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접수국 지원협정으로 의도 드러나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지난 9월28일, 전세계의 지상발사 전술핵무기를 폐기하고 해상발사 전술핵무기를 회수하여 미국내의 중요지역에 보관하는등, 몇가지의 핵경쟁 체제이완을 위한 조치를 취하는 발표를 하였다. 이 발표는 소련의 즉각적인 대응을 가져와서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주지하다시피 10월6일, 부시의 발표보다 포괄적이고 심층적인 내용을 가지는 핵감축선언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소련의 핵감축선언은 그것이 가지는 방대하고 전진적인 내용에 비해 그것이 한반도의 정세에 미치는 영향이 보다 작고, 또 그것의 중요한 목표가 서방세계의 경제원조를 많이 얻는데 있다는 등의 이유로 인하여 부시의 발표보다는 큰 관심과 논의를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관심의 초점은 일단 부시의 발표와 그 이후 미국언론에 의해 보도된 미국의 남한 배치 공군전술핵의 철수와 관련된 것으로 모아지고 있다.
 
  <비핵화>와 <비핵지대화>

  미국의 남한배치 전술핵 전면철수 방침과 관련하여 최근 남한정부는 이를 우려하면서도 미국의 한반도 핵우산정책은 존속된다는 전제하에 한반도의 <비핵화>에 대한 선언을 관철시키려는 입장을 뚜렷이 취하고 있다.
  이는 지난 10월말에 평양에서 열렸던 제4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 남한정부의 입장이다. 남한정부가 목표로 하는 <비핵화>라는 것을 핵무기의 제조, 보유, 반입을 금지하고 미국의 핵우산속에는 계속 포함되어 있으며 핵무기를 실은 항공기나 함정의 영공, 영해통과와 기착, 기항에 대해서는 아무런 규제를 하지 않는 것으로서 일본의 비핵화개념을 주요한 모델로 삼고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서 이번의 고위급회담에서 북한이 공식 제안한 <비핵지대화>개념은 핵무기의 제조, 보유, 반입은 물론이고 그것의 사용과 영공 영해 통과, 기착, 기항에 대해서도 엄격히 금지하는 것이다.
  앞으로 미국의 남한배치 전술핵무기의 철수가 이루어진다면, 그리고 그것을 공신력있는 검증수단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면 한반도의 핵문제는 <비핵화>와 <비핵지대화>의 대립을 그 축으로 하면서 북한의 <핵사찰>문제가 중요한 쟁점으로 대두될 것이다. 이 북한의 <핵사찰>문제는 미국이 한반도에서 가장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사안중의 하나로서 이번의 전술핵 전면철수방침도 그 주요한 목표가 북한으로 하여금 더 이상 핵사찰 거부의 명분을 갖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 크다.

  전략적 전술핵 폐기 선언

  미국이 종래의 핵군확정책에 중요한 수정을 가하는 듯한 새로운 정책을 취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가령 한반도라는 국지적인 차원에서는 <북한의 핵개발기도>에 쐐기를 가하는 것에도 중요한 목표가 있을 수 있다고 하겠지만 그것은 한반도라는 국지적인 차원에서조차 전면적인 이유가 될 수 없다. 보다 중요한 것은 최근 변화하는 세계정세에서 미국이 더 이상 전술핵의 효용가치를 고집할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최근 3-4년의 국제정치정세의 변화는 미국이 다시금 세계의 단일패권을 장악한 것으로 보게끔 하는 이른바 팍스 아메리카나시대의 도래를 말해주고 있다. 미국 중심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대항하던 바르샤바조약기구(WTO)가 올 6월에 완전히 해체된 것을 비롯하여 동독의 서독에 대한 흡수통합, 동유럽 사회주의국가들의 전반적인 우경화를 거쳐 급기야는 소련의 공산당이 사실상 해체되어 2차대전 이후 미국에 대한 가장 강력한 적대세력으로 존재해오던 사회주의 블럭이 중국 등의 일부국가를 제외하고는 일단 스스로 무장해체를 하는 시점에 이른 것이다.
  게다가 지난 2월말에 미국의 완승으로 끝난 걸프전쟁에서 미국은 커다란 정치적 부담을 안고서 굳이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아도 세계도처에서 자신의 패권을 유지, 강화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확실히 가질 수 있었다.
  따라서 미국에 반대하는 입장을 가진 제3세계의 지역적 강국들에 대해서도 자신감있는 핵감축정책과 그를 보전하는 재래식무기체계. 강화정책, 그리고 이에 상응하는 새로운 군전술운용체계의 채택, 강화로 자신이 추구하는 모든 대외정책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고 이러한 상태에서 여러모로 정치적인 부담이 되는 전술핵무기를 감축시킬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게 된 것이다.
  특히 전술핵무기의 폐기 내지는 감축은 재래식무기의 전술적 중요성을 재고시켜서 미국내 군산복합체의 무기판매시장을 확대시키는 중요한 부수효과를 가져온다.

