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꽃 핀 무렵에

   ‘흐드러지다’ 오랜 시간에 거쳐 알게 되는 단어가 있다. 평창 효석문화제의 막바지, 봉평·효석문화마을에서는 요즘 축제와는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통속적이라거나, 관람객 연령층이 높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짧게 피는 메밀꽃을 보기 위해 찾는 사람들로 대목인 봉평, 바글바글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상쾌함을 느낄 수 있었다. 기자는 이효석문학관에서 메밀꽃이 핀 앞산을 보고 흐드러지게 피었다는 말을 실감했다.
  한컴 타자 연습을 하던 초등학교 때, 타자가 빠르지 않은 기자가 메밀꽃 필 무렵을 끝까지 친 경험은 손에 꼽는다. 자주 보던 앞부분에 나오는 첫사랑 이야기에 부끄럼을 느끼기도 했다. 또한 반복해 연습하다보니 ‘각다귀’, ‘드팀전’ 등 혀 짧은 아이가 발음하기 어려운 단어들도 익숙해졌다.
  고등학교 때 소설의 배경과 역할, 허생원과 나귀의 유사점을 필기하며 공부할 때, 문학 선생님께서 대학생이 되면 당일치기로 봉평의 메밀밭을 꼭 가보라고 하셨다. 하지만 대학생이 돼도 시간에 쫓겨 여행에서 최대의 효율을 얻으려 하니, 문학관이 주요 관광지인 봉평은 대전에서 왕복 6시간을 훌쩍 넘는 거리 탓에 후순위로 밀려 3학년이 되도록 가지 않았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 짐승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통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효석 작가는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출생이다. 정경 묘사에 뛰어난 그는 재능을 십분 발휘해 고향에 대한 애정을 가득 담아 위 문장을 썼을 것이다. ‘메밀꽃 필 무렵’에 크게 감흥을 느끼지 못한 기자도 이 문장이 눈에 밟혀 먼 길을 달려오게 됐다.  
  봉평을 가기 전에는 당나귀로 표현된 허생원의 애욕이 지나치게 원초적으로 보여 그의 순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허생원이 성서방네 처녀와 헤어진 후 얼마나 애타게 찾았을지 알 것만 같다. 그런 풍경을 같이 본 사람이라면 ‘뒤에도 처음에도 없는 단 한번의 인연’이 되기에 격이 맞다. 
  효석문화마을은 다채로운 볼거리로, 국내에서 가장 훌륭한 문학 문화 시설이 아닐까 싶다. 그중 효석달빛언덕을 가장 추천한다. 근대문학체험관, 나귀모양 전망대, 옛 모습을 재현한 이효석생가, 이효석이 평양에서 거주하던 집을 재현한 푸른 집 등 작가가 거쳐갔던 공간을 충실히 재현해 심미적 경험을 느낄 수 있다.
  늦여름이었기에 해가 지기까지 기다릴 수 없어 달빛에 젖은 메밀 꽃밭을 보지 못했다. 언젠가는 봉평을 다시 찾아 허생원과 동이가 함께했던 밤길을 걸으며 아쉬움을 달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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