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업 저해하는 정부규제

 
▲간행물윤리위원회로부터 판매금지 처분을 받은 마르키 드 사드의 『소돔의 120일』
  지난달 11일 여성가족부(이하 여성부)가 게임물 평가 계획 세부안을 발표한 데 이어 최근   싸이의 <right now>에 대해서는 19세 판정을 내렸다 번복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우리나라의 문화콘텐츠 규제조치가 지나치고 객관성이 없다는 지적이 일각에서 일고 있다.
  특히 이번에 여성부가 게임물 평가 계획안에 포함시킨 ‘강박적 상호작용’ 항목에 대해 반대 목소리가 집중되고 있다. ‘강박적 상호작용’ 항목에서는 ▲캐릭터의 레벨 능력을 높이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역할을 분담하는 게임 구조 ▲퀘스트 때문에 게임 도중에 빠져나올 수 없는 구조 ▲함께 무엇을 해나간다는 뿌듯한 느낌을 줄 수 있는 구조 등을 평가의 지표로 삼는다. 즉 이 같은 요소가 포함된 게임이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요소라고 단정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온라인 게임에서 가장 기본적인 파티플레이 시스템을 ‘강박적 상호작용’의 사례로 지적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에 일부 네티즌들은 협력도 나쁜 것이냐면서 의문을 제기했다. 또한 ‘시스워리어’라는 아이디의 네티즌은 “여성부의 이번 평가안은 어떻게 하면 게임이 사라질 수 있을지 분석해서 내놓은 보고서 같다.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 게임이 어디 있겠느냐”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여성부는 이같은 비난에 “이번에 제시된 세부안은 확정안이 아닌 초안”이라며 “게임업계를 비롯한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여 수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이번 평가 계획서를 비롯하여 과도한 규제를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이번에 발표한 평가안은 만 16세 미만 청소년에게 그것도 심야시간에만 해당되는 것”이라며 “우리나라 청소년 10명 중 1명이 게임중독인 현 상황을 봤을 때 이는 필요한 최소한의 규제라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도 과도한 규제로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2월 방심위는 웹툰이 학교폭력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수십 개의 웹툰을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지정했다. 그러나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지정된 웹툰 중에는 문화부장관상을 수상한 정연식 작가의 <더 파이브>가 포함되어 있는 등 작품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 것들도 있어 심의기준이 적절하지 않다는 논란이 일었다. 이후 한국만화가협회의 제효원 사무국장은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당국이 만화를 희생양 삼아 학교 폭력의 책임을 떠넘기려 한다”며 방심위가 처분을 취소할 것을 촉구했다. 이후 계속해서 비난 여론이 일자 방심위가 웹툰을 시장 자율규제에 맡긴다고 선언하면서 사건이 일단락되었으나 이는 우리나라의 문화콘텐츠 규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대표하는 사례가 되었다.
  규제의 정점은 간행물윤리위원회(이하 간윤위)가 찍었다. 간윤위는 지난 9월 18일에 프랑스의 유명작가이자 사상가인 마르키 드 사드가 1785년에 쓴 책 『소돔의 120일』을 ‘지나치게 음란하다’는 이유로 일방적인 판매금지 처분을 내린 것이다. 이제 한국에서는 『소돔의 120일』을 아예 구매할 수도 없게 되었다. 일반도서, 그것도 고전작품에 판매금지 처분이 내려진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2008년 이후 처음이다. 이에 대해 동서문화사의 편집부장은 프랑스 <리베라시옹>과의 인터뷰에서 “미국, 프랑스, 일본을 비롯한 대다수의 국가에서 『소돔의 120일』을 출판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간윤위의 판매금지 처분에 대해 많은 의문을 제기했다.  
  이처럼 문화콘텐츠 사업에 대한 과도한 규제가 이어지자 일각에서는 정부규제가 자칫 문화사업의 위축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1년 문화콘텐츠 기술을 국가 6대 핵심기술의 하나로 선정하였으며 2010년 참여정부에서는 문화콘텐츠 산업을 10대 차세대 성장 동력 산업으로 지정할 만큼 앞으로 문화콘텐츠 산업에 거는 기대가 크다. 그러나 앞으로도 기대와 다르게 정부의 규제가 계속 이어진다면 1997년 청소년 보호법 제정 이후로 거의 와해되다시피 했던 만화산업의 전례를 따라갈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그동안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가 시행한 게임에 접속하면 2시간 만에 자동으로 접속 종료되는 쿨링오프제 ▲여성부의 16세 미만의 청소년에게 심야시간의 인터넷 게임 제공을 제한하는 셧다운제(일명 신데렐라법) 등의 규제로 인해 타격을 받아온 게임 산업은 이번 여성부가 발표한 게임물 평가 계획 세부안으로 다시 한 번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는 우려에 휩싸여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자료에 따르면 2008년 국내 게임 사업의 수출규모는 10억 900만 달러로 같은 해의 영화 수출규모 2천100만 달러의 52배에 달했다. 이는 한류열풍의 주역이라고 칭해지던 드마나 등 방송 분야의 수출규모 1억 8천만 달러에 비해서도 6배나 많은 것이었다. 게다가 국내 게임 사업은 규모가 2007년에서 2008년 사이에 65% 이상 성장할 정도로 상승세가 기대되는 사업 중에 하나이다. 그러나 정부 부처로부터 줄줄이 규제를 받게 되면서 투자가들의 심리가 위축되어 투자규모가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이에 문화콘텐츠 규제는 정부가 업계와의 사전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과 함께 문화콘텐츠 규제를 시장의 자율성에 맡겨야 한다는 의견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한국만화가협회에서는 “콘텐츠를 접했을 때 그것을 어떻게 판단하고 해석할 지는 수용자의 몫”이라며 “창작물에 대한 평가는 정부가 아닌 수용자가 해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그러면서 “강압적인 규제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 가능할 것이라는 마인드는 버려야 한다. 우리사회에서는 아직 문화콘텐츠 표현의 자유를 어디까지 수용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없었다”며 문화콘텐츠 자율규제를 위한 사회 각계각층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도 자율규제에 의견을 같이 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정책연구실 윤호진 팀장은 “문화콘텐츠 사업에 규제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처럼 무조건적인 정부규제는 좋지 않다”고 말하면서 “사업자에게 좀 더 자율권을 주는 방향으로 정책을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밝혔다.
 

송송이 기자 ong00130@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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