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당신에게 충대신문을 권합니다.

구나현 기자, 문헌정보학과

  충대신문은 전문가나 당사자의 의견을 실으려고 많은 인터뷰를 한다. 별 거 아닌 의견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기자의 입으로는 말할 수 없으니 인터뷰는 보도에서 기획까지 모든 기사에 필요하다. 기사에는 한두 줄이 실리는 짧은 인터뷰였을지라도, 인터뷰는 얻는 게 많았다. 다양한 인터뷰원을 만났고, 대부분이 열정적으로 성실하게 답해줬다. 시간이 넘칠 때는 인터뷰원에게 직접 인터뷰가 실린 신문을 전하기도 하고 감사하다고 차도 대접했지만, 가끔은 바쁘다는 핑계로 발행일만 알려드린 것이 후회스럽다. 
  한 번은 인터뷰를 청하러 찾아갔다가 거절당한 적이 있다. 과거에 충대신문 기자와 인터뷰를 했는데, 그 이후로 기사가 나왔다는 연락이 없어 실망했다는 게 그 이유였다. 사과를 드리면서 많이 늦었지만 인터뷰가 실렸던 신문을 찾아서 가져다드리겠다고, 아마 그 기자는 뉴스레터도 있고, 학교 내에 종이신문도 배치되니 따로 연락을 드려야겠다고 생각을 못 했을 거라고 변호를 했다. 하지만, 끝내 그분의 마음을 돌릴 수는 없었다. 만나본 적도 없는 충대신문 기자의 행동 때문에 인터뷰를 거절당하다니 허탈했다. 기자들은 충대신문을 평균 1~2년, 어찌 보면 아주 짧은 시간만을 거쳐 가지만 충대신문의 얼굴이었다.
  기자의 행동도 인터뷰원 입장에선 인터뷰 요청할 때는 열정적이더니, 정작 인터뷰하고 나선 나 몰라라 했던 게 아닐까 싶다. 감사를 표하고 기사를 보내주는 연락 한번이 바쁘다고 미뤄도 되는 일이었을까. 윤리 강령에는 없다지만 인터뷰원에 대한 예의는 기자의 또 다른 자격 요건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뷰를 하다 보면 입장이 이해돼 기사화하지 않아도 되겠다 싶었던 것도 있었고, 개인의 과오를 어디까지 남겨야 하는지도 고민했다.
  한편으론 인터뷰원의 주장을 기사에 잘 담아내지 못하거나 잘못 전달할까 봐 걱정되기도 했다. 그래서 기사 초안을 인터뷰원에게 보여주고, 수정하고 싶은 부분을 말해달라고 했다. 이때 기사를 간섭받는다는 느낌보다는 기사를 검토받는 느낌이었다. 인터뷰원들은 미묘한 뉘앙스 차이를 신경썼고 그 정도는 흔쾌히 들어줄 수 있었다. 이처럼 인터뷰원을 많이 배려했지만, 민감한 사건에 대한 인터뷰는 ‘다 지나간 사건인데 굳이 들추는 것 아니냐’며 거절당할 때가 많았다. 이럴 땐 기자가 꼭 악인이나 하이에나가 된 기분이었다. 그래도 궁금해하는 학우가 있으니까 사실을 전달해주고 싶다는 사명감으로 버텼다.
  수없이 검토해도 부족한 기사는 존재했다. 날 선 피드백은 속상했고 창피했으며 어느 한 편으로는 관심을 가져준다는 게 고맙기도 했다. 그래도 만나서 이야기해보면 서로를 이해했고, 대부분은 해결했다. 이해와는 별개로, 발행 후에 기사를 바꾼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인쇄됐고, 사이트에도 올라왔으며, 이미 내 손을 떠난 기사였다. 공식적인 요청을 받지 않는 한 지난 기사를 수정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항상 마감에 쫓기고 휴가는 없었기에 기사 수정은 계속 후순위로 밀렸지만, 지적받은 기사는 맘속에 덩어리로 남았다. 퇴사를 앞두고 마침내 몇몇 기사를 수정했는데 어쩌면 지적한 당사자도 잊었을지 모르지만 기사를 그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1년이 넘어서 수정된 기사도 있지만 기사를 포기하지 않고 끝내 수정한 것이 맡았던 임무를 끝까지 수행한 것 같아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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