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눈



 

   모래바람을 거스른다. 조개껍질이 발가락을 푹 찔러온다. 부슬부슬한 모래의 감촉은 낯선듯하지만 낯이 익다. 몸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리라. 가까운 곳에서 뱃고동이 울리고 해안가가 조금 울린다. 조선소가 있는 방향으로 아버지가 보인다. 아버지는 오래 전 할아버지를 떠나보낸 자리에 앉아 있다. 발로 차서 모래를 튀긴다. 따끔한 모래의 습격을 받은 아버지가 내 쪽을 돌아본다. 왔어, 하는 눈빛이다.
   벌써 몇 년이나 지났을까. 오래 전 우리 가족은 바다를 떠났었다. 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루고 난 직후였다. 고령의 나이에 숨을 거두신 할아버지는 어부셨다. 태어나서부터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마을을 벗어나지 못하던 할아버지는 배 위에서 조용히 주무시며 숨을 거뒀다. 먹구름이 낀 날, 우리 가족은 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렀다. 우리 섬에는 전통이 존재했다. 죽은 사람을 시체 째 바닷가로 매장하는 것이었다. 죽은 이는 그것으로 바다의 일부가 된 것으로 여겨졌다. 우리 섬마을에서 대대손손 내려온 장례방식이었다. 그때, 마지막으로 본 할아버지는 짚으로 뒤덮여진 상태였는데 그것을 들고 있던 아버지의 낯빛은 꽤나 어두웠다. 파도는 할아버지를 잡아먹을 것처럼 거칠게 일렁였고 우리가 서 있던 곳까지도 드문드문 덮쳐왔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어깨를 어루만지자 이윽고 아버지가 손을 놓았다. 할아버지는 바다 속으로 떨어져갔다. 천천히. 아버지는 그것을 끝까지 보지 못하고 등을 돌렸다.
   물고기 밥이 될 거야. 돌아오는 차안에서 아버지가 중얼거렸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손을 쥐어주었으나 아버지의 떨림은 멎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바다에서 태어나 바다에서 돌아가셨다. 언제나 아버지는 그런 인생을 마땅치 않아 했었다. 나는 차창 너머로 수십 개의 결을 따라 일렁이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할아버지가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저렇게 죽지 않을 거다. 아버지의 그 말은 일종의 선언이었다. 그렇게 수 년 전, 삼십대 중반을 갓 넘긴 젊은 나이의 아버지를 따라 우리 가족은 서울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고향인 바다를 버리게 된 건 아주 순식간의 일이었다.
   서울에서의 생활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육지에 정착한 아버지는 단번에 그럴듯한 회사에 취직했다. 아버지는 바닷물에 뒹굴던 시절을 잊기라도 한 것처럼 태연해 보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몇 년 뒤, IMF가 터졌다. 좁아진 회사의 구멍은 아버지를 받아주지 않았다. 머리가 서서히 새하얗게 물들던 아버지는 힘없이 집안으로 가라앉았다. 난파한 선박처럼.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몇 개월을 새 직장을 구하기 위해 아버지는 서울을 돌아다녔으나 소용없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결국 바다로 되돌아왔다.
   바다가 푸르게 일렁인다. 저 속에 수만 개의 생명이 꿈틀거리고 있겠지. 나란히 앉은 우리 쪽으로 파도가 들이닥친다. 어떤 파도는 발가락에 닿지만 어떤 파도는 닿지 못한다. 매번 다른 순간들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바닷물을 머금은 모래를 살살 만져본다.
