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1.4.14 수 13:42
상단여백
HOME 충대신문 특집
제59회 충대문학상 소설부문 당선작
충대신문 | 승인 2018.05.29 09:04|(1140호)

   나를 모르고

                              최진아(한양여자대학교 문예창작학과 1)  

 

  인화된 사진 속에 나는 없고 하얀 배경만 프린트되어 나왔다. D는 난처한 얼굴을 하며 프린터기를 주먹으로 두드렸다. 프린터기는 거센 기계 소리를 내며 다시 종이를 내보냈다. 그러나 몇 번이고 다시 나온 사진 속에는 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미안해, 잠시만 기다려 라는 말과 함께 D는 프린터기를 들고 작업실 안으로 들어갔다. 사진관 내부가 갑자기 고요해졌다. 찌뿌듯한 몸을 일으켜 벽에 달린 거울을 봤다. 부스스한 앞머리를 뒤로 한 번 쓸어 넘기니 푸석한 얼굴이 눈에 띄었다. 기미가 앉은 볼을 매만졌다. 손끝에 기름이 뒤섞인 화장품이 묻어나왔다. 정장 치마에 닦아버리려다 멈추고 휴지를 찾았다. 카메라 왼쪽 책상에 놓인 물티슈로 손을 닦았다. 하얀 물티슈에 금세 화장품이 묻어나왔다. 그것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주위를 둘러봤다. 사진관 입구 좁은 골목에는 첫 오픈을 축하하는 화환들이 옹기종기 놓여있었다. 낑낑대며 화환을 받았을 D의 모습이 상상이 가 웃음이 나왔다. D는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보리 색으로 사진관 내부를 꾸며 놨다. 벽에 간간히 붙여놓은 사진들은 사진관 분위기를 한층 살렸다. 아담하고 산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에 가까이 다가갔다. D가 찍은 사진들은 어릴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따뜻하게 느껴졌다. D의 시선은 이런 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들을 매만졌다. 사무실로 들어간 D는 인기척조차 내지 않았다. 나는 나를 찍었던 카메라를 바라봤다. 카메라 곳곳에 손때가 묻어있었다. 익숙하게 카메라의 렌즈 통을 열고 한 쪽 눈을 감았다. 카메라 너머의 세상이 보였다. 몸을 돌려 사진관 입구에 초점을 맞췄다. 가슴 한 구석이 지끈거렸다. 오른손을 셔터 위에 올렸다. 차마 셔터는 누르지 못하고 앞만 쳐다봤다. 입이 바짝 마르는 게 느껴졌다. 두 눈을 감아버렸다. 환했던 세상이 암흑으로 변했다. 셔터에서 손을 내리고 숙였던 몸을 일으켰다. 오른 손목에 있는 흉터가 욱신거렸다. 손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뒤에서 나를 부르는 D의 목소리에 눈을 떴다. D는 머리를 긁적이며 책상 위에 프린터기를 내려놓았다.
  “무희야 미안. 오늘 사진 못 찍을 거 같아. 프린터기가 미쳐서 네 사진만 인식이 안 되네.”
  “아니야, 어차피 사진 찍으러 온 건 아니었으니깐. 그냥 너 사진관 열었다고 해서 놀러온 것뿐이야.”
  D는 미간을 한껏 찌푸린 얼굴로 나를 봤다. 나는 찌푸려진 D의 미간을 손으로 펴주며 책상 위에 둔 가방을 챙겼다. 카메라 너머를 본 이후부터 아담했던 사진관이 점점 비좁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D는 사진관 밖으로 나서는 나의 팔목을 잡았다. 그리고는 기념이라며 손에 사진 한 장을 쥐어주었다. 손을 펴 사진을 확인했다. 비 내리는 어두운 바닷가의 모습이었다. 차마 사진을 바닥에 내치지 못하고 손에 쥐었다. 그제야 D는 나의 팔목을 놓으며 보내주었다. 손에 쥐고 있는 사진이 얼음처럼 차갑게 느껴져 내려놓고 싶었다. 좁은 골목길을 나섰다. D의 사진관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손 안에 있는 사진을 구겼다. 바스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사진을 가방 속에 던져 넣고 지퍼를 닫았다. 손바닥이 시렸다.

