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박준

 

철봉에 오래 매달리는 일은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폐가 아픈 일도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눈이 작은 일도
눈물이 많은 일도
자랑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눈에서
그 많은 눈물을 흘렸던
당신의 슬픔은 아직 자랑이 될 수 있다

나는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한다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하는 것은

땅이 집을 잃어가고
집이 사람을 잃어가는 일처럼
아득하다

나는 이제
철봉에 매달리지 않아도
이를 악물어야 한다

이를 악물고
당신을 오래 생각하면

비 마중 나오듯
서리서리 모여드는

당신 눈동자의 맺음새가
좋기도 하였다

-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中

 

  이 시의 제목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겁니다. 슬픔은 부정적인 감정으로 치부되는데, 화자는 이 슬픔을 자랑이 될 수 있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이 제목은 시에서 중요한 문장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1연부터 살펴보면, ‘철봉에 오래 매달리는 일’ 은 자신이 이뤄낸 성과를 뽐내는 행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화자는 이 일은 더 이상 자랑이 되지 않는다 합니다. 2연의 ‘폐가 아픈 일’은 자신의 고통과 아픔을 강조하는 행동을 말합니다. 3연으로 넘어가면 ‘눈’과 ‘눈물’이란 단어들이 나옵니다. 눈이 작은 일도, 눈물이 많은 일도 자랑이 되지 않는다 하죠. 4연부턴 시의 흐름에 변화가 생깁니다. 화자말고도 ‘당신’이란 인물이 등장하며, 눈이 작은 일, 눈물이 많은 일은 자랑이 되지 않는다고 했던 화자가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시에서 말하는 슬픔은 무엇일까요? 슬픔은 철봉에 매달리는 일과 폐가 아픈 일보단 보편적인 감정일 겁니다. 또한 보다 많은 이들이 느끼는 감정입니다. 그러기에 슬픔은 공감을 환기할 수 있습니다. 슬픔은 자랑보단 공감과 그 공감에 대한 사랑이며 철봉에 오래 매달리는 일, 폐가 아픈 일 같이 자신의 성과와 고통을 다른 이에게 주입하는 것이 자랑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선 시인이 역설적인 기법을 사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5연부터 마지막 연까지 읽어보면, 시에서 이야기하는 슬픔이 공감과 배려인 것을 잘 파악할 수 있습니다. 덧붙여서, 화자가 이야기하는 ‘당신’은 개인이 아닐 수도 있으며 슬픔을 지닌 이들의 집단을 형상화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8연부턴 철봉에 매달리지 않아도 이를 악물어야 한다며, 행동의 변화가 나타나죠. 생각이 변하고, 행동의 변화가 나타난 화자가 슬픔을 지닌 이들을 생각하는 마음은 맑고 아름답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시에서 말하는 ‘슬픔’이 무엇인지 재고해 봅시다. 슬픔은 그 감정을 고립되게 두지 않고 공유하는 것이며, 슬픔은 공감하고 껴안아야 하는 존재라고 시인은 말합니다.
  유독 슬픔이 많던 한 해가 지나갔지만, 여전히 고립으로 인한 슬픔은 지속되고 있습니다. 올해는 학우분들이 다른 이들의 마음을 더 가까이 살펴보되, 자신의 마음도 슬퍼지지 않게 다독이는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박시현(국어국문학·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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