   “바다엔요, 얼마나 많은 물고기가 살고 있는 걸까요.”
   아버지는 대답 없이 일렁이는 파도의 결을 바라본다. 바다를 보는 아버지의 얼굴은 힘이 없어 보인다. 내일부터 아버지는 뱃일을 하러 바다에 나갈 예정이다. 일을 주선해준 할아버지의 오랜 친구 분은 이 일도 요즘은 없어서 못한다고 난리였다. 어머니는 집안에서 아버지가 쓸 그물을 짰지만 아버지는 그물을 만져보지도 않았다. 아버지는 바다를 멍하니 바라볼 때가 자주 있었는데, 그때마다 나는 아버지가 할아버지 생각을 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문득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이 애비는 말이다, 오래 전부터 봐 왔다. 이 까만 바다의 입이 얼마나 큰지.”
나직한 언어들이 전하는 바를 나는 깨달았다. 그것은 물에 빠져 죽은 사람들과 물에 빠져 죽은 거나 마찬가지인 방식으로 장례를 치룬 사람들을 얘기하는 거였다. 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그런 식으로 많은 사람들을 잃어왔을 것이었다. 낮에는 포근해 보이는 바다에게. 그것은 단순히 바라보면 배신처럼 느껴지기도 할 것이고, 무의미한 죽음처럼 보일 것이었다.
   작은 배가 우리 근처에서 정박한다. 배에서 나온 어부는 물고기가 가득 묶인 그물을 가져온다. 그물을 사장 위에서 푼다. 수십 마리의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모래를 몸에 묻힌 채 꿈틀거린다. 물고기를 바라보는 어부의 입가로 나긋한 미소가 그려진다. 물고기 중에는 손톱만한 크기의 도저히 먹을 수 없을 것 같은 작은 것도 있다.
   “바다의 눈이라고 아세요?”
   조그마한 물고기를 보는 순간, 문득 떠올랐다. 아버지는 내 쪽을 보더니 아무 말이 없다.
   “시체에요, 시체. 물고기는요, 죽어서 바다의 눈이 된대요. 모든 몸이 분해가 되어 단백질 정도만 남는 거죠. 해류의 상층에 위치했던 물고기가 죽으면, 그 물고기의 분해된 입자가 마치 눈처럼 심해를 향해 떠내려 간데요. 먹이를 구할 힘도 없는 물고기나, 앞을 못 보는 심해어는 그 바다의 눈 때문에 살아갈 수 있죠. 유일한 먹이인 거예요.”
   그물에서 풀려나온 새끼물고기가 우리 근처까지 튀어 오른다. 나는 그 물고기를 손에 들어 아버지에게 보인다. 아무 말 없이, 우리는 은빛으로 일렁이는 물고기를 바라보았다.
   밤이 되자 바다는 한없이 고요해진다. 뒤쪽에서 어머니가 식사를 위해 우리를 부른다. 아버지는 일찍이 방류해준 물고기의 궤적을 좇듯, 바다를 바라본다. 모래 위로 파도가 들이닥치며 새하얀 거품을 가득 쏟아낸다. 그 거품은 마치 할아버지의 유골 같다. 거품 쪽으로 손을 넣는다. 은은한 감촉이 잠깐, 나를 왔다간다. 할아버지는 지금까지도 항해 중이신 걸까.
   죽은 물고기는 다른 무엇의 생명이 된다. 죽어서까지 바다로 가게 된 할아버지도 결국은 바다의 눈이 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그건 그거대로 아름다운 일인지 모른다. 바다에게 항상 고마워했던 할아버지는 그것을 굉장한 영광으로 여겼을 것이다. 바다는 인간에게 일용할 양식을 베풀고, 섬마을 사람들은 죽어서 바다에게 새하얀 빛이 되어 준다. 바다의 눈.
   밤공기를 따라 파도가 나긋한 리듬으로 몸을 던진다. 새하얗게 부서진 조개껍질이 반짝인다. 그 껍질을 밟는다. 따가운 듯 따사롭다. 아버지가 내 손을 붙잡고 바닷가를 가로지른다. 바닷물처럼 아버지의 손도 따뜻하다. 나는 아버지에게 묻는다. 내일 뭐하실 거냐고. 아버지는 조각조각 흩어지는 바닷물을 휘젓는다. 그리고 조용히, 푸르른 바다를 응시한다.
   우리 가족은 죽어서 바다의 눈이 된다. 하지만 요즘 들어 나는 느낀다. 그 새하얀 빛이 되는 일이 꼭 그렇게 나쁜 일만은 아닌 것 같다고.

이정대(안동대학교 정보통계학과·1)

저작권자 © 충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