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약의 시대

 
  “천만이 넘으면, 그 천만 번째 관객을 업고 영화를 보겠습니다.” 
  지난 7월 영화 ‘도둑들’의 레드카펫 행사에서 영화배우 김수현이 내걸은 공약이다. 영화배우 하정우 또한 제47회 백상예술대상에서 남자 최우수부문 연기상을 2년 연속 수상하게 될 경우 트로피를 들고 국토 대장정 길에 오르겠다고 약속했다. 실제로 최우수 연기상을 받은 하정우는 약속을 이행했고 그의 577km 국토 대장정은 영화로 만들어졌다. 이에 그치지 않고 하정우는 개봉 영화가 100만 관객을 넘을 시, 남산에서 삼겹살을 굽겠다는 또 다른 공약을 내걸었다.
  강남스타일로 전세계적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가수 싸이도 공약을 걸은 바 있다. 지난 8월 그는 자신의 콘서트 3만 석이 매진될 경우 사비로 관객 전원에게 CD를 선물하겠다고 약속했다. 실제로 싸이는 콘서트 3만 석이 매진되자 당일 관객 전원에게 CD를 증정했다. 인기 연예인이라면 공약 하나쯤은 내걸고 보는 시대가 된 것이다.

  사회 전체로 뻗은 공약 내걸기
  대기업들도 공약시대가 날개를 펴는 데 한몫 거들었다. LG전자는 국가대표 리듬체조 선수 손연재가 동메달 이상을 따면 휘센 신제품 에어컨을 구매한 고객에게 1인당 50만원을 준다고 약속했다. 이와 관련해 LG전자의 5월 중 에어컨 판매는 지난 4월에 비해 2배 이상 늘었다. 특히 신제품 ‘손연재 스페셜’은 전체 판매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매출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했다. 올림픽 이후 손연재 효과를 본 LG는 기업들 사이에선 올림픽 최대수확을 거둔 시샘의 대상이 됐다.
  식품업계에도 잇따른 공약바람이 불었다. 지난 4월 패밀리 레스토랑 베니건스는 서울 삼성동 코엑스, 종로, 대전 둔산점에서 직장인을 대상으로 ‘타임 크런치 런치’ 프로모션을 실시했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30분까지 주문한 음식이 18분 이내에 나오지 않으면 정상가격의 50%에 제공하겠다는 공약을 선포한 것이다.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SNS를 통한 일상적인 공약들도 성행하고 있다. 4·11총선을 앞둔 당시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트위터를 이용한 공약 열풍이 나돌았다. 트위터 아이디@imnotwirter는 “회장님의 투표 독려 공약! 투표율이 70%를 넘을 경우 다음 달 휴무”라는 글을 올리며 주변 동료의 투표를 독려했다.트위터 아이디@whale_epictetus 경우 “투표율 공약이 대세인 듯하니, 나도 하나. 투표율 70%가 넘으면 1년간 금주한다”는 자신만의 공약을 내걸었다.
  항간에 화제가 됐던 24인용 텐트 사건 또한 공약시대의 방증이 되었다. 지난달 30일 ‘흔한 군필자 허세’라는 제목으로 ‘24인용 천막 혼자 치기’에 대한 글이 SLR클럽 게시판에 올라오면서 시작됐다. 대다수 누리꾼들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글쓴이는 “50만원을 걸겠다”고 제안했다. 지난 8일 서울의 모 초등학교에서 육군 중사 출신인 글쓴이 이광낙 씨는 그 말을 지켰다. 무게가 200kg 이상인 군용텐트 티24 텐트를 단 1시간 20분만에 혼자 치는 데 성공했다. 행사 현장에는 2천여명이 모였고, 10만여 명이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지켜봤다. SNS를 이용한 공약이 급기야 소셜 파티라는 하나의 큰 페스티벌로 이어지게 된 셈이다.

  공약시대의 성공요인
  공약시대가 성행하게 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공약은 대중들의 흥미를 끄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대기업에서 공약을 하나의 마케팅 기법으로 활용하고 있다. 공약에 의한 대중들의 기대감 증폭이 마케팅에 효과가 있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소비자들은 공약을 내거는 상품에 당연히 하자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러한 사람들의 선의가 제품 판매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흥행성을 보장하기 어려운 영화산업에서도 배우들의 공약은 관객들을 사로잡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좋아하는 배우가 내걸은 공약에 대한 궁금증은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극장으로 모이게 한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가령 팬들의 입장에서 좋아하는 배우 김수현을 볼 수 있으니깐 그 시점에 가서 도움을 주자는 생각을 할 수 있다”고 전했다. 뿐만 아니라 “천만 번째 관객이 됐을 때 자신이 대상자가 될 수도 있으니 사람들은 영화를 보게 되고 결국에는 숫자를 보태주는 일이 일어나게 된다”고 말했다. 이를 증명하듯, 공약이 일궈낸 이슈 만들기는 대중들의 이목을 끄는 데 성공했다. 결과적으로 김수현의 영화 <도둑들>은 손익분기점을 훨씬 웃돈 기록 갱신까지 이뤄냈다.  

  진정성이 필요한 공약시대
  대중문화에서 공약은 이제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요즘 대중들 사이에는 이벤트나 팬서비스 같은 하나의 즐길 거리를 선호하는 문화가 존재한다”며 “이러한 대중들의 관심을 충족시켜주는 차원의 공약 발언은 문제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확한 내용물도 확보되지 않은 채 공약만 남발한다면 문제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례로 사회적으로 많은 공약이 언급되지만 지켜지는 경우는 드물다. 공약에 대한 책임감 있는 태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공약을 받아들이는 대중들 또한 신중을 기해야 한다. 공약에 대한 대중들의 지나친 수용적 태도가 대안 없는 또 다른 공약을 키우는 발판이 되기 때문이다.
  이제는 단순한 말초적 즐거움을 벗어나 다변화되고 사회적 의미를 가질 수 있는 바람직한 공약이 성행해야 한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최대한의 부작용을 줄이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공약이 이행되도록 주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대중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공약에서 벗어나 사회 전체에 이득이 되는 공약을 약속해야 한다”며 “기업의 수익금액 일부를 사회에 기부하는 방식으로도 공약이 이행될 수 있다”고 말했다.  
 

오수민 수습기자  brightid@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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