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에서 유행으로, 유행에서 문화가 된 판타지 드라마

 

    조선시대에 뱀파이어가 살았다면 어떤 모습일까? 어느 날 갑자기 조선에서 왔다는 사람이 불쑥 내 눈 앞에 나타난다면? 
   듣기에 허무맹랑하고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들이 드라마의 소재가 되어 안방극장에 나타나고 있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연 평균 6편, 지난 8월에만 3편이나 방영됐을 정도로 판타지 드라마는 우리에게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존재가 됐다. 우리 주변에 익숙하게 자리 잡은 다양한 판타지 드라마들을 만나보자.

   #1. 판타지 사극, 태동하다. 국내 최초 판타지 사극 <태왕사신기>(2007)
  사극과 판타지, 블록버스터의 결합이 어떤 모습인지 궁금하다면 <태왕사신기>를 보는 게 적격이다. <태왕사신기>는 ‘광개토대왕’이라는 역사적 인물의 일대기와 한국 전통 단군 신화, 강서 고분 벽화에 그려져 있는 사신도를 모티브로 했다. 물·불·구름·바람을 다스리는 사신의 능력, 불의 힘을 빼앗기 위해 수 천년을 살아온 화천회란 집단의 능력 등 판타지 설정을 역사적인 사실을 토대로 도입해 화제를 낳았다. 특히 신화 속 내용을 각색해 화려한 CG로 표현했던 1회는 그 해 방영된 드라마 중 가장 높은 첫 회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후 다양한 판타지 사극들이 연이어 등장하여 국내 판타지 사극 드라마의 본격적인 시작점이 되었다.

   #2. 언제부터 그렇게 예뻤나? 영혼 체인지 판타지 <시크릿 가든>(2010)
  “이게 최선입니까?” <시크릿 가든>은 재벌 2세와 평범한 스턴트 우먼의 사랑 이야기라는 자칫 뻔할 수 있는 신데렐라 스토리에 신비한 물을 먹고 서로의 영혼이 뒤바뀐다는 판타지 설정을 첨가해 드라마 명대사처럼 ‘최선’의 드라마가 됐다. 남녀의 영혼이 바뀐다는 황당한 설정은 두 주인공의 사랑을 더욱 애틋하게 만드는 역할을 해 <시크릿가든> 열풍을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영혼이 바뀐다는 설정을 통해 평범한 여자 주인공의 삶과 재벌가인 남자 주인공의 삶을 비교해 갑질을 하는 소위 고위층 사람들을 통쾌하고 효과적으로 비판했다. 당시 드라마 대사 중  “이탈리아 장인이 한땀 한땀…”같은 대사는 크게 유행을 했으며, 거품키스신 등 많은 명장면은 여러 방송에서 패러디되며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다.

   #3. 나는 조선의 세자 이각이요. 타임 슬립 판타지 <옥탑방 왕세자>(2012)
  사랑에는 나이도, 국경도 없다. 그렇다면 300년을 뛰어넘는 사랑은 가능하지 않을까. <옥탑방 왕세자>에서 조선의 왕세자 이각은 신하들과 함께 3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21세기의 서울로 날아와 박하라는 여자주인공과 사랑을 이뤘다. 드라마는 조선의 왕세자가 21C 음식인 오므라이스에 중독되고, 관람시간이 끝난 고궁 앞에서 집주인이라고 소리를 치는 코믹한 장면들로 타임슬립을 감각 있게 풀어냈다. 특히 이각과 박하가 결국 300년의 시간을 뛰어넘는 사랑을 이루며 끝난 마지막 회는 많은 시청자들의 판타지 감성을 채운 명장면으로 남았다. 이후에 숱한 타임슬립 드라마들이 본격적으로 방영됐다.

