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정경 – “불효자는 ‘옵’니다”

  가을이다. 가을을 천고마비의 계절이라고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말조차 한적한 정자의 처마 밑에 낀 이끼처럼 박제되는 중이다. 그런데 한가위도 그럴 것 같다. 한가위의 정경이 고색창연하게 다가 올 시대가 머지않았다는 느낌이 드는 요즈음이다. 확실히 올해는 예년과는 다른 모습이다. 무엇보다 거리의 한가위 현수막이 줄거나 거의 보이지 않는다. 향우회나 청년회 명의의 혹은 누구누구 의원이니 무슨 장이니 하는 이들이 내건 현수막이 골목마다 걸려 한가위의 분위기를 한껏 띄워주곤 했는데 그마저도 사라져 오히려 세시(歲時, observance)의 설렘이 무색할 지경이다. 그럼에도 “불효자는 ‘옵’니다”라고 쓰인 현수막이 충남 청양 거리에 내걸려 시절의 분위기를 역으로 대변해준다. 모두 다 코로나19가 만들어 낸 풍경이다.
  산림조합의 벌초 대행 예약 서비스가 작년보다 45% 증가한 지역도 있다 하고, 한 기업의 설문조사에서는 ‘추석 연휴에 이동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응답자 10명 중 7명(69.9%)이 ‘가족과 집에 머무르겠다’고 답했고, ‘고향을 방문하거나 여행을 가겠다’는 응답은 25.7%에 그쳤다고 한다. 정부는 물론 지자체들도 고향 방문을 자제하고 온라인으로 성묘와 차례를 대신하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나섰다. 불효자는 우는 게 아니라 불효자가 오는 거라니 어쩔 수 없이 귀성을 포기하겠다는 목소리도 높다.
  “추석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절로 떠오른다. “‘추석이란 무엇인가’ 되물어라”는 유명한 칼럼 속에 등장하는 “당숙이 ‘너 언제 취직할 거니’라고 물으면, ‘곧 하겠죠, 뭐’라고 얼버무리지 말고 ‘당숙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추석 때라서 일부러 물어보는 거란다’라고 하거든, ‘추석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엄마가 ‘너 대체 결혼할 거니 말 거니’라고 물으면, ‘결혼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 거기에 대해 ‘얘가 미쳤나’라고 말하면, ‘제정신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는 대목이 외려 가을을 알리는 풀벌레소리처럼 아슴푸레하다. 
  “민족 최대 명절 한가위에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풍요로운 연휴를 보내고 있습니다. 성묘객들이 추석을 맞아 이른 아침부터 조상의 묘소를 찾아 준비한 과일과 송편 등을 차려놓고 조상께 예를 올렸습니다. 도심 극장가와 쇼핑가는 오후 들어 연휴를 만끽하려는 시민들로 활기가 넘칩니다. 오늘 오전 포털사이트 인기검색어에는 ‘차례상 차리기’가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같은 한가위 풍경을 전하는 리포터 기사들도 이번만큼은 찾기 어려울 전망이다. 대신 출향인을 위한 온라인 제사 인증사진 공모전 소개라든지 명절 선물 비대면 쇼핑 판매량 폭증 소식이 그 자리를 차지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시간이 흘러 “그 땐 그랬지”라고 말할 수 있는 한가위가 돌아 올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년이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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