이 배정되면 어쩌나 걱정이 됐다.
  그보다는 주거 빈곤이나 저임금 비정규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정책, 집 주변 가로등을 밝히는 사업이 마련되길 바라며 덧붙일 말이 있다. 우리는 노력해서 쟁취하라는 말을 평생 듣고 자란 세대다. 산업의 구조가 바뀌고 친구들이 불행으로 죽어가는 때에 해야 하는 노력은 행복과 건강을 추구할, 온당한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다.
  약자의 삶을 들여다보고 누구나 약자가 될 수 있음을 감각하는 것이다. 더딘 변화를 비판하지 않고 불평등한 재난의 결과를 못 본 척 넘긴다면 한 칸 한 칸의 방에 한 명씩 떨어져 사는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공연화 (여성젠더학과 석사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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