  사진만 붙이면 완성되는 이력서를 바라봤다. 나는 아래에서부터 빈칸을 확인했다. 적을만한 내용은 이력서에 모두 썼다. 비어있는 사진 란의 공백이 컸다. D의 사진관에서 흰색 배경만 나온 사진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가지고도 나를 증명할 수 없는 건가. 이력서 제일 위에 적힌 이름이 보였다. 이 무희. 이름의 뜻이 정확하게 뭐였더라. 한자의 그림마저도 가물가물하게 기억났다. 하긴 이름으로도 나를 완벽히 설명할 수 없었다. 문득 나의 이름의 유래를 만들어 이야기해주는 엄마가 떠올랐다. 하루는 나를 임신했을 때 무가 너무 먹고 싶어서 먹는 무에다 계집 희를 붙여 무희. 또 하루는 나를 임신하고 아빠가 죽어버렸으니 아무것도 쓸모없다고 해서 없을무 계집 희를 붙여 무희, 다른 하루는 용이 꿈에서 나와 이무기로 이름을 지으려 했는데 단어를 제대로 몰라 이무이 하다가 지어진 이름 무희 등. 엄마는 내 이름을 부정적인 어딘가에 잘 갖다 붙였다. 무희. 나의 이름을 곱씹어 읽었다. 그러고 보니 어릴 적 친구들이 이름의 뜻을 물어보았을 때 제대로 답한 기억이 없었다. 엄마가 말한 이야기 중 진짜 이름의 뜻이 있기는 할까. 아니, 사실 저것 모두 거짓이 아닌 것이 있기는 할까. 엄마를 떠올리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나는 이력서를 책상 서랍 제일 아래에 넣고 침대에 누웠다. 눈을 감아도 어디선가 자꾸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하얗게 부르튼 입술 위에 립스틱을 발랐다. 얼굴은 생기가 도는 듯 보이지만 립스틱 위로 시뻘건 각질이 묻어있었다. 일일이 떼어내는 것을 포기하고 앞치마를 허리에 둘렀다. 버스의 클랙슨 소리와 함께 어린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린이집 안으로 우르르 들어오는 아이들을 보며 원장은 정신 차리라 말했다. 내 담당 아이들을 찾아 일렬로 줄 세우고 반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아이들은 가방을 사물함에 넣으며 제각각 뛰어다녔다. 나는 반을 돌아다니며 아이들의 몸부터 살폈다. 멍이나 상처들이 보이면 학부모에게 연락을 하여 물어봐야했다. 다행히 아이들의 몸에서 상처 난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책상에 앉아 출석부를 정리하고 아이들을 자리에 앉혔다. 벽에 걸린 시계를 봤다. 아이들이 온 지 삼십 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등줄기에서 땀이 났다. 그때 놀이터로 나오라는 방송이 들렸다. 아이들은 방송을 듣자마자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 안을 뛰어다녔다. 한숨을 내쉬며 교실 문을 열어주자 아이들은 빠르게 놀이터로 뛰어갔다. 나는 조용히 아이들 뒤를 따라갔다. 어린이집 본관을 나오자 놀이터가 보였다. 다른 반 선생님들도 옹기종기 모여 서 있었다.
  “무희 쌤, 여기로 오세요.”
  칼칼한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고개를 살짝 숙이며 무리에 다가갔다. 여러 가지의 향수 냄새가 뒤섞여 코가 아팠다. 다른 선생님들은 나의 존재를 잊은 채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원장의 욕부터 아이들의 부모 이야기까지. 잠자코 듣고만 있어도 많은 정보가 흘러나왔다. 나는 없는 사람인 척 가만히 아이들만 보고 서 있었다.
  “무희 쌤. 무희 쌤은 착하고 다 좋은데 사람이 너무 조용하네요. 우리가 무슨 무희 쌤 잡아먹는 줄 알겠어.”