   #4. 빨간 휴지 줄까? 파란휴지 줄까? 빙의 로맨스 판타지 <오 나의 귀신님>(2015)
  여름 특선 드라마나 공포특집에나 나올법한 귀신을 소재로 로맨스 드라마라니, 황당한 소리가 아닌가. 하지만 <오 나의 귀신님>은 납량특선 드라마도, 공포 특집드라마도 아닌 신순애라는 처녀귀신에 빙의된 여자주인공 나봉선과 스타 셰프인 남자주인공 강선우의 빙의 판타지 ‘로맨스 드라마’다. ‘빙의’라는 판타지 소재를 활용하여 주연뿐만 아니라 주변 등장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비밀을 몰입도 있게 풀어내어 화제를 낳았다. 특히 여자주인공 나봉선 역을 맡은 박보영이 귀신에 빙의되어 조용한 사람에서 통통튀는 사람으로 180도 변하는 연기는 SNS에서 연일 화제가 되며 트렌디드라마로서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사진출처 / 1. TVN홈페이지  2. SBS홈페이지  3. MBC홈페이지  4. SBS홈페이지

 

   판타지, 금기에서 문화가 되다
   최근 판타지 드라마는 제작 편수가 많아졌을 뿐만 아니라,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브라운관을 장악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중들이 판타지 드라마를 사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판타지 드라마 열풍이 지속되는 원인에 대해서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는 “90년대 청소년들이 읽던 장르 소설문화의 중심이 판타지 로맨스였다. 당시 사회에서 비주류로 금기시하던 문화였지만 대중성이 있던 장르였다. 그렇게 90년대에 판타지 장르를 즐기던 세대가 세월이 흘러 사회 중심축으로 이동했고, 드라마 생산과 소비의 중심이 됐다. 따라서 자연적으로 기존 리얼리즘을 추구하던 드라마보다 판타지 드라마가 인기를 끌게 됐다”고 말했다. 사회 문화적인 세대 변화가 판타지 장르를 음지 문화에서 양지 문화로 이끈 것이다.
  또한 김 평론가는 “판타지 드라마를 비판하던 방송관계자의 인식변화와 더불어, 사람들이 드라마를 보는 목적이 뚜렷해진 것도 판타지 드라마의 유행을 이끌었다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이 점차 현실에 없던 것을 드라마를 통해 대리 충족하려하고, 판타지 드라마가 사람들의 그런 욕구를 충족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며 판타지 드라마가 드라마란 콘텐츠에 대한 대중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역할을 한다고 평가했다.

   판타지, 드라마 산업의 블루오션
   한편 판타지 드라마가 잠깐 인기를 끌고 끝날 것이라고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다. 이처럼 판타지 드라마의 전망에 대한 우려 섞인 시선에 대해서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는 “앞으로 판타지 드라마는 계속 인기를 끌 것이다. 무엇보다 중국시장이 판타지 드라마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이어 김 평론가는 “본래 중국문화는 리얼리즘을 중시하고 비현실적인 내용을 금기시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최근 외계인이 등장하는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즉, 중국 시장에서 판타지 드라마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는 것” 이라고 말했다.
   중국 시장에서 한국 판타지 드라마가 인기를 끌 수 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로 김 평론가는 “중국 시청자의 요구가 클 뿐만 아니라 기존에 판타지 장르가 금지돼 있어 중국에서 제작되는 판타지 드라마 작품 수 자체가 적다. 때문에 한국에서 제작되는 판타지 드라마가 들어갈 틈이 크다. 한국 드라마 시장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중국 시장에서 한국 판타지 소재 드라마에 대한 호기심이 크고 판로가 넓기 때문에 판타지 드라마는 앞으로 계속해서 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판타지 드라마는 일회적인 유행을 넘어 앞으로 드라마 산업에서 하나의 블루오션 시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누구나 한번쯤 상상해봤을 이야기가 현실로 그려져 우리를 유혹한다. 판타지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것은 다양한 사회문화적인 요인과 더불어 삭막한 현실의 돌파구를 찾는 대중들의 기본적인 욕구의 증가에도 있다. 김 평론가는 끝으로 “판타지 드라마는 동아시아에서 전통적으로 결핍되어 있던 소재라고 생각한다. 한국도 대중의 요구에 비해 지나치게 작품이 결핍돼 있었다. 앞으로 대중의 욕구 해소를 위해 판타지 드라마 제작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며 판타지 드라마 제작의 필요성에 대해 밝혔다. 대중들의 요구와 관심이 계속되는 한, 판타지 드라마 열풍은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다.

 

김채윤 수습기자 yuyu730@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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