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랄프 저, 『장소와 장소상실』

  장소는 우리의 삶을 경험하는 세계이자 인간이 살아가는 근본적인 토대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경험하는 장소들을 삶의 배경으로 여기지만 장소가 개인의 삶에서 지닌 의미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다. 인간은 누구나 특정한 장소로 여행을 가거나 살고 싶다는 강한 로망을 지니기도 하고 자신의 소중한 추억이 깃든 장소가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바뀌거나 사라졌을 때 상실감을 크게 느끼기도 한다. 이러한 심리적 상태는 우리가 특정 장소에 의미를 부여하고 기억하며 세계를 경험한다는 것을 뜻한다. 오늘날과 같이 변화가 빠른 시대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특별하던 장소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상실을 경험한다. 또한 어디를 가도 똑같고 익숙한 광경들이 눈앞에 펼쳐지기에 장소의 고유함을 느끼기가 어렵다. 우리가 이러한 장소 변화에 대해 느끼는 허전함과 피로감이 호소하는 바가 무엇일까?
  에드워드 랄프의 『장소와 장소상실』은 우리가 장소를 경험하는 방식, 그리고 그것에서 비롯되는 감정들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장소와 장소상실』은 총 8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1장부터 4장까지는 장소에 대한 현상학적 이론을 설명한다. 이는 인간과 장소의 관계를 고찰함으로써 장소가 우리의 삶의 뿌리를 형성하는 인간 실존의 기반이 됨을 입증한다. 특히 4장은 이 책의 핵심 개념과 접근 방식인 ‘장소의 정체성’을 제시한다. 장소의 정체성이란 장소와 인간, 둘의 상호작용 속에서 만들어지는 고유한 특성을 의미한다. 이는 기존의 지리학은 장소를 객관적이고 독립적인 실재로 다루는 데에 반해 장소와 인간의 관계성을 고려함을 강조하는 개념이다. 이러한 기본 작업을 통해 에드워드 랄프는 책 후반부에서 삶의 정체성의 토대인 장소가 급격히 변화하는 오늘날의 현상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한다. 
  에드워드 랄프는 5장과 6장에서 장소 경험의 사례들을 분석한다. 특히 6장에서는 이 책에서 중요한 ‘무장소성’을 다룬다. 그는 오늘날의 장소 경험의 특징이 비진정한 장소감을 불러일으키는 무장소성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장소들은 상품화된 장소에 대한 소비 욕망과 장소를 기능과 효율로 바라보는 의식이라는 태도에서 조성된다. 이로 인해 그 지역과 무관한 장소, 혹은 획일화된 가짜 장소들을 확산시키는 디즈니화, 박물관화, 미래화 등이 전세계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 책은 우리의 삶의 영역인 장소,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여러 경관들의 변화에 대해 성찰해보게끔 한다. 오늘날은 도시재생사업으로 인해 특징적인 장소들이 훼손되기도 하고, 동일한 규격의 경관들이 펼쳐지는 시대이다. 또한 이러한 흐름을 막기 위해 장소를 보존하거나 새로운 경관을 만들어내려는 시도들도 다양하게 펼쳐진다. 장소는 단순히 우리가 살면서 거쳐 가는 지점이 아니다. 우리는 다양한 장소를 경험하기를 원하며 동시에 그 장소들이 지닌 고유함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이 책을 통해 나의 진정한 장소의 경험을 되돌아보고 그 경험의 소중함을 느끼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하은 (국어국문학과 박사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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