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따로 글 따로 배우는 영어의 딜레마

 
  겨울방학을 맞아 토익 학원에 등록한 대학생 A양은 난생 처음 토익시험을 치렀다. 방학 내내 마음 졸이며 공부한 보람이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럭저럭 점수가 잘 나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은 A양. 그러나 A양의 학원 수강 굴레는 거기서부터 시작이었음을 아직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태어나, 가이드가 따라붙는 해외여행을 갈 때를 제외하고는 외국으로 나갈 생각이 전혀 없을지라도 대한민국에서 영어공부를 등한시하기는 힘들다. 학벌사회인 우리나라의 대입시험은 영어가 주요과목으로 포함돼 있고 웬만한 기업에서는 지원 자격으로 영어 자격증 점수를 요구하니까. 그리고 이런 현실에서 취업을 목표로 하는 우리의 성실한 대학생들은 A양처럼 방학 내내 졸린 것도 참고, 놀러 가고 싶은 것도 참아가면서 꼬박꼬박 학원에 나간다.
  우리에게 학원에 다니지 않고 혼자 영어를 공부하겠다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혼자 영어공부를 하겠다는 건 며칠 동안 단어 몇 개를 외우는 척 하다 그만두겠다는 뜻이다. 모두들 몇 가지 ‘스킬’이 토익학원에서 배우는 전부라며 투덜대지만 일단 등록부터 하고 보는 이중심리를 지녔다. 
  그렇게 방학 내내 토익 공부를 하고 나면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웬만해선 쓸 일  없는 전문적인 단어들도 몇 개 알게 되고, 시험을 치면 공부한 보람을 느낄 만큼의 점수를 받게 된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생긴다. 그 동안 학원에서 열심히 배운 건 듣기와 독해지 말하기가 아니다. 말보다 글을  먼저 배운 대한민국 대학생들의 회화 실력은 몇몇 외국에서 살다온 이들을 빼면 그다지 대단치 않다. 외국인이 길만 걸어가도 마음이 요동치고 혹시 길이라도 물어볼세라 시선을 피한다. 그런 자신에게 자괴감이 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게 당연한 거 아냐?’ 하며 합리화를 한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는 영어를 말로 배운 게 아니라 글로 배웠으니까.
  그렇게 속으로 투덜대보지만 별 수 없다. 그런데 요새는 갑자기 또 영어 회화가 필수란다. 다시 학원에 등록한다. 또 열심히 공부한다. 결국 이 상황이 무한 반복된다. 평생동안 영어학원에 대체 얼마를 쏟아 부어야 원어민 수준의 영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될까.
  기자의 막내 동생은 올해 필리핀으로 유학을 떠났다. 남동생의 필리핀 행을 강력하게 찬성한 기자는 초등학교 5학년짜리 꼬맹이가 떠나던 날 이렇게 말했다. “나중에 넌 나한테 고맙다고 큰절 할 거다” 그리고 비용을 걱정하는 어머니께 나 하나 영어 학원 보내는데 얼마 들었는지를 끄집어내 설득했다. 기자가 21년 간 영어학원에 투자한 돈이 모르긴 몰라도 그것보다 적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투자해야 할 것까지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하다. 물론 노력부족도 있겠지만 다른 사람의 상황도 비슷한 거 보니 이게 꼭 배우는 사람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그렇게 투덜거리면서 또 자격증 따로 회화 따로의 공부를 하기 위해 영어 학원 문을 두드리겠지.


송송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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