  “그래, 그래. 우리가 안 불러도 알아서 여기로 좀 오고, 이야기도 하면 더 좋잖아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수긍하는 척 했다. 어린이집 입구로 차가 한 대 멈춰 섰다. 원장은 놀이터를 지나 입구로 뛰어갔다. 차에서 내린 남자는 원장과 인사를 나누며 놀이터로 걸어 들어왔다. 젊은 남자의 방문에 다들 흘깃거리며 쳐다봤다. 남자는 어깨에 멘 가방에서 카메라 한 대를 꺼냈다. 아이들 졸업 앨범에 넣을 사진을 찍으러 왔다고 말했다. 선생님들은 무리를 나누어 남자에게 붙었다.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익숙하게 카메라를 들고 미끄럼틀을 타는 아이들의 모습을 찍었다. 남자가 들고 있는 카메라가 낯설지 않았다. 선생님들은 친한 아이 한 명씩을 데려와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남자는 흔쾌히 사진을 찍어 주었다. 나는 서있던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카메라를 보았다. 꽤 많은 인원임에도 남자는 꼼꼼하고 정확하게 사진을 찍었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사람을 보는 기분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무희 쌤 유아교육과 아니고 사진학과 나왔다면서요. 우리 포즈 좀 취할 테니깐 사진 좀 찍어 봐요.”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꽂혔다. 단체 사진을 찍으려고 삼각대를 세우던 남자조차 나를 바라봤다. 나는 고개를 숙여 눈을 피했다. 시끄럽던 놀이터의 소리가 들리지 않기 시작했다. 선생님들이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식은땀이 얼굴선을 따라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다. 나는 허리를 굽혀 사과하고 놀이터를 빠져나왔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른 것 같기도 했지만 모르겠다. 무희처럼 어차피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의미도 없는 사람이니깐. 
  어떻게 다시 놀이터로 돌아가 단체 사진을 찍은 지도 모르겠다. 찍힌 사진을 확인하지 못해 이번에는 사진 속에 내가 제대로 찍혔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머릿속에는 사람들의 눈빛과 카메라의 렌즈만 떠올랐다. 버스로 야간반 아이들의 하교까지 끝내고 나서야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어느새 주변은 어두컴컴해졌다. 어린이집 안에는 나 홀로 남아있었다.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핸드폰 화면을 켜 이리저리 앞을 비췄다. 가방을 찾기 위해 내 이름이 적힌 책상으로 갔다. 앞치마를 풀다 책상 위에 쌓여있는 문서를 발견했다. 내일 집에 일괄적으로 보내야 할 아이들의 생활기록부였다. 우리 반과 다른 반 것이 섞여 뒤죽박죽이었다. 선생님들 무리가 머릿속에 스치고 지나갔다. 유치했다. 한숨을 쉬며 사무실의 불을 켰다. 오늘 정시에 퇴근하기는 글렀다. 필통을 꺼내기 위해 가방 속을 뒤졌다. 구겨진 종이뭉치가 손에 잡혔다. D가 나에게 쥐어준 사진이었다. 꾸깃꾸깃해진 사진을 펴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사진은 어떤 장소에서 보느냐에 따라 받는 느낌이 달랐다. 오늘은 조금 어둡고 보고만 있어도 먹먹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엄지와 검지들을 이어 직사각형 카메라 모양을 만들었다. 사진을 직사각형 안에 가두고 가상의 초점을 맞추었다. 가상의 초점일 뿐인데도 피사체가 점점 흐리게 보였다. 나는 사진을 다시 구겨버리려다 포기했다.

