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라는 것은 오랜 역사와 세월을 거치면서 인간의 의식 속에 하나의 독자적인 성격과
  생명력을 지녀왔다. 그래서 사람이든 사물이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름의 중요성은 누차 강조돼왔다.
  따라서 충대신문에서도 오랜 역사동안 우리학교에 관한 이름 캠페인을 여러번 진행해왔다.
  이번 특집면에서는 우리학교에 서려있는 이름의 역사를 살펴보고자 한다. 

 

  충대의 상징을 이름짓다


  우리의 보금자리인 대덕 캠퍼스, 경상대와 제 2학생회관 사이에서 기백을 뽐내는 백마상, 가을이면 은행을 쏟아내는 교목인 은행나무,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교화 철쭉. 이는 모두 1978년부터 시행된 충대신문의 캠페인 공모에 의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사례다. 당시 각계로부터 받은 의견을 충대신문에서 추려낸 뒤 학생·교수·교직원·동창·지역사회인 등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공청회를 거쳐 선정했다.
  그 과정을 거쳐 1979년 지금 이 자리에 탄생한 캠퍼스의 명칭은 큰 덕으로 나라를 위해 이바지하는 대학이 되겠다는 뜻으로 대덕 캠퍼스라 지었다. “유성구에 있는 캠퍼스 이름이 왜 대덕일까?”라는 의문은 이제 그만! 어디서나 명쾌하게 우리 캠퍼스의 뜻을 답변하자.

 

  대덕 캠퍼스만큼이나 백마상의 의미도 명백하지 않았다. 기백이란 단어의 백(魄)를 차용해 기백이 있는 말을 형상화했다는 설도 있고, 본래 흰 백(白)자를 사용하는데 조각가의 실수로 청동빛이 돌게 됐다는 의견도 분분하게 제기되었다. 때문에 외부 학생들 혹은 유학생들이 그 의미를 물어볼 때면 소설을 쓰느라 급급했던 경험이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애매한 백마상의 의미를 딱 정해주자면, 우리학교의 상징동물인 백마상의 백마는 본래 전설 속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말이다. 기백, 흰 것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다만 용이 되고자 수없이 노력했던 전설 속의 백마처럼 충대인들의 이상이 현실로 펼쳐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뜻에서 선정됐을 뿐이다. 그것이 형상화돼 경상대와 제 2학생회관 사이에서 비상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캠퍼스를 거닐다보면 가을마다 코를 찌르는 은행냄새에 몸서리 칠 때도 잦을 것이다. 하지만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우리학교의 교목이 은행나무로 선정된 이유는 웅장함과 실용성도 갖추며 권위를 상징하는 바, 그 의미가 썩 괜찮으니 말이다. 그리고 교화로 선정된 철쭉은 우리지역의 특색에 맞는 꽃으로 사랑의 기쁨이라는 꽃말을 지녔다고 한다.
 

  이름없는 길에 이름을

  개그콘서트의 코너 <이기적인 특허소>에서는 이름 없는 것들에 이름특허를 낸다. 그 발상이 꽤 기가 막힌데, 가령 생일폭죽을 터뜨리고 난 뒤 나오는 잔해물을 ‘폭죽토’라고 부르는 식이다.
  충대신문 역시 이름 없는 학교의 길을 위해 지난 1983년 4월 4일 530호부터 87년 10월 12일 613호까지 우리학교의 길이름 지어주기 캠페인을 추진한 바 있다. 우리학교의 각 단과대를 잇는 길마다 흔히 부르는 길이름을 정착시켜 새로운 학풍을 정립하기 위함이었다. 가령 농업생명과학대학에서 도서관으로 넘어오는 길을 ‘아리랑 고개’라 부르는 것처럼 말이다.
  이를 위해 우리학교 학생·교직원·동문 모두에게 자격을 주어 길이름을 공모했고 최종설문을 통해 이름을 확정지었다. 그에 따라 정문에서 도서관까지 잇는 길을 ‘한빛의 길’, 도서관에서 서문까지의 길을 ‘온슬기 길’, 도서관에서 농업생명과학대학까지를 ‘아리랑 고개’, 영탑지에서 서문까지를 ‘예서린 길’, 남부테니스코트에서 인문대학까지를 ‘꽃망울 재’라고 이름 지었다.
  ‘한빛의 길’은 충대인의 예지·슬기·진리의 빛으로 상징되는 길이라는 의미를 지녔다. 정문에 들어서자마자 걷는 길인만큼 널리 불렸다고 한다.
  ‘온슬기 길’에서 온은 백이란 수를 나타내는 옛말로 가장 완벽한 상태를 지칭한다. 또한 슬기란 말은 사리를 판단하는 옳은 분별력을 일컫는 말로, 지식의 보고인 도서관과 연관을 짓기 위해 온슬기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리랑 고개’는 익히 알다시피 농대를 넘어가는 길을 말한다. 옛날 한적한 고개를 넘어가는 한 선비를 떠올리며 그 옛스러움과 운치를 담아낸 뜻이라고 하는데, 유일하게 길이 아니라 고개로 이름 지어진 까닭은 순환버스도 없었던 시절의 그 길이 농대생들에게 어마어마한 장벽과도 같은 존재로 여겨진 것으로 전해진다.
  ‘예서린 길’은 5층탑에서 문학과 철학이 있는 인문대학으로 지나는 길이 꽤 멋스럽고 예술적이라 하여 이름 지어졌다.
  ‘꽃망울 재’는 봄이면 길 양편에 흐드러진 철쭉꽃과 꽃망울들이 운치가 있다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이처럼 당시의 구성원들이 심혈을 기울여 길이름을 짓고, 불렀지만 학교 차원에서 정립되지는 못했다. 학무회의에 끝끝내 상정되지 못하며 흐지부지돼 농대생들의 한이 서린 아리랑 고개만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김춘수의 「꽃」 한 구절처럼, 길도 이름을 불러줄 때야 비로소 우리에게 다가와 길이 되어주는 것이 아닐까. 이름 없는 길들이 새롭게 각인될 수 있기를, 새로운 이름문화로 정착될 수 있기를 바란다.

 

 

  군사문화의 잔재를 바꾸자

  학생회관이라는 이름은 군사정권에 의해 탄생한 것으로 군사문화의 잔재라 여겨진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런 의식은 잊혀지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1학생회관, 2학생회관으로 부르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2000년 6월부터 학생처 주최로 명칭 변경 시도가 이뤄졌다.
  이 역시 다양한 구성원들의 참여 아래 1학생회관을 아크로폴리스관, 2학생회관을 백마관, 3학생회관을 예향관으로 바꾸자는 의견을 수렴했으나 우리학교의 특성을 살리지 못한다는 반론에 전면 재검토했다. 이에 따라 충대신문 주최 하에 2000년 10월부터 새로운 이름 공모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1학생회관을 ‘화합의 집’, 2학생회관을 ‘나눔회관’, 3학생회관을 ‘희망회관’으로 부르자는 의견 등이 나오며 활발한 논의가 지속됐으나, 아쉽게도 의견이 분분해 하나로 모아지지는 못했다. 이후 별다른 명칭변경 시도가 이뤄지지 않아 지금까지 학생회관은 그 이름을 유지하고 있으며, 공식적으로는 후생관으로 불리고 있다. 하지만 후생관 자체도 명칭변경 당시 고루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고, 여전히 학생회관이라는 이름이 구성원들 사이에서 널리 불리우며 군사문화의 잔재를 털어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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