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기점이라는 시작점

  모든 사람에게 공통으로 주어진 조건, 시간은 앞으로만 간다. 또 하나의 문제점은 시간은 단지 앞으로만 가는 것이 아니라 그가 지나가는 모든 부분을 바꾸며 지나간다는 점이다. 시간을 붙잡을 수 없기에 변화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시간은 매우 이기적이기 때문에 누구도 변화를 거부할 수는 없다. 그저 순응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변화를 마주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정신을 차리고 있지 않으면 휩쓸려 갈 것이 명확하기에 오늘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닐까.
  보름달이 기울 걸 알기에 초승달만을 바라보고, 져버릴 걸 알기에 활짝 핀 꽃을 보고도 미소를 짓지 못한다. 달이 차면 기울고, 꽃이 피면 지는 것, 당연하지만 슬픈 이야기이다. 오랜 친구의 “너는 여전하구나”라는 말을 좋아하는 나는 변화라는 단어가 두렵다. 계속해서 무한정 변화하다 보면 언젠가 나를 잃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는 것은 내가 나름대로 고뇌하며 고른 선택의 최종이다. 즉 지금까지의 나의 모든 기억과 경험의 산물이다. 변화한다는 것은 이 모든 고뇌를 한 번에 뒤바꿔야 한다는 뜻이다. 내가 보고 싶지 않아 마음속 깊숙이 숨겨둔 것들을 마주해야만 하게 될 수도 있다.
  이 변화는 폭풍과도 같다. 한순간에 찾아와 순식간에 많은 것을 바꿔버린다는 점이 닮았다. 이런 변화의 바람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큰바람을 마주한 나무는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하지만, 땅을 단단히 붙잡고 바람에 흔들린다. 바람이 세다면 세게, 미풍이라면 약하게. 그저 흔들린다. 바람에 저항하기 위해 흔들리지 않으면 말라버린 나무들과 함께 부러지게 될 것이다. 이와 비슷하다. 변화를 앞에 뒀을 때는 그저 그 변화가 지나갈 때까지 흔들리면 되는 거다. 흔들리는 과정이 고통스러울 수도, 생각보다 길 수도 있다. 자연스럽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싹을 틔우고 떨어뜨리는 흐름에 스며드는 것이다. 단단한 뿌리를 의지한다면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변화를 버티기 위해서는 나를 붙잡아 줄 수 있는 뿌리가 필요하다. 이것이 시간에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이고 변화에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뿌리는 나를 강하게 붙잡을 수 있어야 하며 동시에 나를 살아가게 만들어야 한다. 남의 뿌리를 빌릴 수 없기에 나만을 위한 뿌리를 스스로 찾아야만 한다. 연속되는 변화 속에서 남아 있기 위해 불변하는, 나임을 확신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이 무언가를 정체성이라고 부른다.
  변화의 시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분기점이 나의 앞에 놓여 있다면 한 번은 돌아보았으면 좋겠다. 중심이 없는 변화는 금방 시간의 흐름 속에 사라질 것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나에 관한 모든 것에 의문을 가져 본다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우유보다는 물, 무지갯빛으로 갈라진 하늘 그리고 그 위에 걸린 초승달.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 것이다. 나의 정체성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기 때문이다.

권사랑 (정보통계학·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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