  졸업기념 사진 전시회를 위해 무작정 카메라를 들고 바다로 떠났다. 버스를 타고 외진 길로 들어가는 내내 사람들이 시선이 느껴졌다. 가방에서 거울을 꺼내 얼굴을 비췄다. 곳곳에 난 피멍 자국이 눈에 띄었다. 쓰고 있던 모자를 아래로 푹 눌러 상처를 가렸다. 버스는 바닷가 근처 정류장에 정차했다. 정류장에서 내려 길을 따라 쭉 걸으니 바다가 보였다. 지평선 뒤로 지는 해가 보였다.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려다 멈췄다. 나는 저런 것을 사진 속에 담아내는 재주는 없었다. 모래사장에 가만히 앉아 변화하는 노을 색을 봤다. 팔레트에 짜놓

은 물감들처럼 여러 색이 뒤섞여있었다. 색이 뒤덮이고 섞이고를 반복하다 하늘에는 검은빛만 남게 되었다. 까만 하늘에 바늘구멍을 뚫어놓은 것처럼 그 사이로 별이 보였다.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냈다. 무릎 위에 올려놓고 눈으로 담아냈다. 시간이 흐를수록 구름에 작은 구멍들이 메워졌다. 나는 바다로 고개를 돌렸다. 잔잔하던 파도의 흐름이 달라지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방울씩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바다의 색이 검푸르게 변했다. 파도는 크게 울렁이며 모래사장을 덮쳤다. 나는 조금 뒤로 가 카메라를 잡았다. 렌즈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초점을 맞췄다. 파도가 정말 사람이 되어 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온몸이 비에 젖어 축축했다. 하지만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나는 어느새 카메라 너머 세상을 보며 따라 울고 있었다. 그러나 눈물을 닦을 수도, 뒤돌아 설 수도, 카메라를 내릴 수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D에게 바닷가에서 찍은 사진을 문자로 보냈다. 늦은 시간이어서 그런지 아무런 답장도 오지 않았다. 카메라로 바다를 찍은 사진을 다시 돌려봤다. 핸드폰 메모장을 열어 색감 조정의 방향을 써두었다. 몸이 끈적끈적하여 기분이 좋지 않았다. 버스 차창에 머리를 기댔다. 바깥으로 빠르게 지나쳐가는 거리의 모습이 보였다. 이때까지 찍은 내 사진들이 지나쳐가는 거리처럼 머릿속을 지나갔다.
  집으로 돌아오니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간이었다. 현관문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 중앙에 가만히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엄마가 보였다. 가방을 벗어 현관에 두었다. 소주병 채로 술을 마시던 엄마는 벌건 얼굴로 나를 응시했다. 엄마의 몸 뒤로 아빠의 영정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그제야 집안 가득하게 차있는 향냄새가 맡아졌다. 엄마는 빈 소주병을 들고 몸을 일으켰다. 소주병으로 나를 가리키며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무희 이 쓸모없는 년.”
  나는 현관문을 쾅 소리가 나게 닫았다. 문을 닫아도 다 메워지지 못한 틈 사이에서 욕설과 비명이 들려왔다. 차가운 빌라 계단에 앉았다. 엉덩이가 시렸다. 벽에 몸을 기대 눈을 감았다. 엄마는 비명만 지를 뿐이지 문 밖으로는 나오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이렌 소리와 함께 경찰이 계단 위로 올라왔다. 경찰은 벽에 기대 눈을 감고 있는 나를 퉁명스럽게 흔들어 깨웠다.
  “제발 새벽마다 이게 뭐하는 짓이에요. 술을 못 드시게 하든지, 아니면 병원 치료라도 받아볼 수 있게 하든지 대책 좀 세우세요.”
  “죄송합니다.”
  내가 왜 사과를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사과를 했다. 경찰은 조금 누그러진 표정으로 문을 열었다. 거실에는 소주병이 잘게 조각조각 나 깨져있었다. 신발을 벗고는 집안에 발을 딛을 수 없을 만큼 어지럽혀져 있었다. 엄마는 피가 철철 흐르는 두 손을 부여잡으며 아프다고 울었다. 문 앞에 서서 현관에 둔 가방을 찾았다. 하지만 현관 어디에도 가방은 보이지 않았다. 경찰과 엄마를 밀치고 큰방으로 들어갔다. 폐차처럼 찌그러져 부서진 카메라가 바닥에 떨어져있었다. 가방은 내용물이 없어 흐물흐물 해진 채로 큰방 구석에 던져져있었다. 부서진 카메라의 전원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카메라건 SD 카드건 모두 조각나 있었다. 방 밖으로 엄마의 울음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무희 저년. 다 저년 때문이야. 쥐 죽은 듯이 살라는데 그것마저도 못 알아 처먹는 저년 때문에 집이 다 망한 거야.”
  “엄마 카메라 왜 부쉈어?”
