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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여성을 저격하고 있다대한민국 여성혐오 실태 진단
송민진 기자 | 승인 2012.09.17 11:34|(1056호)

   
 
  ‘병적 혐오 혹은 공포’를 뜻하는 포비아는 본래 의학용어지만 최근 들어 쓰임이 급변했다. 본래 용어의 성격이 무색하게 제노포비아, 호모포비아 등의 용어로 재탄생하며 혐오와 안티(Anti)를 나타내는 일상 표현으로 쓰이게 된 것이다.
  이처럼 각자의 개성과 취향이 중요시되고, 다양한 통로로 이를 자유롭게 노출하기 쉬운 사회가 되면서 어떤 대상에 대한 혐오 의식을 숨기지 않아도 괜찮은 풍토가 조성되고 있다. 포털의 커뮤니티 기능 강화와 SNS의 등장으로 같은 대상을 미워하는 사람들끼리의 결집 역시 쉬워졌다. 하지만 이런 혐오가 엄연히 세상의 반을 구성하는 여성들에 대한 것이라면 어떨까. 실제로 우리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여성에 대한 혐오성 시선이 담긴 말과 행동들을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언제부턴가 한국 여성은 ‘원래 그런 족속’
  여성에 대한 혐오가 한국 사회를 뒤덮고 있다. 최근 빈번한 대중교통 도촬, 성희롱과 성폭행 등 성범죄 관련 기사에는 ‘당하지 않으려면 짧은 하의를 입지 말았어야지’라는 댓글이 달린다. 가정폭력에 오랫동안 시달리던 30대 주부가 남편을 살해한 사건에는 ‘여성이 맞을 짓을 했겠지’라는 댓글이 등장한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의 박희정 편집장은 이 현상의 원인을 ‘합리화’에서 찾았다. 그는 “‘남성의 성욕은 강하고 충동적이다, 여성은 수동적이다, 여성이 성적으로 도발해서 남성이 성폭력을 저지르는 것이다’ 등 남성의 행동은 어쩔 수 없고 문제의 원인은 여성에게 있다는 식으로 책임을 떠넘기는 합리화의 결과로 혐오가 발생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런 현상은 한 발 더 나아가 한국 여성 비판을 목적으로 한 대형 커뮤니티들을 우후죽순 등장하게 했다. 구성원들은 커뮤니티의 설립 취지가 ‘특권의식에 젖어 남성에게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여성들을 정당하게 비판하고, 진정한 성평등을 확립하는 데 있다고 밝힌다. 문제는 커뮤니티의 분위기가 이러한 취지에서 한참 벗어나 근거도 논리도 없는 혐오와 비난, 범죄 정당화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구성원들은 ‘한국 여자들의 천박한 습성’에 대해 논하며, 한국 여자들을 ‘머리 쓰는 일에 열등’하며 ‘돈 많고 능력 있는 남자를 만나기 위해 대학에 가는’ 존재로 정의한다. 한 술 더 떠 ‘서양 여자로 안구 정화하는 코너’도 마련돼 있다. 이런 게시글들에는 동의하는 댓글이 활발하게 달리고, 여성을 지칭하는 노골적인 비속어가 난무한다.
  박 편집장은 “이는 여성이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이라며 “사람은 자신보다 타자를 미워하는 것이 더 쉽고, 그 타자가 사회적 약자인 경우 혐오를 표출하기는 더욱 쉽다”고 말했다. 이에 덧붙여 ‘타자를 비난함으로써 자아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한 심리’를 무차별적 혐오의 또다른 원인으로 꼽았다.

  ‘OO녀’논란, 묻지마 폭행
  추락하는 여성 인권
  종종 SNS를 들끓게 하는 ‘버스무릎녀’, ‘택시막말녀’등 ‘OO녀’논란은 피부에 와닿는 여성 혐오의 현장이다. 가뭄에 콩 나듯 등장했다가 빠르게 수그러드는 ‘OO남’과 달리, 여성의 경우 확대해석과 일반화로 불특정 다수의 여성들을 ‘모두 같은 OO녀’로 손가락질 받게 만드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2000년대 중반 ‘된장녀’, 한 여성운전자의 판단착오를 모든 여성들의 특성으로 확대해 고질적인 여성운전자 비하를 다시금 끓어오르게 한 ‘김여사’가 대표적인 예다.
  이에 대해 박 편집장은 “여성운전자들은 운전대만 잡고 나가도 도로 위에서 욕을 먹는 경우들이 종종 있고, ‘솥뚜껑 운전이나 하지 뭐하러 나와서 길이나 막히게 하냐’는 말을 듣는 걸 직접 본 적도 있다”며 “상대가 건장한 남자였어도 그런 말을 입밖에 낼 수 있을까 궁금하다”고 꼬집었다. 또한 ‘잘못을 저질렀기에 심판받는 것’이라는 주장에는 “사회적 해악을 끼치는 집단, 예를 들어 조폭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깍두기’는 희화화의 대상이지 ‘OO녀’처럼 집단적인 혐오 표출의 대상은 아니다. 오히려 그 힘에 대한 동경을 대중문화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우리학교 심리학과 전우영 교수는 “과거에는 남녀의 성역할 구분이 확실했고, 사회에서 여성들이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미미했다. 하지만 성역할 구분이 무너지고 차를 몰고 거리로 나오는 여성들이 늘어나면서 이는 ‘주목할 만한 사건’이 되고, 남성들이 감정적 대응을 하게 되는 원인이 된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입증하듯 올 4월, 서울에서는 아침 출근길에 나선 두 명의 여성에게 이유 없이 목봉을 휘두른 중년 남성이 구속됐다. 그는 경찰 조사 결과 특별한 이유 없이 “여자들은 다 죽어야 한다”며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불과 1년 전에도 한 택시기사가 길거리의 두 여성에게 “그 몸에도 미니스커트를 입느냐”며 폭언과 폭력을 휘두른 이후 여성에 대한 무차별 공격으로 충격을 안긴 바 있다. 이는 여성 혐오가 더 이상 ‘인터넷 공간 윤리’에만 어긋나는 현상이 아니라 현실 속 불특정 다수의 여성들에게 휘두르는 흉기가 되고 있음을 경고하는 사건이다.

  팍팍한 사회+소통 부재+배려 부족의 합작물
  전 교수는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남성과 여성이 경쟁관계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남성이 가족 부양 등의 책임을 더 부과받는 사회적 요구가 남아 있다”며 “이런 부담이 남성으로 하여금 여성에게 박탈감을 느끼게 하고, 이로서 맹렬한 분노 표출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가정을 떠나서도 남녀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사회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 사회의 남녀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부족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전 교수는 성 갈등을 부추겼던 지난 2009년 ‘루저 논란’을 언급하며 “방송에서 이성의 ‘본인의 의지로 통제할 수 없는 조건’을 공개적으로 농담처럼 내세우는 행동들은 개인에 따라 자존감을 깎아내리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언급했다.
  박 편집장은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상당한 한국 사회에서 여성뿐 아니라 인종차별의 성격이 포함된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혐오 등은 개인이 축적한 스트레스가 타자에게 발산되는 현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송민진 기자
blossomydayz@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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