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성장 동력의 핵심

 

출처 : http://blog.ust.ac.kr/5118/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대결이 있었다. 인류 대표 이세돌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바둑 대국이었는데, 바둑에 무지한 사람들에게도 상당한 충격과 관심을 불러일으킨 사건이었다. 작년부터 생명공학 연구 분야에서 알파고만큼 화제가 되는 이슈가 있었는데, 바로 ‘유전자 가위’ 기술이다. 정확한 이름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인데 이는 원하거나 불필요한 부위의 DNA를 편집할 수 있는 기술이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란 무엇인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가위라는 말처럼 동·식물 유전자에 결합해 특정 DNA 부위를 자르는데 사용하는 인공 효소이다. 유전자 가위 기술은 DNA의 특정 서열을 제거·수정·삽입할 수 있으므로, 문제 되는 유전자만 잘라내고 새로운 유전자를 바꿀 수 있다.
 예를 들어 재킷의 지퍼가 망가진 경우를 생각해보자. 지퍼가 잘 닫히지 않는 것은 보통 지퍼 조각(DNA) 하나, 두 개가 말썽이다. 이 말썽인 지퍼(DNA)를 잘라내고 새로운 지퍼 조각을 끼우는 것이라 생각하면 쉬울 듯하다. 이는 난치병을 고치거나, 유전자조작식품을 만들거나 멸종 위기에 빠졌거나 멸종된 생물을 복원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어 지난 몇 년간 전세계 과학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아왔다.
 특히 2013년, 높은 정확도와 효율을 가진 제3세대 유전자 가위 ‘크리스퍼(CRISPR/CAS-9)’가 개발되며 해당 연구에 불을 붙였다. 크리스퍼는 교정 대상을 찾아내는 가이드 RNA와 불필요한 부분을 잘라내는 CAS-9 단백질 효소로 이루어져 있다. 크리스퍼는 박테리아가 가지는 회문구조쪰를 뜻하는 말인데 외부 침입자에 대한 정보를 기억하여 빠르게 제거하는 박테리아의 원리를 이용한 기술이다. 과거 유전자 하나를 잘라내고 새로 바꾸는 데 수개월에서 수년씩 걸리던 것이 크리스퍼를 통하면 며칠이면 되고, 한 번에 여러 군데의 유전자를 동시에 손볼 수도 있다.
 유전자 가위가 연구되는 대표적인 곳은 신약개발 분야다. 피가 멎지 않는 희귀 병인 혈우병은 유전자 염기서열이 거꾸로 놓여 있는 돌연변이로 발생하는데,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쪰과 김동욱 연세대 의대 교수 공동 연구진은 혈우병에 걸린 사람의 세포로부터 역분화줄기세포(iPS)를 만든 뒤 혈우병을 일으키는 원인 유전자를 유전자 가위로 교정, 정상적인 세포로 분화시켜 혈우병에 걸린 쥐에 이식해 치료하는데 성공했다. 또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연구진은 2014년 에이즈 바이러스의 감염경로인 ‘혈액세포 유전자(CCR5)’를 제거하는 방식으로 에이즈 치료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아직 더 많은 실험과 노력이 필요한 단계이지만 치료법이 상용화되면 평생 약을 복용해야 하는 에이즈 환자의 치료는 물론 그들의 경제적 부담도 덜게 될 것이라 예측한다.
 유전자 가위는 유전자 변형 농산물(GMO)에 대한 우려를 줄이는 대안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병충해에 강한 GMO 콩은 식물에 동물 유전자를 집어넣는 기술을 활용해 나온 것이다. 인위적으로 외부 유전자를 넣다 보니 생태계 혼란에 대한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식물의 약한 유전자를 잘라내고 스스로 강한 유전자를 복원하도록 할 수 있다.

 인류에게 축복만을 가져다 줄 것인가?
 이처럼 난치병 치료에 대한 희망을 주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반대 의견도 만만하지 않다. 유전자 편집이 외모나 성격 또는 성질 변화와 같은 곳까지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법적, 윤리적, 사회적인 논란 소지가 충분하다. 2014년 중국 과학자들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원숭이의 배아에서 특정 유전자를 바꿨다. 이를 사람에게 적용하면 정자와 난자의 DNA를 바꿔 원하는 유전자를 가진 ‘맞춤형 아기’로 발전시킬 수 있다. 또한 영국이 세계 최초로 인간 배아에 대한 유전자 편집 실험을 허용하면서 이러한 논란을 더욱 증폭시켰다.
 1997년에 만들어진 미래 유전자 인간을 다루었던 “가타카(Gattaca)”라는 영화를 떠올려본다.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난 사람들이 사회 상층부를 이루는 반면, 전통적인 부부관계로 태어난 사람들은 열등한 것으로 취급받아 사회 하층부로 밀려나는 디스토피아(dystopia) 적인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멀게만 느껴졌던 일이 어느새 현실로 가깝게 다가왔다. 알파고가 인공지능에 대한 우려를 가져왔듯, 유전자 가위 역시 유전자로 모든 게 결정되는 사회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기술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인간들의 윤리성 · 도덕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유전자 편집을 실행하기 전에 멈춰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 회문구조 : DNA상에서 염기배열이 역방향으로 반복되어 회문적(回文的) 구조, 즉 왼쪽부터 읽는 것과 오른쪽부터 읽는 것이 동일한 구조를 이루는 부분

  * 김진수 단장은 “세계 누구도 못한 연구를 해낼 것”라는 각오로 서울대학교 종신직 교수 자리를 사직하고 비정규직인 연구단장직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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