  나는 부서진 카메라를 들어 보였다. 엄마는 카메라를 보며 날카로운 눈빛을 띄었다. 그러고는 경찰이 말릴 새도 없이 나를 유리조각이 잔뜩 깔린 바닥으로 밀쳤다. 엄마는 뒤집힌 눈으로 내 몸 위에 올라타 나를 바닥으로 짓눌렀다. 온몸에 유리조각이 박혔다. 경찰들이 달려와 엄마를 밀어내었다. 엄마는 발버둥 치며 한 손에 든 유리 조각을 이리저리 휘둘렀다. 날카로운 조각은 나의 오른 손목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일순간 집이 고요해졌다. 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모두가 하던 행동을 멈췄다. 피가 손목을 따라 바닥으로 툭 툭 떨어졌다. 나는 차마 손에 들린 카메라를 내려놓지 못한 채 바닥으로 떨어지는 피만 바라봤다.

  시큰거리는 오른 손목을 매만졌다. 손목에는 짙게 패인 자국이 남아있었다. 손목 보호대를 껴 상처를 가렸다. 남자 사진사의 재방문으로 사무실은 시끌시끌했다. 나는 어젯밤까지 정리한 생활기록부를 선생님들 자리에 놔두었다. 남자는 잘 나온 사진들을 몇 장 뽑아 선생님들에게 돌렸다. 나도 사진을 받아들었다. 동네에 있는 사진관 치고 좋은 사진이 여럿 있었다. 놀이터와 아이들을 연관 지어 따뜻한 색감을 잘 담아내었다. 버릴 사진이 없었다. 낮잠시간이 끝나는 종이 울렸다. 선생님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반으로 향했다. 나는 남자에게 다시 사진을 건넸다. 남자는 투박한 손길로 그것을 받아드렸다. 앞치마 주머니에 사탕 한 주먹을 넣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남자의 입에서 D의 이름이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남자는 책상 유리 아래 넣어둔 바닷가 사진을 보고 있었다.
  “저 이 사진 알아요, 저희 학교 선배 졸업 작품 전시회에서 인상 깊게 봤었거든요. 사진 느낌도 너무 좋아서 또 보려고 작가님 번호까지 수소문 했는데 본인이 찍은 게 아니라고 하시더라고요. 사진학과 나오셨다고 들었는데 혹시 M 대학 나오셨어요?”
  “아, 네.”
  “와 몇 학번이세요. 저도 M 대학 사진학과 출신이에요. 우리 학과가 진짜 좁긴 좁네요. 여기서 이렇게 다 만나고.”
  남자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누군가 내가 찍은 사진을 기억하고 있었다. 카메라에 대한 기억이 물 밀려오듯 들어왔다.
  나는 결국 개인 전시회를 열지 못한 채 졸업을 했다. D는 성공적으로 개인 전시회를 열고 마무리했다. D는 전시 기간 동안 하루에 한 번씩 내게 전시회에 오라며 지도와 문자를 남겨두었다. 매일 문자를 무시하던 나도 마지막 날만큼은 이기지 못하고 딱 한 번 혼자 D의 전시회에 방문했다. 마감 시간이라 사람들은 거의 빠져나가고 D조차도 그곳에 없었다. 홀로 차근히 전시회를 둘러보았다. 절반 쯤 보았을까 이때까지 본 것과 사뭇 다른 분위기의 사진 한 점이 눈에 띄었다. 내가 찍은 바다 사진이었다. 사진 아래 작가 명에는 내 이니셜이 적혀있었다. D는 자신의 메인작과 나란히 내가 문자로 보낸 사진을 걸어두었다. D와 내가 추구하는 방향과 스타일이 너무 달라 나의 사진이 전시회에서 이질적임에도 꿋꿋하게 걸어두었다. 유일한 푸른 조명 아래에서 사진이 빛났다. 빗속의 파도가 살려달라는 울부짖음이 그때처럼 귀에 맴도는 것 같았다. 나는 한동안 그 사진 앞에서 걸음을 뗄 수 없었다.
