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1일 저녁, ‘슈퍼스타K’(케이블 방송 ‘Mnet’의 가수 발굴 오디션 프로그램) 홈페이지 게시판은 뿔난 네티즌들로 가득했다. “정말 잘하는데 오히려 프로페셔널 해 보이는 게 마이너스가 된 것 같다”. 대전 출신의 오디션 도전자 김현지(26·보컬강사) 씨가 탈락한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조금은 불량해 보이는 겉모습을 커버할 정도의 훌륭한 가창력으로 로린 힐의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을 완벽히 소화한 도전자. 방송에 나온 것보다 더 굴곡이 많은 삶을 살아온 그녀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뮤지션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7년을 달려왔다. 이제 겨우 주목받기 시작한 스물여섯 살의 예비 슈퍼스타를 만나보자. 

   월평동의 한 음악학원에서 보컬강사로 일하고 있는 현지 씨의 연락처를 알아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만 화면에 비친 그녀의 모습 때문에 선뜻 통화 버튼을 누르기 어려웠을 뿐. 평일 저녁, 은행동의 한 포장마차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을 때까지만 해도 참 ‘긴장하게 만드는’ 취재원이었다. 걱정을 해도 너무 했다. 친근한 미소를 지으며 먼저 인사를 건네는 그녀를 보자 마음이 놓였다. 지금부터는 대화의 절반을 차지했던 술잔 부딪히는 소리와 구수한 욕설들을 걸러 낸 이야기.
  기자:
고정관념이 무섭네요. 방송에서 볼 때랑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아요.
  김현지(K): 방송에서 보면 어떤데요.
  기자: 아, 나쁜 의미는 아니고요. 음… 솔직히 쉽게 말을 걸거나 다가가기에는 힘들거라고 생각했어요. 
  K: 뭘 말 걸기 힘들어. 방송에서 그랬던 건 쑥스러워서 그런 거예요. 뭐, 졸립기도 하고. 원래 인상이 좀 그렇긴 한데 나쁜 의도는 아녜요. 진짜 안 좋은 표정은 그런 게 아니라 눈을 희번덕거리는 거지. 이렇게. (희번덕)
  날 때부터 악한 사람은 없다. “보기와는 다르게 마음이 약해서 힘든 사람들 보면 도와줘야 직성이 풀린다”는 그녀는 천성이 선하다. ‘원래 인상이 좀 그렇다’고 스스로도 인정하는 현지 씨의 성장기는 남들과는좀 다르다. 아니, 슬프다.
  기자:
가족얘기를 안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아버지가 진짜 그렇게 무서운 분이셨어요?
  K: 매일 맞았어요, 어렸을 때부터. 왜 때렸는지 모르겠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다 이해가 가지만 그 땐 진짜 평생 그렇게 살아야할 줄 알았어요. 여느 날처럼 한 바탕 소동을 치루고 정신없이 술을 마셨어요. 그때 울면서 아빠한테 문자를 보냈지. 나 왜 이렇게 키웠냐고. 다른 여자애들처럼 사랑해주고 예뻐라 해줬으면 지금처럼 남자에 대한 경계심 이런 거 없고 독해질 이유가 없다고. 이게 다 아빠 때문이라고. 그런 얘기한 게 처음이었는데 다음날 아빠한테서  문자가 왔어요. [아빠는 항상 우리 딸 사랑한단다.] 휴대폰 바꾸고도 옮겨서 저장해 놓고 다녀요. 
  기자: 정말 극적이네요.
  K: 사실 아빠가 내 노랠 처음 들은 거 얼마 안 됐어요. 정기공연 할 때였는데 거기 온 사람들 다 울었어요. 감동 받아서. 지금은 너무 행복하죠. 하루에 10번 넘게 전화하고. 주변에서 다 부러워하죠. 늦게 받은 사랑이라 더 값져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누구보다 싫어하는 사람이, 진짜 제일 싫은 사람이 아빠였는데 지금은 절대 아니에요.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고 제일 존경해요. 근데 엠넷인지 뭔지가 좋은 얘기 싹 다 잘라먹고 안 좋은 얘기만 내 보냈더라고요. 아, 진짜 짜증났어요.
