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심사평

  올해 응모된 작품들에서 두드러진 면을 꼽으라면 경험보다 관념을 앞세우는 언어들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이 경향은 최근의 한국시가 보여주는 부정적인 면모와 맥락을 함께 하는 것인데, 그것이란, 삶의 치열함보다 삶에 대한 언어적 표현의 새로움을 부각시키는 경향을 말한다. 아마도 이는 현실 속에 몸을 던져 세계에 대한 감각을 구성해가는 모습보다 시뮬레이션된 현실의 일부분을 경험하는 것으로 그 구체적 감각 구성을 대체해가는 사태를 반영하는 것일 것이다. 이것은 그러나 시를 처음 배우는 사람에게는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관념은 구체화되지 않으면 개념으로 그쳐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념은 시가 아니다.
  응모작 중 최후까지 거론된 것은 「솟대」 「향기의 힘」 「봉숭아물」이다.
「향기의 힘」은 삶의 진정성을 정직하게 밀어붙이는 힘이 주목되었다. 이것은 앞으로도 이 응모자에게 가장 소중한 문학적 근거가 될 것이다. 그런데 연과 연을 연결할 때의 의미론적 반복이 삶의 고양이나 확장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것이 한계로 지적되었다.
「봉숭아물」은 하나의 소품이다. 어머니와 공유하는 첫사랑의 기억이야말로 모든 사람에게 따듯함인 동시에 아련함일 것이다. 그런데 시는 다만 그 정서의 단출함에서 머물고 있다.
  최종적 논의 결과 당선작으로 결정된 작품은 「솟대」이다. 언어의 깊이를 부릴 줄 아는 능력이 돋보이고, 그것을 삶의 목소리로 구체화하는 능력도 갖춘 시라고 심사위원들은 생각했다. 형상화의 명징성에 있어서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나, 종종 그 불명료함이 이 시의 매력으로 자리잡는 순간도 있었다. 앞으로 좋은 시편들을 보여줄 수 있는 응모자라고 판단하며 「솟대」를 당선작으로 뽑는다.
  다만, 이 작품의 기교가 응모자의 시적 재능을 이 상태에서 정지시키는 사태를 경계해야 할 것이다. 기교는 기교일 뿐 시의 운명은 아니기 때문이다.


국어국문학과 교수 손종호
국어교육과 교수 박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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