  누군가가 나를 기억하고 있다는 생각에 다친 손이 자꾸 떨려왔다. 주먹을 꽉 쥐며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심장이 몸 밖으로 분리될 것 같이 뛰었다. 뒤를 돌아 사무실 안을 쳐다봤다. 남자는 허리까지 숙여가며 사진을 보고 있었다. 남자 뒤로 가을 햇살이 비춰졌다. 나도 모르게 손을 들어 직사각형 모양을 만들었다. 나의 카메라에 남자가 담겼다. 이상하게도 정말 카메라의 초점이라도 맞춘 것처럼 남자가 더욱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엄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 날 이후로 처음이었다. 생각보다 엄마도 나도 차분한 목소리로 전화를 마쳤다. 나는 빌라 입구에 서서 심호흡을 했다. 죽어도 오지 않겠다던 곳에 제 발로 다시 오다니 나도 미친년이 맞구나 생각이 들었다. 계단을 한 발, 한 발 딛을 때마다 쉬어가고 숨을 골랐다. 집과 가까워질수록 손목의 통증은 심해져갔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부여잡으며 계단을 올랐다. 201호. 노랗게 바래버린 호가 눈에 띄었다. 그것을 쓰다듬다가 비밀번호를 눌렀다. 알림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내가 나가버린 그 후로 이곳의 시간은 흐르지 않았다. 거실 벽에 걸린 아빠 사진을 봤다. 웃는 듯 우는 듯 묘한 표정이었다. 엄마는 부엌에 서서 국을 끓이고 있었다. 분명 인기척을 들었을 텐데 뒤로 돌아보지 않았다. 조용히 다가가 식탁 의자에 앉았다. 엄마는 대파를 썰고 있었다. 매운 냄새가 식탁까지 퍼졌다.
  “아 대파. 이번에 대파 한 봉 샀는데 다 버리게 생겼어.”
  “대파가 안 들어가는 음식이 어디 있다고 그걸 아깝게 버려.”
  “그러게. 내가 많이 먹는 줄 알고 샀는데. 대파 써는데 맵기만 하고 안 먹더라.”
  “이 년아 네가 대파를 얼마나 많이 먹는데. 한 봉 사면 사일도 못 갔어. 내가 너 먹이려고 대파 썰면서 얼마나 많이 울었는데.”
  대화가 생각보다 어색하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 문을 열었다. 냉장고에 가득 채워져 있던 소주병들은 보이지 않았다. 생수를 꺼내 마셨다. 손목의 통증이 서서히 가시는 듯 했다. 엄마의 눈은 벌겋게 충혈 되어 있었다.
  “엄마.”
  “왜.”
  “그래서 내 이름. 이름 진짜 뜻이 뭐냐고.”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답을 듣기 위해 물었던 질문은 아니었기에 재촉하지 않았다. 마지막 대파를 써는 소리가 집안에 울려 퍼졌다.
  “네 아빠 이름 다채로울 무랑 내 이름 불빛 희를 따서 무희.”
일순간 부엌이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부엌에 서있는 엄마의 모습마저 잘 보이지 않았다. 안개를 흩뿌린 것처럼 눈앞이 뿌옇게 보였다. 눈을 감아버렸다. 대파의 매운 냄새만 코끝에 아릿하게 남았다.

  D에게서 프린터기를 고쳤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자취방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탔다. 빈자리에 앉아 새 카메라를 만졌다. 돌아가는 길에 엄마가 내게 쥐어준 것이었다. 부서진 카메라와 같은 기종이었다. 손에 잡히는 느낌이 어색해 가방에 집어넣었다. D는 프린터기 이야기와 함께 사진관 직원이 필요하다 말했다. 그리고는 이력서 양식을 문자로 보내놓았다. 나는 답을 하지 않은 채 핸드폰 화면을 껐다. 가방에 넣어두었던 카메라를 다시 꺼내 확인했다. 아직 부서지지 않고, 잘 견디고 있었다. 렌즈 뚜껑을 열고 창가에 가져다 댔다. 창가에 낀 서리와 바깥 풍경들이 보였다. 셔터를 한 번 눌러보려다 이내 관두었다. 따뜻한 햇살이 차창 너머로 들어와 카메라를 비췄다. 렌즈의 표면이 반짝거렸다. 렌즈에 뚜껑을 끼워 닫고 케이스 안에 카메라를 넣었다. 온기 가득한 가을의 하루였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가방을 내려놓고 책상 앞에 앉았다. 