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충, 선언적인 합의도출 급급

  -'남북합의서'의 평가와 남북관계의 전망

  남북한이 지난해 12월 제5차 고위급회담에서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하고, 올해 2월 제6차 고위급회담에서 합의서의 발효에 공식 서명함으로써 남북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남북한이 채택한 합의서는 분단 이래 남북관곌르 처음으로 정상화하는 공식문건으로 그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 우선 이번 합의서는 그 형식에 있어 몇차례의 회담을 통해 남북한이 이견을 보였던 '화해ㆍ불가침ㆍ교류'를 양쪽의 '합의'에 의해 포괄적으로 다고 있고, 이를 남북한 정부의 총리가 공식 서명함으로써 남북한 국민의 지지를 받기에 충분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합의는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 분명 진일보 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다음으로 합의서의 원칙에서도 남북한이 지난 72년 7ㆍ4남북공동성명에서 합의했던 '자주ㆍ평화ㆍ민족대단결'이라는 조국통일 3대원칙이 관철되고 있어, 이제 남은 것은 합의서의 구체적 이행을 위한 남북한 당국의 실천적 의지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번 합의서의 중요한 의의는 최근 가장 중요한 쟁점으로 부각되었던 핵문제 해결의 길까지 열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번 합의서의 평가를 둘러싸고 통일운동진영에서는 다양한 의견을 보이고 있으며, 향후 통일운동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도 이견을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합의서 채택의 배경과 그것의 평가, 그리고 남북관계의 전망이라는 차원에서 다루고 마지막으로 합의서를 실행하기 위한 몇가지 방도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남북합의서의 합의배경

  사실 지금까지 네차례의 고위급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남북한간의 핵심적인 쟁점사항은 △핵문제 △불가침선언 △군축문제 △휴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 △교류협력 문제 등으로 뚜렷이 부각되었으며, 문제는 이러한 쟁점사항에 대한 접근방법의 차이점이었다.
  그중에서도 핵문제는 서방의 북한에 대한 핵사찰 압력과 맞물리면서 고위급회담의 진행여부를 좌우하는 핵심적인 사항으로 작용하였다. 그러나 지난 4차회담에서 양측은 핵문제를 비껴가 5개항에 관한 합의를 이끌어냄으로써 일단은 의미있는 돌파구를 마련했었다. 그리고 이후 판문점에서의 실무대표접촉을 통해 양측의 입장차이를 조정하는등 그 어느때보다도 회담에 임하는 양측의 자세가 진지했던 것이다.
  사실 남쪽은 90년 9월의 고위급회담 시작 이후 <핵사찰수용>이라는 북한에 대한 국제적 압력이 올해들어 고조되면서 합의서 채택 문제가 뒷전으로 밀리는 상황이 전개되자 당혹감을 보여주었다. 남쪽이 고위급회담을 적극 추진한 배경에는 <민족문제>의 해결이라는 원칙적 과제이외에, 남북관계의 진전으로 <내치문제>를 유리하게 전환하려는 정치적 의도도 짙게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올해 총선등 4대선거를 앞둔 정권으로서는 남북관계에서 어떠한 결실을 강력하게 기대했으며, 주로 정권측에서 남북정상회담을 거론하는 배경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한편 북한은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몰락이후 파상적인 자본주의 공세속에서 <주체사회주의>를 고수하기 위해서는 대외관계나 남북관계에서 주동적인 조처가 필요했던 것이다. 지난해 완강히 거부했던 유엔가입의 수용이나, 미국 및 일본과의 관계개선의 적극적 추진도 이러한 배경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올해 김일성 주석의 남북관계의 진전은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이다. 즉 북한으로서는 남북한의 불가침 선언, 평화협정 체결, 군축을 통해 사실상의 전쟁상태를 해소하고 군수부문을 민수부문으로 돌려 그들의 경제난을 타개하겠다는 것이 최근의 전략이다. 또한 최근 북한이 대외관계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일본과의 관계개선에도 <남북관계의 진전>이 전제조건으로 걸려 있었다는 사실도 지적할 수 있다.

