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스트


                                            강혜빈


찢어진 이불을 덮고 잤다


오랫동안
찢어진 마음에 골몰하였다


깨어날 수 있다면
불길한 꿈은 복된 꿈으로
(···)
기지개를 켜듯 이불의 세계는
영원히 넓어지기


모름지기 비밀이란 말하지 않음으로
책임은 다 한 것으로
 

어디든 누가 살다 간 자리
어디든 누가 죽어 간 자리
 

오랫동안 비어있던 서랍은
신념을 가지게 된다
(···)
 

이 세계에서는 매일매일 근사한 일이
무화과 스콘 굽는 냄새가
누군가
3초에 한 번씩 끔찍하게
(···)
 

내가 나인 것을 증명하지 않아도 될 때
긴 잠에 빠진 나를 흔들어 깨울 때
 

아래층에서 굉음이 울렸다

 

  첫 문장에서 ‘찢어진 이불’이 등장합니다. 2연에서 ‘찢어진 마음’ 이 등장하며 ‘찢어진’ 이 반복되죠. ‘찢어진 마음’에 오랫동안 신경을 쏟았다고 하는 것은 결국 자신, 혹은 나아가 다른 무엇으로부터 느꼈던 상실감과 아픈 상처겠지요. 화자는 그 ‘찢어진 이불’을 덮고 잠자리에 듭니다.
  시의 중간 부분을 보면 각기 다 다른 상황이지만 삶과 죽음, 생명과 상실의 사이에 하나의 빈자리가 존재합니다. 이어서 ‘오랫동안 비어있던 서랍’이 등장하고 그 서랍은 ‘신념’을 가지게 된다고 합니다. 이 서랍은 생명과 상실 사이의 빈틈입니다. 감정과 감정 사이의 자리이기도 하죠. 화자는 이 틈에 ‘신념’이 들어갈 자리가 있다고 믿습니다. 상처받은 화자는 찢어진 이불을 덮고 잠에 들어 꿈을 꾸지만, 그 꿈이 언젠가 끝나고 깨어날 것임을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무화과 스콘 굽는 냄새’와 ‘누군가/3초에 한 번씩 끔찍하게’, 사랑의 부재를 다시 꿰매어 주는 것과 사랑의 시작을 알리는 질문, 그 두 사이의 빈자리는 화자의 신념으로 채울 수 있고 그 신념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은 ‘아래층에서 굉음이 울렸다’로 시가 끝납니다. 저는 이 문장에서 오히려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세상의 무언가가 파괴되거나 상실된다는 것은 시간이 흐른다는 것이며, 시간이 흐르면 생명이 탄생하거나 상처가 낫기도 합니다.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은 시간이 흐른다는 것이며, 당연하기에 편안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시는 찢어진 마음의 빈자리에서부터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갖게 된 시였습니다. 어떤 이유로 인해서 지금 아픈 마음을 지니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마음은 단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더 좋은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기도 하죠. 다만 다시 일어날 힘이 생길 때까지 마음의 틈을 잘 지켜보길 바랍니다.

박시현(국어국문학·3)
@garnetstar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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