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문과 안문영 교수를 만나다

 

 푸른 도포를 입고 푸른 눈의 관객 앞에 섰다.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작은 북의 장단에 맞춰 신명나게 한 대목 뽑는다. 2년 전, 우리학교 독문과 안문영 교수는 그렇게 처음으로 독일에서 판소리를 불렀다. 그에게 더 이상 독일의 튀빙겐 대학, 에어푸르트 대학은 단순히 학문을 배우는 곳이 아니다. 한국 문화를 알리는 ‘무대’다.

  -독문학을 전공하시는 분이 판소리를 한다는 점이 신기해요.
  나도 처음엔 우리문화에 관심이 없었네. 독문학을 전공한 이유도 유럽문화에 대한 동경 때문이었고. 그런데 어느 날 독일 학자와 대화를 하게 됐는데, 그 사람은 내가 독일 문화를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에 대한 것보다 우리나라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 하더라고. 얼마나 창피하던지. 그 때부터 우리문화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네. 판소리도 그 중 일부고. 최근에는 단순히 판소리를 배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독일문학과 비교 연구하고 있어. 2년 전 독일에서 이 연구를 발표하면서 우연히 판소리의 일부를 불렀는데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이 굉장히 관심을 보이더라고. 그 이후로 그 사람들 사이에서 난 판소리하는 사람으로 통하게 됐어.

  -말이 다르고 익숙하지 않은 이야기인데도 관심을 보이던가요?
  물론 내가 내용을 미리 설명했지. 허허. 사실 그보다 판소리 이야기는 독일문학과 근본적으로 많이 닮아 있네. 에어푸르트 대학 초청 강연에서 발표할 내용이기도 한데, 이를테면 <심청가>에서 아버지를 위해 딸이 희생하는 이야기는 괴테의 소설 <이피게니>에서도 쓰여. 트로이 전쟁에서 아가멤논 장군은 “진군하기 위해 딸을 희생시켜야 한다.”는 신탁을 듣고 고민하지. 근데 딸 이피게니가 순순히 희생양이 되겠다고 말하는 거야. 심청이랑 이피게니랑 굉장히 비슷하지 않나? 말은 달라도 통하는 데가 있는 거지.

  -낯선 곳에서 혼자 공연을 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나요?
  고수가 없는 것, 사실 그게 제일 고민이네. 평소에는 그냥 작은 소고로 장단을 맞추며 부른다네. 한번은 독일의 선교사님 요청으로 공연을 하게 됐는데 그 소식을 듣고 어떤 교포분이 150Km나 되는 거리를 달려와 고수를 맡아 주셨어. 정말 고마웠지.  

  -긴 노랫말을 외우는 것도 어려울 거 같아요.
  굉장히 힘들지. <춘향가>에서 이 도령의 상차림 반찬만 해도 무려 40가지이고, <흥부가>에서 흥부가 박을 탔을 때 나오는 비단종류만 60가지야. 때문에 판소리 한 마당을 완창하려면 무려 8시간이 걸리지. 그 만큼 긴 이야기야. 내 판소리 선생님은 한번 완창을 하시고 3kg이 빠지셨어. 체력소모도 어마어마하다네. 나는 아주 짧은 대목을 하기 때문에 별로 문제없지만.
       
  -다른 곳에서도 판소리를 해달라는 요청이 많았겠어요.
  한 번은 독일 지역 라디오에서 한 대목만 불러달라고 요청이 왔었는데 나는 아마추어잖아. 나 때문에 독일 사람들이 판소리를 잘못 알게 될까봐 거절했어. 또 한 번은 제자가 독일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됐는데 그 때 판소리를 해달라고 하질 않겠나? <춘향가>의 ‘사랑가’ 대목을 불렀지. 배운지 얼마 안됐을 때인데… 잘 못했었던 것 같아. 그래도 그 공연이 가장 즐거웠어.

  인터뷰는 중모리와 자진모리를 오가며 진행됐다. 공연의 추억을 천천히 되돌아보는가 하면, 또 다시 우리 문화에 대한 열정으로 달아올랐다. 그는 우리문화를 우리가 먼저 아끼고 사랑했으면 한다고 한다. “뿌리를 알지 못하면 아무 소용없어. 알고 보면 가장 재밌고, 우리와 가장 잘 맞는 것은 우리문화지. 우리학교 학생들도 우리 것을 좀 더 사랑했으면 해.”

한단아 기자 danazzz@cnu.ac.kr
 사진/ 문수영 기자 symun@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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