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문 당선작

  그리운 당산

  1

  사는 일이 아플수록 그리운
  어린날의 당산,
  그늘 깊었던 내 유년의 마당

  2

  모든 샛길 지워지고
  복지농촌의 이름으로 경지정리가 시작되는 날
  간이현장사무소 지붕위를 까치를 날아 오른다.
  옛집 좁은방 아침햇살 들지 않아도 좋았을 느티나무야
  소지하며 풍년 비는 무당아
  서낭당 돌무더기들아
  나는 간다.
  천년역사 느티나무의 그 날 그 큰사랑
  날개 저으며 간다.
  세상의 여린 창문 틈으로 눈물 비치는 사림살이
  막막한 어둠의 끝,
  기한 넘긴 학교 공과금
  먼발치 고개 늘이고 섰을 아이들아
  고살밭 언덕에서 김매는 이땅의 어머니들아
  당산나무 가지에 눈물꽃 피워내던 그날 그
  큰 사랑이 뿌리 뽑히는 날
  간다.
  아비와 자식을 헤어져 살게 하는 이 세상의 어느 창문에도 또박또박 달려가
  소망의 당산나무를 심고 집 지으러 간다.
  이름 없는 풀꽃들아
  막걸리 한사발에 함께 젖어
  벼꽃 피워내던 들판아
  이땅의 아버지들아

  3

  당산, 내 유년의 넓은 마당, 숙이에게 숙아
  겨울 개나리 철 이른 꽃 피워내도
  쉽게 봄이 왔다고 말하지 못하는
  아직은 추운 겨울이구나
  가난한 살림살이의 네 키만큼 낮은 처마
  눈물 뚝뚝 떨어지는 날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
  당산나무를 맴돌던 어린 날 숨바꼭질
  스무다섯해 뿌리 내린 말들이
  아침햇살에 흩어지고 있구나 숙아

  다 끝내지 못한 너의 중학교
  노란 겨울개나리 피었는데
  어릴 적 국민학교 선생님이 되겠다던
  너의 해맑은 이야기
  쌓인 눈밭처럼 녹아내리는 구나

  열여섯 여물지 못한 가슴으로
  번질번질 눈물 번지는 공단생활, 숙아
  읽을 수 없는 유년의 방언들이
  거리를 헤매는,
  당산 그늘보다 넓은 성년의 뜰
  새 한마리 날아들지 않는구나

  (당산은 밤이 아니었으리, 우리 철 없던
  유년의 뜰, 불도우저 지나간 자리, 풀 한포기
  자라지 않았으리)

  4

  사는 일이 아플수록 그리운 당산
  쩍쩍 타는 논밭, 뜨거운 들바람에도
  우리나라 어머니 가슴 가슴 가난한 살림살
  이에도
  아들 딸낳고 농사지으며
  함께 살게 한 당산.
  세상의 골목마다 살아 있을,
  청무잎처럼 싱싱하게 재잘거리던 아이들
  이 다음에 대통령이 장군이 되겠다던
  아이들 떠난 어린이날의 당산
  지금은
  동사무소와 다방이 살고있는
  내 유년의 아랫목
  생각할수록
  세상은 비만 내린다

  5

  네 유년은 흘러 어디로 가는지, 다시 숙이에게
  차마 그곳에 가야 하리
  입바른 네 할아버지 우리말 가르치던
  압록강변 초산
  사십년 간직해 온 흑백사진 헤아려
  고모 삼촌 사촌 형제들 만나야 할
  말만 들어도 넉넉한 그리운 동족의 마을
  그곳에 가야하리
  꿈속에서라도 가야하리
  삐걱이는 교단
  스무해 키워온 우리말 우리글 가르쳐야 하리
  그날처럼
  "봉-숭-아-꽃-살-구-아-기-진-달-래"
  목청 고운 우리 아이들 가슴마다
  만주벌판 따각따각 말 달라던
  독립군 카랑카랑한 목청 키워내야 하리
  숙아

  압록강처럼 낮게 흐르는
  "고향이 그리워도 못가는..."
  네 할머니 몸살 앓으시는 노래소리,
  소주잔에 정든 마을 비치는 사연
  왜 술만 마시면 우시는지
  알아야 하리
  뗏목을 타고라도 가자하던
  할머니의 그리운 땅, 초산
  기필코 가야 하리 숙아
  우리를 낙엽처럼 흩어져 살게 하는 세상의 추운 겨울밤
  청솔가지 뚝뚝 분질러 군불지피고
  매운 눈물이라도 흘려야 하리

  6

  집 떠나 가끔식 들르게 되는 고향
  애기쑥인지도 몰라
  푸른 산맥을 닮은 논이랑마다 보리들이 마을 이루어
  저들끼리 몸 서걱이는 겨울들판
  추울수록 깊게 뿌리 내려
  새날 새봄 맞이하는 애기쑥인지도 몰라
  이제 팔 벌려도 안기지 않는
  어린 날의 당산은.

  7

  내살던 따뜻한 동리 어귀
  은박지 같은 기억 빛나는,
  내 유년의 뜰, 그리운 당산
  소꼽 친구들 오종종 어깨 기대어 앉아 작고 어린 날개 파닥파닥
  들일 나간 어머니 기다리는
  배고픔의 끝,
  눈물로 적셨다 말리던 기억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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