노트북을 꺼내 프린터기를 연결 시켰다. 프린터기는 오랫동안 쓰지 않아 표면에 거뭇거뭇한 먼지가 앉아있었다. 노트북에 저장되어 있는 사직서 양식부터 열었다. 빈칸을 빠르고 꼼꼼하게 채워나갔다. 마지막으로 이름을 썼다. 한글과 영문, 한자 칸을 채워나갔다. 이제야 한자 란을 제대로 읽어볼 수 있었다. 무가 없을무가 아니었구나 하며. 간단하게 쓴 사직서를 프린트했다. 그것을 몇 번 접어 흰색 사직서 봉투 안에 넣고 풀칠했다.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책상 서랍 제일 아래 넣어두었던 이력서를 꺼냈다. 여전히 비어있는 사진 란처럼 저번에 써놓은 그대로였다. 이력서를 책상 위에 올려두고 옷장으로 갔다. 옷장 문을 열고 걸려있는 옷을 양 옆으로 밀어냈다. 그러자 구석 깊숙이 방치해 두었던 상자가 보였다. 상자를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나프탈렌 냄새가 퍼졌다. 상자를 여니 사진을 찍는 부품들이 여러 가지 보였다. 나는 삼각대 하나를 찾아 꺼냈다. 그리고 먼지가 앉을까 걱정하며 다시 상자의 뚜껑을 덮었다. 책상에 가깝게 삼각대를 세웠다. 몇 년 만에 다시 쓰는 것임에도 물건에는 문제가 없었다. 책상 아래에 있는 의자를 꺼냈다. 삼각대 반대편 벽 앞에 의자를 놔두었다. 벽지가 아이보리색이어서 그런지 배경은 따로 필요하지 않았다. 카메라의 설정을 바꾸고 시범 삼아 카메라 뒤에 섰다. 이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의자에 초점을 맞추었다. 두 손으로 카메라를 잡으니 손이 떨렸다. 구호에 맞춰 셔터를 눌렀다.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사진이 찍혔다. 곧바로 사진을 확인했다. 빈 공간이지만 사진이 찍혔고 방이 증명 되었다. 나는 곧바로 타이머를 맞추고 셔터를 눌렀다. 그리고 의자가 있는 곳으로 뛰어가 앉았다. 타이머의 시간이 끝나고 연속 촬영이 되었다. 내가 찍힌 사진들을 확인했다. 흐트러지고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사진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잘 나왔다. 카메라에 있는 사진을 노트북으로 옮겼다. 몇몇 잘 나온 사진을 골라 필터를 씌운 뒤 증명사진의 규격에 맞게 크기를 수정하며 보정했다. 사진 파일을 열고 프린트 버튼을 눌렀다. 프린트는 크게 한 번 소리 내며 움직이다 사진을 프린트하기 시작했다. 나는 움직이는 기계 소리에 집중하고 눈을 감았다. 이윽고 프린트가 끝나 더 이상 기계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천천히 눈을 떠, 엎어져 있는 종이를 봤다. 천천히 그것을 뒤집어봤다. 하얀색 배경 안에 나의 모습이 선명하게 찍혀 프린트 되었다. 나는 한참 사진을 바라봤다. 가위로 규격에 맞게 사진을 잘랐다. 한 장의 사진 빼고 모두 지갑 속에 넣었다. 남은 한 장의 뒷면에는 풀칠을 했다. 그러고는 이력서의 빈 사진 란에 그것을 붙였다. 이력서가 공백 없이 모두 다 채워졌다. 이력서도 몇 번 접어 흰색 봉투 안에 넣어두었다. 책상 위에는 아직 풀이 다 마르지 않은 두 가지의 봉투만이 놓여있었다. 나는 두 개의 봉투 모두 가방 속에 집어넣고 카메라를 챙겼다. 카메라 렌즈로 거울에 빗대 나를 비춰 보았다. 카메라 너머 속, 내가 점점 선명해지고 있었다. 

충대신문  news@cnu.ac.kr

<저작권자 © 충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충대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305-764 대전광역시 유성구 대학로 99  |  대표전화 : 042)821-6141  |  팩스 : 042)821-724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금영
사장 : 이진숙  |  편집인, 주간 : 이금영  |  충대신문편집국장 : 박채원  |  충대포스트편집국장 : 이재윤  |  충대방송편성국장 : 성민주
Copyright © 2011-2021 충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