  재래식 무기체계 강화=전시접구국지원협정

  이러한 전술핵무기의 폐기 또는 미국내로의 철수에서 오는 전력의 공백을 메우는 재래식 무기체제의 강화와 새로운 전술운용체계의 내용은 무엇인가.
  그 내용은 최근 한반도에서 가장 전형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신속배치군(RDF)체계의 강화와 그 기동력을 보장할 수 있는 현지국지원체계의 효율화, 그리고 현지국의 군비증강과 그에 연관되는 군비분담체계의 강화 및 군장비의 현대화, 군대체계의 합동군 내지는 통합군으로서의 변환, 강화 등이다.
  현지동맹국지원체계의 강화는 최근 중요한 쟁점으로 대두되고 있는 한미 전시접수국지원협정(WHNS)의 체결기도로 대표되는 바 이것은 유사시에 미본토나 기타의 지역에서 한반도로 긴급배치되는 미군의 작전 수행에 필요한 탄약, 식량, 수도, 전기, 인력, 자본 등을 적시에 필요한 만큼 충분하게 언제든지 (심지어는 평시에도 미군지휘부가 전시를 대비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요구하면 언제든지)현지접수국 즉, 남한정부가 무제한으로 지원하는 내용을 담은 불평등하고 위험하기 그지없는 조약이다.
  현지국의 군비증강은 제3세계의 <호전적인 국가>의 침략 위험성을 선전하면서 국지적 분쟁에 대비한 군사력강화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을 재고시키는, 급변하는 세계정세에서 국가적 혹은 지역적 안정보장체계의 강화를 역설하면서 유도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긴장완화가 대세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제3세계의 주요국가를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들이 군비의 확장을 계속하고 있는 것에서 그 실태가 드러난다.
  또한 미국의 경제가 계속적인 군확노선을 감당해내기에는 이미 역부족이기 때문에 그 부담을 각 지역의 강대한 미국동맹국에게 지우면서 역시 군비확장에 따른 무기수출시장의 확대를 꾀하고 있다.
  동북아시아 지역의 경우 일본의 군비확대를 강력히 요구하는 미국의 정책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러한 미국의 정책은 경제의 성장에 따른 정치군사대국화를 강한 내적 요구로 갖고 있는 일본내의 보수우파세력의 환영을 받으면서 이 지역에서 새로운 긴장과 갈등의 불씨를 뿌리고 있기도 하다. 이것은 최근 남한 등 이 지역의 관련국가내 군확세력이 일본의 위협을 새로운 군비확장의 빌미로 이용하려 하는 것과도 연결되어 매우 교묘한 군확노선이 토대가 되고 있다.
  이러한 각국의 군비확장은(전술핵무기의 감축과 더불어서) 필연적으로 재래식무기체계의 강화로 연결된다. 최근 남한정부가 추진하는 f-16기 120대 도입, 생산계획은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그리고 군지휘체계의 강화와 문민배제정책이 노골화되는 바 최근 남한군대의 체계기 합동군제로 강화되면서 직업적 군지휘관의 권한이 대폭 강화된 것은 그 예이다. 남한의 경우는 특히 한미연합사령부의 지휘권이 남한군으로 이양되는 과정을 밟으면서 형식적으로는 군자주권이 강화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데 이것이 <자주국방력의 강화>라는 미명하에 앞서 예시한 군확정책의 토대가 된다.

  완전한 <비핵지대화>절실

  그러면 이렇듯 복잡하게 한반도의 정치군사정체가 변화하는 과정속에서 하루 빨리 진정한 평화체제의 구축과, 그에 따른 자주적 민족 통일국가의 성립을 가져오기 위한 평화군축운동의 내용은 어떠한 것이 되어야 하는가. 평화구축운동이 광범한 대중적인 호응을 받으면서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민족의 생존권확보와 관련한 내용, 그리고 대중의 일상적인 복지수준의 향상과 관련한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효과적인 홍보수단을 가지고 선전해 내면서 그를 토대로 한 조직화와 대중운동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 내용은 <비핵화>의 개념이 종래에 비해서는 매우 전진적인 내용을 갖고는 있으나 한반도를 핵전쟁의 참화로부터 최소한 제도적으로는 완전하게 보장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선전하면서, 어떤 정치집단이나 세력의 요구나 주장을 옹호하는 차원이 아닌 민족의 생존권을 완전하게 보장받기 위한 차원에서 한반도주변 관련국이 효과적인 제어장치를 갖고 참여하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지대화>가 절실하게 요청된다는 점을 대중들에게 알려나가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전반적인 평화체제의 보장과 함께 이루어져야 그 실효성을 획득할 수 있는 만큼 남북한간의 불가침선언채택이 필요하고 휴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대체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도 함께 선전해야 한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는 남한정부가 주장하는 점진적인 선회구축장치의 발전도 필요하지만 남북 상호간의 적대의식을 고취하는 공격적 군사훈련의 중지와 실제적인 남북한 상호감군감축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해야 한다. 이러한 군비축소와 관련하여 특히 대중의 일상생활에 밀접한 관련이 있는 <평화 배당금>의 민중복지에로의 이용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홍보해야 한다. 이러한 운동은 우리 주변의 가까운 곳에서부터 지금 당장에 시작되어야 한다.

  이상률<평화연구소ㆍ연구원>
 

저작권자 © 충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