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조 금메달리스트
  양학선 선수를 지도한
  김동화 교수(체육교육과)

 

  2012년 8월, 우리는 열광했다. 올림픽 전체성적 5위, 남자축구 동메달 소식에 우리의 심장은 달아올랐다. 수많은 올림픽 영웅 중에서도 한국체조 사상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을 거머쥐며 ‘도마의 신’으로 등극한 양학선 선수는 특히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그런 양 선수의 쾌거를 누구보다 기뻐하며 경기를 중계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우리학교 김동화 교수다. 양 선수의 선배이자 스승으로 체조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그를 만나봤다.
  그는 국가대표 코치시절 양 선수의 발탁에서 양성까지 함께했다. 코치진은 국가대표 선발을 앞두고 도마에 월등한 기량이 있지만 다른 종목에서 부진했던 양 선수를 선발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와 코칭 스태프가 양 선수를 데려와 다듬고 가르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냈고, 이를 계기로 양 선수가 최종 선발됐다. 그는 “시골에서 갓 올라온 학선이에게 선수생활에 대한 모든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며 “초고난도 기술인 양1 기술을 배우기 전 기본을 다지기 위해 기초적 기술을 최대한 많이 알려줬다”고 말했다.
  그는 양 선수의 금메달 획득에 혁혁한 공을 세운 초고난도 기술 ‘양1’을 개발하는 데에도 기여했다. 양1 기술은 양 선수가 아시아 정상에 오른 순간에 만족하지 않고 런던올림픽까지 바라본 그의 혜안에서 시작됐다. 국가대표 선발 1년만에 2010년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이라는 쾌거를 이룬 양 선수에게 그는 “정말 잘했지만 지금보다 더욱 노력해야 한다. 다른 선수를 앞서기 위해선 시작점수가 좋아야 한다. 너의 장점인 틀기 동작을 보완하자”며 새로운 기술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그래서 그와 코칭 스태프들이 함께 개발한 것이 지금의 양1기술이다. 그는 “학선이의 장점을 살린 신기술로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얻었으면 했다”며 “학선이를 3년간 가르치고 함께 고생했는데 내가 이루지 못한 금메달의 염원을 이뤄주어 너무 기뻤다. 학선이가 착지하는 순간 내 바람을 들은 것 같아 뿌듯했다”고 말했다.
  양 선수를 지도하며 그의 어려움을 잘 알았던 김 교수는 양 선수와 비슷한 환경에 처한 학생들을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학선이는 가난한 형편에도 불구하고 항상 밝은 표정을 잃지 않았다”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반드시 좋은 날이 오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최선을 다한다면 모든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전했다.
  그는 선수양성에 탁월한 코치였지만 그와 동시에 훌륭한 선수이기도 했다. 체조 6개종목 모두에 능수능란하면서도 특히 링 주요동작인 십자 버티기에 능해 링 종목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이를 증명하듯 유니버시아드 남자 링 은메달, 부산아시안게임 링 단체전 은메달, 부산아시안게임 남자 링 금메달을 연이어 휩쓸었다. 또한 종합종목에서도 방콕아시안 게임 마루 은메달, 부산 아시안게임 개인종합 2위 등 좋은 기록을 세웠다.
  이렇게 화려한 수상경력의 그이지만 체조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조금 남달랐다. 그는 “처음에는 숙제가 하기 싫어서, 체조를 전공하는 친구가 일찍 귀가하는 것이 부러워 체조를 시작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어린 마음에 시작한 체조였지만 그에게는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체조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그가 옆돌기, 핸드스프링 등을 척척 해내자 부모님과 주위사람들은 본격적으로 체조를 해보지 않겠냐고 권유했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학교 선생님도 그에게 체조를 권유하며 우유와 과자, 야구공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주변의 지원 속에서 체조는 나에게 숙명처럼 다가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체조로 세상에 이름을 알리기까지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사물의 형태를 구별하기 어렵다는 ‘약시’판정을 받았다. 또한 선수로서 가장 빛을 발하던 시기인 2001년 26세의 나이에 팔목인대와 아킬레스건 부상을 당하는 시련을 겪었다. 당시 ‘아킬레스건 부상은 선수생활 마감이다’라는 말이 많았기에 심적으로 고통스러웠다. 그는 “가장 전성기 때 그런 부상을 당해 아쉬웠다. 아킬레스건이 끊어지지 않았다면 2004년 아테네 올림픽까지 메달행진을 이어갈 수 있었을 것”이라며 “이때까지 노력해온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진다는 생각에 육체적인 고통보다 심적으로 너무 괴로웠다”고 당시의 심정을 전했다. 하지만 그는 오기와 끈기로 어려운 재활치료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는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아내를 위해서라도 다시 한 번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치명적인 부상일지라도 이겨내는 모습을 후배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노력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고 땀 흘리지 않으면 이룰 수 없다는 게 나의 신념”이라며 주어진 환경을 탓하기보다 최선과 노력의 가치를 강조했다.
  숱한 장애와 어려움을 이겨내며 체조계의 오뚝이로 통하는 그는 앞으로의 포부도 밝혔다. “여자선수들은 대학에 오면 운동의 하향선을 그리기 쉽다.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대학 선수들이 유니버시아드 대회나 다른 국제대회에 참여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나는 우리학교에서 역사를 새로 쓰고 싶다. 국제대회에 참가하는 기회도 만들고 여자체조하면 명실상부한 충남대 여자 체조팀이 떠오르도록 팀을 재건할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국가대표 체조선수로서 숱한 장애 속에서 신화를 세운 그가 우리학교에서도 그 역사를 이어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지현 수습기자
primedu@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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