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복 (조소과 대학원 05년 졸업)

  대학생들과 문화 활동을 공유하고 싶다는 포부로 대학생 사장님이 문을 연 북카페. 이 곳은 예술대학 조소과와 조소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한국 조폐공사 디자인 연구실에서 일하는 김복규 씨를 만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해 찾아낸 장소이다. 다행히 복규 씨는 인터뷰 장소에 만족하는 것 같았다. 또 마침 카페에는 우리학교 회화과 학생들의 작품이 전시중이었다. 그는 후배들의 작품에 눈을 맞췄다.

  김복규 : 전화하실 때 명수(예술대 인기강사인 노명수 강사는 김복규 씨와 예술대학 94학번 동기)를 통해서 저를 알게 됐다고요?
  예기자 : 아, 제가 지난 학기 때 노명수 교수님이 강의하신 ‘미술의 이해’를 들었는데, 그때 교수님이 동기 중에 돈 만드는 사람이 있다고 하셨거든요.
  김 : 구체적으로 어떻게 말했는데요? 궁금해요.(웃음)
  예 : 사실 잘 기억이 안 나는데…. (당황)

  섬세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페에 전시된 그림과 인테리어에 관심을 갖더니, 자신을 어떻게 알았는지 매우 궁금해 했다. 자신에 대한 평가를 듣고 싶은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마음이 궁금한 것 같았다. 이 섬세한 마음씨의 소유자는 충남 서천군의 바닷가 마을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김 : 어릴 때부터 바다가 익숙했어요. 바다에 나가려면 집 앞의 철길을 통과해야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바다와 철길이 지금의 예술적 감수성을 형성하게 한 요인 중 하나인 것 같아요. 그리고 유치원 때는 “그림 잘 그린다.”고 칭찬 받는 아이였고, 초등학교 때는 서예, 미술, 육상, 합창 등 모든 예체능이 좋았어요. 그때 미술대회에서 여러 번 수상을 했는데 상 받으니 미술이 더 재밌고, 재밌으니까 더 열심히 하게 되고. 중학교 때 본격적으로 미술부 활동을 하면서 대학 때까지 자연스럽게 미술을 전공하게 됐어요.
  예 : 대학 때도 칭찬을 많이 받는 학생이었나요?
  김 : 칭찬보다 많이 혼나는 학생이었습니다. 과제 제출 시간을 여러 번 못 지켰거든요. 교수님들께서 “시간 안에 작품을 완성하는 것도 실력”이라고 많이들 말씀하셨죠. 하지만 성에 찰 만큼 완성도가 나오기 전까지 과제를 제출하지 않았어요. 작품에 애착이 너무 강하다보니 고집을 부렸던 거죠.

  고집 때문에 많이 혼났지만, 고집 때문에 상복이 있는 학생이기도 했다. 그의 포트폴리오 속에는 학부 때부터 대학원 시절까지 여러 공모전에서 입상한 경력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리고 그의 작품 중 우리에게 익숙한 동상도 있다. 경상대 앞의 ‘사랑이’이다. 양 갈래 머리에, 입술을 쭉 내민 사랑스러운 꼬마. 복규 씨의 작품은 어린 아이를 소재로 한 작품이 많다.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그의 순수한 마음의 표현일 것이다.

  김 : “아니, 뭐, 그냥, 제가 어린 아이들의 표정을 좋아하거든요. 천진난만하고 귀여운 표정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니까. 그리고 보는 사람 입장에서도 이런 작품이 좋지 않나요? 평소 좋은 작품은 보는 사람이 알아보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난해한 작품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고, 예술은 예술가의 정서 표현이기도 하지만 보는 사람이 있어야 존재가치가 있으니까.”

  실제로 그가 설명하는 그의 작품들은 메시지가 쉽고 따뜻하며, 간결하다.
  2006년 한국조폐공사에 입사해 3년 째 생활인으로 지내고 있는 김복규 씨는 ‘조각가’가 꿈이라고 한다. 조폐공사에서 주화 제작을 위한 ‘조각’을 여전히 하고 있지만, 앞으로 자신만의 예술철학을 담은 작품을 위해 틈틈이 노력할 것이라고 한다. 따뜻한 시선으로 대중에게 조각을 읽어 줄 남자를 기다려 진다.

예소영 기자
langue-parole@cnu.ac.kr
사진 / 문수영 기자
symun@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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