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똘리 김 저,  '초원, 내 푸른 영혼'

  나는 자서전 쓰기를 강의하고 있다. 평생교육기관이나 복지관, 장애인센터 혹은 공기업에서 자서전 쓰기를 강의해왔다. 강의를 하면서 이런저런 자서전을 많이 접해왔다. 가끔 어떤 자서전이 잘 쓴 자서전이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각 개인의 역사를 기록한 자서전은 제각각 비교할 수 없는 개성을 가졌으므로 어떤 것이 좋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대답해왔다. 오늘은 그렇지만, 정말 멋진 자서전으로 한 권의 책을 소개하고 싶다. 러시아 현대문학의 거장인 아나똘리 김의 자전 에세이『초원, 내 푸른 영혼』(도서출판 뿌쉬낀 하우스, 2011)이다.
  자서전이 어떤 전형적인 틀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내용상 최소한의 공통된 틀은 있는 것 같다. 가령 자신의 출생이나 부모님, 고향이나 어린 시절의 이야기들은 자서전에서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한 사람의 살아온 궤적을 대략적으로라도 이해해야 현재 그가 이야기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 나이가 들수록 어린 날의 추억은 아름답고 소중하게 기억되기에 자서전을 쓰는 대부분의 저자들은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매우 구체적이고 리얼하게 기록한다. 어쩌면 이것이 자서전을 개성 있게 만들고 다른 장르와 구분해주는 가장 중요한 지점이 될 수도 있다.
  아나똘리 김도 자신의 할아버지 이야기로 자서전의 첫 줄을 시작하고 있다. 어찌하여 순수 한국인 혈통인 자신이 러시아 땅에 살면서 러시아어로 글을 쓰고 있는지, 그리고 세계 20여개국어로 작품이 번역될만큼 유명세를 얻었음에도 여전히 러시아인도 한국인도 아닌 소수자로써의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지를 얘기하자면 거기부터 글을 시작해야 했을 것이다.
  전에도 말한 적이 있지만, 나는 독후감을 읽고 나서 그 글의 텍스트가 된 책을 찾아 읽고 싶어지면 그 글은 잘 쓴 글이라고 생각한다. 아나똘리 김의 자서전을 멋진 자서전으로 꼽는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그의 자서전을 읽고 나서 1800년대말부터 우리 선조들이 어째서 그 추운 러시아 지방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 또 왜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강제이주를 당했는지, 그들이 다시 사할린으로 재이주해 고국을 그리워하며 살아야 했는지 더 알고 싶어졌다. 디아스포라(Diaspora) 문학에 대해서도 더욱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을 뿐 아니라, 전혀 궁금하지 않았던 러시아 역사까지도 알고 싶어졌으니 자서전 한 권을 읽고 난 영향으로는 대단하지 않은가. 이처럼 그의 자서전은 커다란 물줄기처럼 한 개인의 삶의 기록을 넘어 정치와 사회를 포괄하며 휘돌아 흐른다.
  이런 이유 말고도, 아나똘리 김의 자서전에는 밑줄을 긋고 싶은 아름다운 문장들, 철학적인 문장들이 꽤 많이 있다. 특히 창작하는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공감되는 문장들이 도처에 있어 밑줄 긋는 나의 손이 바빴다.
  ‘과거란 존재하지 않지만 기억 속에서 그것을 꺼내어 환상이라는 재료를 사용하면 어떤 구조물도 만들어 낼 수 있다.’
  ‘생명력 있고 진실한 예술적 형상을 창조하는 예술가라면 비록 희생양이 될지언정 징벌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아나똘리 김의 자서전은 두 권으로 되어 있다. 1권인 『초원, 내 푸른 영혼』은 자신의 출생에서부터 군생활까지의 이야기로 대체적으로 불안정했던 소련체제하에서 자신과 주변인물들의 삶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2권은 『나의 삶, 나의 문학』이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그가 화가의 길을 과감히 접고 문학을 하게 된 때부터 겪은 고난의 과정, 등단기, 창작기 등이 구체적으로 저술되어 있다. 그의 문학적 세계관을 깊이 있게 알고 싶은 독자라면 2권까지 읽어보기를 권한다. 자서전도 멋진 문학 작품이 될 수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마기영 (국어국문학과 박사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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