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가볼&커피소년

 
  ‘노래는 남자랑 여자가 서로 좋아하는 이야기’라고 철썩같이 믿던 때가 있었다. 미취학 아동 시절에 듣던 90년대 가요들은 전부 ‘변치않는 영원한 사랑을 약속해 달라’거나, ‘내 손을 잡아봐, 어디든 함께 갈 테니’라며 사랑을 갈구하는 가사들이 거의 전부였으니 말이다. 가장 보편적인 소재인 만큼 수많은 실험들을 거쳐 온 사랑 노래들은 시대를 지나며 훨씬 세련되어졌고, 다채로운 표현들을 향유하게 됐다. 하지만, 시대와 트렌드를 불문하고 ‘모두 한 번쯤은 그래 봤으리라’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일반적인 사랑 노래들에 제일 마음이 가기 마련이다. 오늘 소개하는 슈가볼과 커피소년은, 각자의 스타일로 가장 정석에 가까운 사랑 이야기를 구현하는 아티스트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슈가볼을 남성 솔로 보컬로 알고 있지만, 그들은 남성 보컬 한 명과 네 명의 여성 연주자로 구성된 밴드다. 슈가볼은 가사에서 필요 이상의 멋진 장치들을 모두 빼내고, 솔직하고 담백한 표현들로 ‘내가 너를 사랑하는 지금 이 순간’을 노래한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언더그라운드 모던락과 포크락의 공공연한 트렌드가 된 소소함의 미학을 현명하게 캐치해낸 그들의 음악은 여성 위주의 꽤나 폭넓은 매니아층을 형성했다. ‘신기해 너와 내가 걷는 게, 궁금해 뭐가 우리를 이렇게, 믿을 수 없게 너를 내게 꿈만 같게 만들었는지, 있잖아 그 때 어색한 고백, 한 번 더 내 얘기를 들어줘’(연애담), ‘한 낮 열기가 식은 이 밤이 나는 두려워, 날 들뜨게 하는 이 느낌 괜히 싫어, 고백하지 않으려고 참아 온 그 많은 날들 무너질 것 같아. 지금 이 여름 밤’(여름 밤 탓). 이렇게 여심을 어마어마하게 잘 아는 ‘현실 설렘’을 자극하는 가사들이라니. 방송 출연 한 번 없이도 10월 말 신곡 <우리, 이렇게>가 공개되자마자 차트 실시간 검색어에 랭크된 저력은, 그들의 음악에 단단히 사로잡힌 여심들이 이곳저곳 내는 입소문의 조용한 힘 때문이었을 테다. 한편, 슈가볼의 보컬 고창인이 소속되어 있는 프로젝트 그룹 <페이퍼컷 프로젝트>는 어쿠스틱 버전의 슈가볼 음악을 연상케 한다. ‘손이 자꾸 넘어가는 날 뭐라 말아요, 이럴 거면 너 등을 돌리고 자면 안될까요, 근질근질해 널 안고 싶어’(봉인해제의 밤). 이 역시 현실 연애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이런저런 순간 중 하나 아니겠는가.
 
  발표하는 곡마다 조용한 반향을 일으키는 또 한 명의 아티스트, 커피소년은 원래 커피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으나, 커피를 좋아하는 한 여인을 사랑하게 된 후 커피소년이라는 예명을 갖게 된 로맨티스트다. 그는 음악을 만드는 과정을 본래 ‘커피를 볶는다’는 뜻의 ‘로스팅’이라고 일컫고, 정기적으로 열고 있는 소규모 콘서트의 이름을 ‘꿈다방’으로 칭한다. 커피처럼 때론 쓰고 단 사랑을 노래하는 그에게는 꼭 어울리는 컨셉이 아닐 수 없다. 
  필자가 처음 접했던 커피소년의 곡, <사랑이 찾아오면>은 설렘을 예찬하는 내용일 것만 같은 제목을 달았다. 하지만 가사를 뜯어보면 ‘사랑이 찾아오면 알 수 있을 거야, 내가 했던 그 말들, 너를 향한 눈빛도 애태우던 그 마음도, 그 땐 이해할거야’라는 절절한 짝사랑 얘기다. 이 뿐만 아니라, 올 10월 처음 발매된 정규앨범의 모든 트랙은 내내, 초지일관 외사랑 중이다. 이 마음 아픈 이야기들에서 돋보이는 건, 다른 남성 보컬들과는 차별화되는 커피소년만의 여성적인 어조다. ‘그대 내게 올 때 백마타고 오지 않아도, 그대 내게 올 때 반짝이는 선물 없어도, 그대 내게 올 때 날 알아보는 눈빛 하나로 그걸로 나는 충분해요’(그대 내게 올 때). 남성 보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섬세하고 지고지순한 표현들은 커피소년의 힘을 뺀, 토로하는 발라드 보컬과 훌륭하게 ‘블렌딩’ 된다.

 송민진 기자
blossomydayz@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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