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데리다 저, 『거짓말의 역사』

  오늘날과 같은 정보화 시대에는 수많은 정보가 실시간으로 쏟아지곤 한다. 우리 사회에서 복제되듯이 생산되는 뉴스나 소셜미디어를 통해 널리 퍼지는 정보들을 예로 들 수 있다. 그것에는 거짓도 참된 정보도 속해있지만, 거짓이나 참이라고 분류하기 어려운 애매한 속성을 지닌 정보들도 포함돼 있다. 이 애매한 정보들이 권위적인 지위와 결합할 때, 그것은 참된 진실로 인식되기 쉽다. 이후에 그것이 거짓된 정보임이 밝혀지더라도 이미 사실처럼 수용된 인식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이러한 우리 시대의 모습은 정보제공자나 정보수용자의 윤리적 의식의 필요성과 함께 또 다른 지점을 생각해보도록 한다. 바로 ‘거짓’은 무엇이고, ‘거짓’이 퍼져나가는 이유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이다.
  데리다의『거짓말의 역사』는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미리 앞서서 접근하고 있는 책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중심 문제는 ‘참세상이라는 관념만을 생산하는 이야기 꾸미기’, 즉 진실에 관한 상상의 서사이다. 이에 다다르기 위한 첫 관문은 거짓말이 무엇이며 어디까지 거짓말의 범주에 해당하는지를 점검하는 일이다. 전통적으로 “‘거짓말한다는 것’은 참말을 하면서도 타인을 속이기 ‘원한다’는 것”(16쪽) 이기에 의도적인 행위이다. 그러므로 데리다는 거짓말의 내용보다는 상대방이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나 아렌트는 현대사회에서 거짓말이 현실, 특히 정치 투쟁의 장에서 과잉되게 나타난다고 본다. 데리다는 아렌트의 거짓말 정의를 점검하기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자행된 범죄의 사례 속에서 거짓말의 문제에 접근한다. 인류적 차원의 문제가 언급될 때, 국가의 수장은 국가의 책임을 부인하거나 이를 다른 이에게 전가하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 이러한 묵인들은 국가의 공식적 사과문을 통해 해체되기도 한다. 여기서 데리다는 현대의 거짓/진실의 문제가 수행성에 따라 달리질 수 있음을 언급한다. 즉, 수행적 발화의 성공이나 법 제정과 같은 수행적 폭력이 공적 진실을 만들고 그것에 힘을 부여하는 요인이 된다. 오늘날의 미디어는 이러한 진실의 뒤바뀜에 함께 작용하는 주된 매체 중 하나이다. 1995년 <뉴욕 타임즈>에 기재된 기사는 사실과는 다르지만 이미 진실이 돼버린 반-진실의 사례이다. 현대의 반-진실들은 거짓말과는 거리가 있다. 왜냐하면 이들은 속임의 의도보다 진실의 효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데리다의『거짓말의 역사』는 참/거짓의 진위 판단을 넘어서서 수행성의 차원에서 거짓말을 파악한다. 이는 기존에 존재한 거짓말의 개념 체계를 해체함으로써 새롭게 거짓말, 거짓말의 역사를 바라보기 위한 시도이다. 이는 거짓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진실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증거만큼 증언도 중요하다. 그런데 증언은 거짓말과 유사하게 참/거짓의 이원대립체계에서 어느 한쪽에 온전히 포함되기 어렵다. 즉 데리다는 거짓말의 개념이 해체되어야 진실 규명에 필요한 증언까지 이해 가능한 대상이 된다고 생각한다.
  『거짓말의 역사』는 오늘날 우리 시대에 새로이 등장한 문제들에 대해 생각할 지점들을 여러 개 던지는 책이다. 이 책은 강연 형식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데리다의 세미나에 참석하여 설명을 듣는 것처럼 흡입력이 있다. 그렇지만 데리다가 제기하는 문제들과 그것들을 펼쳐가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특히, 반-진실과 거짓말이 분리되면서 거짓말이 일상적인 의미 이상으로 복잡한 문제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참과 거짓만으로 증명이 불가능한 무엇들, 우리의 삶 도처에 부유하는 이것의 정체를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는 우리의 앎 너머에 존재할 수 있는, 존재해야만 하는 역사의 가능성을 남겨두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 삶에 다양하게 존재하는 거짓말의 효과를 생각하며, 거짓을 해체하고 그 너머의 진실을 상상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이하은 (국어국문학과 박사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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