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자전
                             신철규
 

지구 속은 눈물로 가득차 있다

타워팰리스 근처
빈민촌에 사는 아이들의 인터뷰
반에서 유일하게
생일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아이는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타워팰리스 근처를 둘러싸고 있는
낮은 무허가 건물들
초대받지 못한 자들의 식탁


그녀는 사과를 매만지며
오래된 추방을 떠올린다
그녀는 조심조심 사과를 깎는다
자전의 기울기만큼
사과를 기울인다
칼을 잡은 손에 힘을 준다
속살을 파고드는 칼날


아이는 텅 빈 접시에
먹고 싶은 음식의 이름을
손가락에 물을 묻혀
하나씩 적는다


사과를 한 바퀴 돌릴 때마다
끊어질 듯 말 듯
사과 껍질
그녀의 눈동자는
우물처럼 검고 맑고 깊다


혀끝에 눈물이 매달려 있다
그녀 속에서
얼마나 오래 굴렀기에 저렇게


둥글게 툭툭,
사과 속살은 누렇게 변해가고


식탁의 모서리에 앉아
우리는 서로의 입속에
사과 조각을 넣어준다
한입 베어 물자
입안에 짠맛이 돈다


처음 자전을 시작한 행성처럼
우리는 먹먹했다

 

  신철규 시인은 1980년 경남 거창에서 태어나 201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습니다.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는 시인의 첫 시집입니다.
  1연에서 시인은 “지구 속은 눈물로 가득차 있다”고 합니다. 시인이 말하는 지구는 슬픔입니다. 어떤 슬픔과 눈물일까요? 2연을 봅시다. 2연에는 부유한 집 근처 빈민촌에 사는 생일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아이가 등장합니다. 여기에는 빈부격차에 소외된 아이의 마음이 드러납니다. ‘낮은 무허가 건물들’, ‘초대받지 못한 자들의 식탁’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들은 슬픔과 눈물을 지녔습니다. 3연에서는 ‘그녀’가 등장합니다. ‘그녀’는 둥근 사과를 조심조심 돌려 깎습니다. 그것은 바로 ‘슬픔의 자전’이고 ‘그녀’는 슬픔을 사과처럼 깎는 사람입니다. 어쩌면 ‘그녀’는 가난한 아이 편에 서 있는 얼굴 없는 선의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지구가 신선하고 상큼한 사과와 같은 행성이면 좋을 겁니다. 하지만 자전하는 지구는 무심히 돌아가는 슬픔의 행성입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동안 고인 채로 돌아가는 슬픔은 상큼하지 못합니다. 속살은 누렇게 변해버렸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누렇게 변한 사과를 각자의 입에 넣어줍니다. 사과에서는 짠 맛이 돌고, 마지막 연에서 “먹먹했다”를 통해 짠 맛은 눈물이 젖은 사과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슬픔에 대해 이야기한 시입니다. ‘슬픔의 자전’이라는 제목을 통해서도 알 수 있지요. 그렇지만 우리는 이 시를 통해 소외받는 마음에 대해 따뜻하고 선량한 시선을 던지는 시인을 볼 수 있습니다. 또 그저 슬픔이라는 감정뿐만 아니라 슬픔, 그 단어가 가지는 철학적인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들어 줍니다. 어쩌면 슬픔의 자전을 겪은 사과를 함께 나눠 먹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슬픔을 위로받을 수 있을 겁니다.

박시현(국어국문·2)
@garnetstar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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