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1.4.14 수 13:42
상단여백
HOME 충대신문 문화·문예
나의 시, 당신의 노을
충대신문 | 승인 2021.04.14 10:57|(1168호)

미니멀리스트


                                            강혜빈


찢어진 이불을 덮고 잤다


오랫동안
찢어진 마음에 골몰하였다


깨어날 수 있다면
불길한 꿈은 복된 꿈으로
(···)
기지개를 켜듯 이불의 세계는
영원히 넓어지기


모름지기 비밀이란 말하지 않음으로
책임은 다 한 것으로

 

어디든 누가 살다 간 자리
어디든 누가 죽어 간 자리

 

오랫동안 비어있던 서랍은
신념을 가지게 된다
(···)

 

이 세계에서는 매일매일 근사한 일이
무화과 스콘 굽는 냄새가
누군가
3초에 한 번씩 끔찍하게
(···)

 

내가 나인 것을 증명하지 않아도 될 때
긴 잠에 빠진 나를 흔들어 깨울 때

 

아래층에서 굉음이 울렸다

 

  첫 문장에서 ‘찢어진 이불’이 등장합니다. 2연에서 ‘찢어진 마음’ 이 등장하며 ‘찢어진’ 이 반복되죠. ‘찢어진 마음’에 오랫동안 신경을 쏟았다고 하는 것은 결국 자신, 혹은 나아가 다른 무엇으로부터 느꼈던 상실감과 아픈 상처겠지요. 화자는 그 ‘찢어진 이불’을 덮고 잠자리에 듭니다.
  시의 중간 부분을 보면 각기 다 다른 상황이지만 삶과 죽음, 생명과 상실의 사이에 하나의 빈자리가 존재합니다. 이어서 ‘오랫동안 비어있던 서랍’이 등장하고 그 서랍은 ‘신념’을 가지게 된다고 합니다. 이 서랍은 생명과 상실 사이의 빈틈입니다. 감정과 감정 사이의 자리이기도 하죠. 화자는 이 틈에 ‘신념’이 들어갈 자리가 있다고 믿습니다. 상처받은 화자는 찢어진 이불을 덮고 잠에 들어 꿈을 꾸지만, 그 꿈이 언젠가 끝나고 깨어날 것임을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무화과 스콘 굽는 냄새’와 ‘누군가/3초에 한 번씩 끔찍하게’, 사랑의 부재를 다시 꿰매어 주는 것과 사랑의 시작을 알리는 질문, 그 두 사이의 빈자리는 화자의 신념으로 채울 수 있고 그 신념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은 ‘아래층에서 굉음이 울렸다’로 시가 끝납니다. 저는 이 문장에서 오히려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세상의 무언가가 파괴되거나 상실된다는 것은 시간이 흐른다는 것이며, 시간이 흐르면 생명이 탄생하거나 상처가 낫기도 합니다.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은 시간이 흐른다는 것이며, 당연하기에 편안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시는 찢어진 마음의 빈자리에서부터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갖게 된 시였습니다. 어떤 이유로 인해서 지금 아픈 마음을 지니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마음은 단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더 좋은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기도 하죠. 다만 다시 일어날 힘이 생길 때까지 마음의 틈을 잘 지켜보길 바랍니다.

박시현(국어국문학·3)
@garnetstar___
 

충대신문  news@cnu.ac.kr

<저작권자 © 충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305-764 대전광역시 유성구 대학로 99  |  대표전화 : 042)821-6141  |  팩스 : 042)821-724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금영
사장 : 이진숙  |  편집인, 주간 : 이금영  |  충대신문편집국장 : 박채원  |  충대포스트편집국장 : 이재윤  |  충대방송편성국장 : 성민주
Copyright © 2011-2021 충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