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을관계와 재벌개혁ㆍㆍㆍ뿌리깊은 숙제들의 재등장

 
  작년 대선, 후보들이 앞다투어 가지고 나온 ‘경제민주화’라는 화두는 이제 더 이상 낮설지 않은 용어가 됐다. 지난달 28일 박근혜 정부는 140대 국정 과제를 최종 확정하고, 경제부흥의 3대 추진전략으로 창조경제, 경제민주화, 민생경제를 꼽으며 인수위 단계에서 빠진 경제민주화 용어를 되살렸다.
  한편 2012년 9월 경제민주화 국민운동본부가 ‘1%에 의해 경제적 부를 독식당한 99%가 경제적 권리와 정당한 몫을 되찾고자 하며, 나아가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과 양극화를 초래한 경제구조를 개혁하여 공정하고 민주적인 경제 질서를 세워나가자는 것이 경제민주화의 출발’임을 내걸고 출범했다. 이렇게 정계와 시민사회가, 최근 떠오른 이슈들이 극명히 보여주는 ‘갑의 횡포’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며 경제민주화는 어느 때보다도 비중있는 키워드로 자리매김했다.

  ‘을의 고통’에 공감하는 사회
  편의점주들의 연이은 자살로 드러난 가맹본부의 부당행위와 연이어 터진 남양유업 파문은 최근 우리 사회에 이는 크고 작은 파동의 근원이 됐다. 잘못된, 더 나아가 비인간적이기까지 한 관행들이 암암리에 이렇게나 가까이에서 자행되고 있었다는 사실은 국민들에게 충격과 분노를 안겼고 대대적인 불매운동으로까지 이어졌다. ‘을’들의 직접적인 행동도 이어졌다. 불공정거래 근절과 경제민주화 실현을 촉구하며 출범한 ‘전국 중소상인·자영업자 살리기 비상대책협의회’는 출범식에서 “재벌·대기업 등 슈퍼 갑의 무한 탐욕과 끝없는 횡포 속에 짓눌려 온 전국의 600만 중소상인·자영업자를 비롯한 ‘을’을 살리겠다”고 결성 목적을 밝혔다.
  또한 참여연대는 성명에서 “전국의 1백만 가맹점주, 대리점주에 대한 대기업 본사들의 횡포에 커다란 분노를 느낀다”며 “하루빨리 전국의 가맹점주·대리점주들에 대한 재벌·대기업 본사들의 불법·불공정 행위를 근본적으로 차단하고, 그들의 생존권이 보장받을 수 있도록 관련 제정안을 즉시 처리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런 움직임을 반영해,  속도조절론을 비롯해 크고 작은 입장차를 보였던 여야는 6월 임시국회에서 ‘가맹사업거래 공정화법(프랜차이즈법)을 비롯한 경제민주화 관련 3개 법안을 우선 처리하기로 지난달 31일 합의했다.

  경제민주화, 재벌개혁 빼고는 말할 수 없어
  ‘을’이 직면한 고통을 당장 덜어주는 것을 넘어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경제민주화의 핵심적 요소는 소유집중의 해소 또는 방지다. 경제민주화가 재벌개혁이라는 뿌리깊은 숙제와 새삼스레 묶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공정한 경쟁과 기회를 보장하고 기득권자의 진입장벽을 제거하는 것이 곧 경제민주화의 출발이기에, 1980년대 초부터 제기돼 온 재벌 경제력 집중 문제가 다시금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지난달 29일 경실련에서 있었던 경제민주화 평가 토론회에서 이봉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금까지 경제민주화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거의 없었던 상태”라며 “경제민주화의 의미는 우리나라의 경제 질서를 규정짓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치, 사회질서를 모두 포괄하는 넓은 의미로 이해할 수 있으며 헌법 전문에 나타난 정신을 실현하기 위한 범국가적 목표”라고 강조했다. 또 그는 “재별개혁의 핵심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전 영역에 걸쳐 영향력이 확대되어 가는 문제와 이로 인해 기본적 가치 외에 공동체 질서가 훼손되는 것이 주요 핵심”이라고 말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재벌에 의한 경제력 집중은 재벌세습이라는 소유 집중이 우려되는 상황을 낳고 있으며, 이로 인해 현대 시장경제체제의 근간이 되는 법과 제도를 무력화시키는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경제민주화에 대한 여러 관점의 해석이 있음을 언급하며 “처음 경제민주화는 재벌규제 중심으로 시작됐지만 최근에는 정년연장과 통상임금을 비롯한 노동문제에까지 확대되고 있다”며 덧붙여 경제민주화에 원칙이 있어야 함을 강조하고, 소비자 중심의 관점과 보편적 시장규칙의 우선 등을 제시했다.

  경제민주화 바람은 입법을 둘러싼 정치권의 알력다툼을 넘어서, 오랜 시간 억눌린 사회구조의 반영이자 우리 모두의 목소리다. 노력이 반영된 성과차등의 수준을 넘어 사회적 지위의 계급화라는 그늘을 한국 사회에 드리우고 있는 이 기나긴 왜곡은 더 이상 묵살되기에 너무 곪아버린 듯 하다.

송민진 사회부장
blossomydayz@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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