  기자: 하하. ‘슈퍼스타K’에서 현지 씨의 행동과 말부터 시작해서 사연, 가창력들이 그야말로 이슈가 됐잖아요.
  K: 어렸을 때 그런 환경에서 자랐으니까 진짜 독기를 품게 되더라고요. 아무래도 겉으로 드러나는 건 어쩔 수 없죠. 내가 노래를 진짜 목숨 걸고 시작한 지가 7년이 됐는데 악, 깡, 독기 다 노래에 쏟아 부었어요. 내가 그걸 노래말고 다른 거에 뿜었으면 큰 일 났지. 제 홈피에 가면 같은 노래 5시간 동안 듣는 동영상을 후배가 찍어서 올려놨거든요? 그게 진짜 좋아하지 않으면 못 하는 거거든요.
  “이렇게 말하고 있는 지금도 머릿속에 온통 노래 생각뿐”이라는 그녀는 잘 때도 항상 헤드폰을 끼고 잔다.
  기자: 5시간 동안 들었던 노래가 뭐예요?
  K: 이은미 씨 노래, ‘꽃’. 한 번 필이 꽂히면 그 노래만 미치도록 들어요. 한 자 한 자 어떻게 부르는 지 연구하고 또 듣고 듣고. 계속. 거미 노래는 달고 살았죠. 제일 좋아하는 노래는 방송에서 처음 불렀던 거.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
  기자: 거미의 ‘기억상실’ 부르는 동영상 봤어요. 우리 학교에서 부른 거잖아요.
  K: 아, 맞아요. 그 때 충남대에서 주최한 무슨 가요제에 나갔죠. 그 때 대상 탔는데.
  그녀는 서두르지 않았다. 최고로 인정받기 위해선 가장 작은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때부터 전국의 유명한 가요제는 모두 찾아다녔다. 그렇게 각 지역의 가요제를 찾아다니며 실력을 인정받았던 그녀에게 ‘슈퍼스타K’는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K:
내가 포기하고 싶었을 때 여기(팔뚝을 걷어 문신을 보여주는 현지 씨) 로린 힐.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가수. 이거 7시간 반 떴어요. 하면서 마음 다시 잡고.
  기자: 으, 안 아팠어요?
  K: 아~ 이거 할 때 후배들 다 쓰러졌어요. 문신 새기는 사람도 나더러 진짜 독하다고. 이게 참, 인생도 그렇지만 아픈 게 지속되다 보면 그게 지겹고 아무렇지 않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걸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두는 사람은 자기 인생에 발전이 없는 거고, 거기서 이겨내는 사람은 크는 거죠.
  기자: 이제 잘 될 일만 남은 것 같아요.
  K: 잘 돼야죠. 아, 8월 말부터 앨범 준비해요. 아직 말 하고 다니지 않는데 주변에 같이 하자고 하는 사람도 좀 있고. 또 앨범 나오면 당장 사겠다고 하는 분들도 계시니까. 밖에선 막 욕도 하고 거만하게도 굴어보다가 무대에만 서면 미친 듯 떨어요. 눈감고 노래 부르고 이러거든요. 진짜, 음악이 전부에요.
  1시간 동안 진행된 인터뷰를 마친 뒤, “tvN에서도 촬영을 해갔지만 이렇게까지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며 볼멘소리를 하는 현지 씨. 그러나 이내 그 특유의 ‘입꼬리 양껏 올린 미소‘를 지으며 “고맙다”고 인사하는 모습이 그 어떤 ‘스타’보다도 아름답다. 어쩌면, 그날 밤 오고간 술만큼 넘쳐나는 그녀의 솔직함과 매력에 취한 걸지도 모르겠다.

글 장애리 기자
  sam0110@cnu.ac.kr
사진 문수영 기자 symun@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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