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승 『열두 발자국』

  뇌과학은 비교적 신생학문으로, 뇌의 신비를 밝혀서 인간의 물리적, 정신적 기능을 심층적으로 탐구하는 학문이다. 수학, 물리학, 생물학 등의 기초과학, 의학, 공학, 심지어는 문학, 심리학 등 인문학과의 융합 연구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그래서 일반 대중들이 뇌과학에 가까워지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정재승 교수는 뇌과학의 학문적 특성에도 불구하고, 뇌과학을 이해하는 것이 영원한 탐구 대상인 ‘인간’이라는 숲을 이해하는 발걸음이라고 주장한다.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과학의 대중화에 늘 회의적이라고 언급하지만, 모순적이게도 이 책은 과학 대중화의 최전선이 위치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전문적인 과학 용어를 일상용어로 바꾸어 전달하고 강연을 하듯이 구어체와 경어체를 사용했으며, 본인과 청중의 추임새까지 넣었다. 고민 없이 술술 읽히는 책을 만들고 싶었다는 저자의 바람은 이 책을 통해 충분히 실현된 듯하다.
  『열두 발자국』은 지난 10년간 정재승 교수의 강연 중 가장 많은 호응을 이끌어낸 12편의 강연 내용을 정리하고, 새로운 내용을 추가하여 쓴 책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저서 『소설의 숲으로 여섯 발자국』에서 따온 책의 제목처럼, 인간이라는 경이로운 미지의 숲을 탐구하면서 과학자들이 내디딘 ‘열두 발자국’에 대한 이야기이다.
  1부에서는 뇌과학에서 얻을 수 있는 삶의 성찰에 관해 설명한다. 의사결정, 창의성, 결핍, 놀이, 습관, 미신 등 우리의 뇌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과학의 원리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낸다. 우리가 선택을 하는 동안 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결정장애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결핍 없이 욕망할 수 있는지, 인간에게 놀이란 무엇인지, 우리 뇌도 ‘새로고침’할 수 있을지, 우리는 왜 미신에 빠져드는지를 이야기한다.
  2부에서는 제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 블록체인, 가상화폐 등과 같은 최근의 이슈를 언급하면서, 우리가 살아갈 세상이 어떻게 바뀔 것이고, 그렇게 변화한 세상을 어떻게 준비하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특히 제4차 산업혁명에 대해서는, ‘혁명’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굉장히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변화이기 때문에, 두려워하거나 조급해하기보다는 인지적 유연성을 가지고 느긋하게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인공지능은 약간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산업 현장에서 쓸 만한 수준으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인공지능과의 공생을 제대로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공지능을 제대로 배워서 인공지능이 필요한 곳에 잘 사용할 수 있는 인간, 인공지능이 못하고 인간이 더 잘하는 게 무엇인지를 파악해서 존재가치를 높이는 인간이 되자는 것이다.
  블록체인이나 가상화폐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암호화폐는 결국 사라질 것이지만 우리에게 중요한 사고의 기회를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지금처럼 국가가 화폐와 금융에 관한 모든 통제권을 온전히 독점하고 있는 것이 과연 옳은지 말이다.
  책의 프롤로그에서 저자가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책의 목적은 단순히 과학적인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뇌과학을 통해 우리의 삶을 성찰하고, 현재와 미래의 세계를 통찰하는 지식을 얻는 것이다. ‘1.4kg의 작은 우주’라 불릴 만큼 복잡한 뇌를 재미있게 들여다보면서 말이다. 저자가 이끄는 열두 개의 발자국을 따라 그가 던지는 질문을 고민해보고 해답을 탐색해본다면, 지도 밖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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