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도시, 군산

 문학 작품에서 실제 지명이 사용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실제 지명을 등장시킴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마치 진짜로 있는 일인 마냥 사실감을 높이게 한다. 〈문학기행〉은 국내 문학 작품에 등장한 실존 배경 중 한 곳을 골라, 그곳을 답사한 뒤 소개하고자 한다.
  “에두르고 휘돌아 멀리 흘러온 물이, 마침내 황해 바다에다가 깨어진 꿈이고 무엇이고 탁류째 얼러 좌르르 쏟아져 버리면서 강은 다하고, 강이 다하는 남쪽 언덕으로 대처 하나가 올라앉았다” 채만식 작가가「탁류」의 배경이자 그의 고향인 전라북도 군산시를 묘사한 문장이다.
  먼저 군산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30분 거리에 있는 채만식 문학관에 들렸다. 사실 군산에 방문하기 전, 처음 「탁류」를 읽었을 땐 조금 아쉬운 감이 있었다. 단순히 ‘정주사’의 장녀 ‘초봉’이 세 명의 남편을 만나서 겪는 일생을 담은 작품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채만식 문학관을 방문해 해설을 듣고 나니 그 내면엔 채만식 작가 특유의 풍자가 담겨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초봉’은 대한제국으로, 그녀의 세 남편은 대한제국을 노리는 열강으로 비유한 것이다. 특히 작품 결말 부에 ‘초봉’이 부정적인 인물인 셋째 남편 ‘장형보’를 제 손으로 직접 해하고 자유의 몸이 된 것은 우리나라의 광복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다음은 옛 군산항에 위치한 군산근대역사박물관으로 발을 옮겼다. 일제강점기 당시 건물들을 보존해 박물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현대에 세워진 주변 고층 건물들과는 다른, 근세의 고풍스러운 건물이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이 건물들은 식민지 수탈을 목적으로 세워졌다. 1930년대 당시 군산은 쌀의 수탈항으로 성장하면서 정미업이 발달했는데, 정미소는 그곳에서 일하는 미선공들의 임금을 낮추면서 노동자들의 애환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채만식 작가는 1940년대부터 「대륙의 장도」,「홍대하옵신 성은」 등 여러 편의 친일 작품들을 써 논란이 됐다. 어려운 가계로 인해 일제가 주최한 강연회 등에 참석했다고 「민족의 죄인」에서 밝히고 있지만, 작가 자신이야말로 ‘초봉’을 못살게 괴롭힌 ‘장형보’가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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