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

대전일보 세종본부장 장중식

  국어 대사전을 어디에 뒀더라? 한참을 찾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그렇지, 자타가 말하는 글로벌 SNS시대에 무슨 사전을…….이러니 ‘꼰대’ 소리를 듣는 모양이다.
  노트북을 열었다. 검색창에 ‘꼰대’와 ‘멘토’라는 단어를 차례로 넣어보았다.
  꼰대는 본래 아버지나 교사 등 나이 많은 남자를 가리켜 학생이나 청소년들이 쓰던 은어였으나, 근래에는 자기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이른바 ‘꼰대질’을 하는 직장 상사나 나이 많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의미가 변형된 속어를 뜻한다.
  멘토(mentor). 그리스 신화에서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을 위해 떠나면서 자신이 없는 동안 아들 테리마커스를 보호해 주도록 부탁했던 지혜로운 노인의 이름에서 비롯된 말. 오늘날 조직에서 도움을 주는 사람을 말한다.
  요즘 들어 부쩍 꼰대라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생각이 고루하고 융통성이 없어서 그런 모양이라고 생각했지만 두 대학생을 둔 가장이 듣기에는 그닥 기분이 좋지 않은 말이다.
  발단은 그랬다. 올해 처음 대학을 입학한 둘째와의 대화.
  “너 뭘 하느라고 밤을 또 샌 거냐?”
  “아빠, 지금 바쁘단 말야…….” 
비대면 수업이 많아지면서 혼자서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았던 20학번 새내기 대학생. 밤을 꼬박 샌 이유를 묻기도 전에 아침부터 ‘딴 짓'을 하는가 싶어 던진 물음에 돌아온 대답이었다.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아침을 거르는 일상, 밥상머리에서도 휴대폰 보기, SNS를 통해 의견 전달하기 등등. 속칭 ‘Z세대’라 칭하는 그들 또한 바쁜 일상의 연속이리라. 보릿고개까지는 아니지만 통기타와 막걸리, 최루탄으로 1980년대를 지냈던 우리와는 달리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그들은 무엇이 고민이고 무엇이 ‘1순위’일까?
  감옥과도 같은 고3을 지나 대학 문턱을 어렵게 넘어선 그들 앞에는 또 다른 과제가 놓여 있었다. 어렵사리 수강을 마치고 나면 취업이라는 숙제가 버티고 있다. 나와는 관계없이 돌아가는 세상살이가 그 어느 때보다 버겁고 어려운 세대.
  그들에게 비춰진 내 모습은 ‘꼰대’와 ‘멘토’ 중 어느 쪽에 가까웠던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렇다.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상대와 공감하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물과 기름처럼 섞이질 못하는 이치와 같다. 그렇다면 소통의 접점은 무엇일까? 접근 방식부터 바꿔야 했다.
  “세상 진짜 좋아졌지. 내가 너만 했을 때는 이러지 않았어”라는 말보다 “지금 너에게 가장 힘든 건 뭐지? 흠…… 그래? 이런 방법은 어떨까?”라고 말했어야 옳았다.
   모범답안은 없지만 누군가 건넸던 말이 생각난다. 말하는 것보다 힘든 것이 듣는 것이라고. 경청에 서투른 세대는 본인 경험이 우선이다. 시대가 바뀌면 화두가 바뀐다는 걸 알아야 한다. 세대차이를 넘어설 수 있는 지름길. 그것은 경청으로부터 시작된다. ‘다름’보다는 ‘차이’를 알고, 그것을 존중해야 한다. 먼저 듣자, 그 다음에 내 생각을 얘기하자. 그러는 과정에서 공통분모를 찾아가는 것, 그것이 공감의 시작이고 소통의 출발점이다.
  며칠 후 84학번 아빠와 20학번 딸이 마주한 자리. ‘코로나 블루’로부터 시작된 대화는 비대면 강의, 캠퍼스 생활, 그리고 앞으로의 유망 직종 등 서로의 생각과 의견이 꼬리를 물고 있었다.
  이번 주말에 시간되면 캠퍼스 드라이브를 제안하며 ‘좋은 곳’을 찾고 있는 내게 36년차 후배이자 예쁜 따님으로부터 건너온 대화창. ‘충남대 인근 맛집’이라는 제하의 글에는 업소 위치와 가격, 사진은 물론 솔직담백한 방문 후기가 가득했다.
  인터넷이라는 바다에서 건져 올린 아빠와 딸의 대화 공간, 어느새 나는 ‘꼰대’로부터 한 걸음 떼어 ‘멘토’ 쪽을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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