  남북합의서의 합의 내용과 평가

  이번 합의서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전체적인 특징은 절충적이고 선언적인 합의를 도출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일반적인 수준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조치위한 조건은 이후의 과제로 대부분 넘겨진 셈이다. 반면 합의의 절충성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문제를 처리할 6개의 기구가 추가로 설치되고 몇 가지 실질적인 조치물이 진행될 가능성이 큼으로 이점에서 진전의 내용을 읽을 수 있다.
  합의서에 따르면 우선 남북한은 합의후 3개월내에 연락사무소를 판문점에 두기로 했으며, 합의후 1개월내에 본회담의 테두리내에서 정치분과위원회, 군사분과위원회, 교류ㆍ협력분과위원회 등 3개기구를 설치하기로 했다. 그리고 합의후 3개월내에 본회담과는 별도로 군사공동위원회등 독립적인 기구를 2개 설치하기로 했다. 그리고 합의후 3개월내에 본회담과는 별도로 군사공동위원회와 경제교류ㆍ협력공동위원회등 독립적인 기구를 2개 설치하기로 했다. 그밖에 육로ㆍ항로ㆍ해로등 교통로의 연결, 교통ㆍ통신ㆍ전기ㆍ우편등 정보채널의 연결, 이산가족문제등 인적교류, 직접교역과 합작투자 급증등 몇가지 실질적인 조치가 가시화될 가능성이 열려있다.
  이런 점에서 이번 합의는 남북한 쌍방이 체제의 목적을 위해 합의에 도달했다는 성격이 매우 강하다. 양측은 합의서작성을 위해 무엇보다도 먼저 핵문제를 이월시켰다. 북한은 핵사찰 수락 대신 합의서를 남한에 제공함으로써, 그 결과 긴박하게 고조되어온 핵공세를 차단하면서 핵사찰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남한은 북한의 핵사찰문제를 이월하고 합의서에 서명하는 조건으로 <정상회담>의 가능성을 확보했다. 물론 정상회담의 시기선택은 또 다른 문제지만 남한은 대통령 선거의 이용카드로서, 북한으로서는 안정적 권력승계와 연계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따라서 남북관계의 결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정상회담의 기는 올해 가을 정도를 예상해 볼 수 있다.

  향후전망과 남북관계의 진전을 위하여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중요한 사안들이 모두 모호하게 절충되어 있거나 다음 회담으로 이월되어 있으므로 합의내용을 구체화하거나 합의사항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대립의 가능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선 기본적으로는 지금까지 남북관계에서 그랬듯이 구체적 진행과정에서 군축우선의 북쪽 입장과 경제교류를 전면적으로 확대하자는 남쪽의 입장이 맞서 난항을 겪을 수도 있다. 사실 이는 남북한 정권당국의 통일방식과도 맞물려 있는 것으로 그 해결이 결코 쉽지 않는 문제이다.
  또한 남한정부는 정상회담을 제안해 놓고 있고 이를 <내치문제>를 해결할 결정적 시기로 선택할 것으로 보여 이에 대한 북한의 태도가 주목된다. 그러나 미국이 주도하는 북한 핵사찰문제가 걸려있는 한 대외관계의 급진전이나 정상회담의 조속한 실현은 일단 쉽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최근 남북관계의 진전과 관련 우리에게 포학되는 한미간의 갈등이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군사적 조치라는 것이 성격상 급진전 될 수 없는 한편, 교류ㆍ협력이 광범위하게 전개될 가능성도 있다.
  마지막으로 분단 반세기 만에 채택된 남북합의서가 과연 어떻게 실천될 것인가 하는 합의서 이행방도의 문제이다.
  첫째, 남북합의서의 내용과 상치하는 헌법이나 법률은 즉시 개정 또는 폐기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영토를 압록강변까지의 한반도 전체로 규정한 헌법 제3조는 남북합의서 제11조 남북불가침의 경계선에 관한 규정 및 남북합의서 제1조 상대방의 체제 인정 존중에 정면 위배된다. 그리고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한 <국가보안법> 도 당연히 폐기되어야 한다. 이점은 북측 내부의 헌법이나 법률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72년 7ㆍ4 공동성명이 국민적 합의를 생략하고 결국 정권당국에 의해 악용되었던 경험을 고려할 때 합의의 성격이 선명하게 규정되어야 하고, 나아가 정권과 국민을 막론하고 합의서 위반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법률에 의하여 보장하여야 할 것이다.
  결국 합의서에 담긴 민족사적 의의를 올바로 실천해 궁극적 목표인 통일에 이르는 것은 어디까지나 남북한 민중들의 실천노력에 달려있는 셈이다. 이를 위해 남한 통일운동진영에 우선적으로 제기되는 문제는 <통일운동진영의 통일>, <통일운동기구의 통일>, <구체적 통일방안에 대한 합의>, 즉 <민중적 통일방안>의 모색이라고 할 수 있다.

  정동규<한국사회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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