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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움 지음
충대신문 | 승인 2020.11.11 15:17|(1164호)

                      하얀 당신

                                                                 허연

 

어떻게 검은 내가 하얀 너를 만나서 함께 울 수 있겠니

​​죄는 검은데
​네 슬픔은 왜 그렇게 하얗지
​​
드물다는 남녘 강설의 밤. 천천히 지나치는 창밖에 네가 서 있다 모든게 흘러가는데 너는 이탈한 별처럼 서 있다 선명해지는 너를 지우지 못하고 교차로에 섰다 비상등은 부정맥처럼 깜빡이고 시간은 우리가 살아낸 모든 것들을 도적처럼 빼앗아 갔는데 너는 왜 자꾸만 폭설 내리는 창밖에 하얗게 서 있는지 너는 왜 하얗기만 한지

​살아서 말해달라고?
​​​
이미 늦었지
​어떻게 검은 내가 하얀 너를 만나서 함께 울 수 있겠니
​​
재림한 자에게 바쳐졌다는 종탑에 불이 켜졌다
​피할 수 없는 날들이여
​아무 일 없는 새들이여
​​
​이곳에 다시 눈이 내리려면 20년이 걸린다

 

  이 시엔 슬픈 기운과 서러운 기운을 담담하게 풀어내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첫 문장엔 ‘검은 나’와  ‘하얀 너’가 등장합니다. 그들은 상반되는 이미지며 ‘검은 나’는 죄를 품고 있습니다. 여기서 화자는 ‘검은 나’라고 할 수 있겠죠. 또한 ‘하얀 너’는 죄를 가진 대신 슬픔을 지니고 있지요.
  세 번째 연엔 남녘의 밤눈이 내리는 풍경이 나타납니다. 눈이 내리는 풍경을 드물다고 묘사해, 현재의 상황이 보편적이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를 계속 읽으면, ‘너’는 주위 모든 게 흘러가지만 혼자서 그 흐름을 거부한 채 서있습니다. ‘나’는 그런 ‘너’를 쳐다보며 그 둘은 철저히 반대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너’는 더 나아가지 못하죠. 어쩌면 ‘너’는 지나간 과거의 기억으로 ‘나’가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너’는 슬프며 하얗고, ‘나’는 검은 죄를 지니고 있습니다. ‘너’가 지금 삶을 살고 있지 않다는 점을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생을 사는 것은 ‘나’처럼 검은 죄를 짓는다는 것과 같은데 ‘너’는 그저 하얗다고만 서술했으니까요.
  마지막 문장을 보면, 남녘의 공간엔 다시 눈이 내리려면 20년이 걸린다고 서술돼 있습니다. ‘너’와 ‘나’의 오랜 시간에 대한 단절을 뜻하며 화자, 즉 ‘나’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너’를 다시 떠올릴 것을 ‘이곳에 다시 눈이 내리려면’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시인이 말하는 ‘20년’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20년’은 100년도 아닌, 어찌해 하필이면 20년인지 해설을 하면서도 궁금해 집니다.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의 이야기, 그리고 둘 사이를 갈라놓은 시간에 대한 슬픔을 이야기한 시입니다. 시간은 생의 속도가 다른 ‘너’와 ‘나’의 사이를 갈라놓을 만큼 선명하게 애달픕니다. 그렇지만 또 시간은 그 슬픔을 잠재워줄 수도 있습니다. 시간의 서로 다른 두 가지 힘.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할지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

박시현(국어국문학·2)
@garnetstar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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