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속 충대人 Season3

김규동 ( 화공 ㆍ 64)

  잘 나가던 젊은 청년이 있었다. 대학 시절부터 모든 일에 열정적이던 청년은 대기업에 입사했고 3년에 1계급씩 승진을 하고 35세 나이에 기업 공장의 부공장장이 되며 사회적 성공을 손에 넣었다. 하지만 그는 그 모든 것을 한 순간에 내려놓았다. 신념에 따라 일본으로 갔고 그곳에서 그는 목사가 됐다. 일본은 기독교의 황무지다. 전체 인구의 기독교 신자는 1%도 되지 않았다. 그는 국적으로도 종교적으로도 확실한 이방인 이었다. 하지만 현재 그가 이끄는 교회는 일본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곳이 됐고 한국의 여느 교회와 비교해도 결코 작지 않은 곳이 됐다. 제 2의 인생에서도 승리를 한 그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본다.

  그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은 유신정권으로 학생들은 한참 데모에 빠져있을 때였다. 정부는 대학생들의 데모를 막고자 학교에 휴교령을 내렸다. “국가적으로 엄청난 손실이었지 학생들이 공부를 못하고 허송세월을 보내게 했으니” 그는 학교를 돌아다니며 강의실을 개방하라고 난리 쳤다. “당시 나는 학생운동의 리더들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 결론은 우리가 사회운동도 해야 하지만 공부를 손에서 놓지는 말자였어” 그의 집념이 결국 학교 강의실을 개방시켰고 그는 불 꺼진 강의실에 형광등을 달아 학생들과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를 손에서 놓지 않았던 그는 월등한 성적의 학생이었다. 그런 그를 현재 CJ의 전신인 미원에서는 일찌감치 신입사원으로 내정지었고 결국 75년 입사를 한다. 입사를 한 후에도 남들과는 다른 열정을 보이며 능력 을 인정받았다. “다들 학벌 좋고 능력있는 사람들 틈에서 눈에 띄려면 한 발씩 더 움직이고 더 창의적일 수밖에 없었지” 회사는 그런 그에게 일본 유학의 길을 열어 주었다. “자격기준은 두 가지였어, 첫째가 인간성,  둘째가 지적수준,  사회에서는 더 많이 아는 사람보다 더 성실하고 주변 사람들과 더 잘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을 인정했지.” 그렇게 그는 2년 간 유학을 다녀왔고 그 후 회사에서 많은 실적을 내며 초고속 승진을 했다. 35세에 임원급 간부가 됐고 그의 인생은 그 때쯤 이미 정상 언저리에 서 있었다.

  하지만 그는 내려놓는다. 모든 사회적 성과물들을 내려놓고 일본행을 택한다. 기독교 신자인 그는 기독교의 미개척지인 일본에서 선교활동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한 것이다. “말 그대로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야 했다. 회사에 다니던 시절보다 더 막막했고 그래서 더 뛰어다녀야 했다”는 그는 결국 일본에서 목사의 길까지 걷는다. 현재 그의 교회는 일본에서도 가장 큰 규모의 교회가 됐고 그 역시 기독교계에서는 알아주는 인물로 통한다. 그의 인생 3막은 2막 만큼이나 화려했다.

  그는 “일본 내에서 한국의 입지는 과거와 달리 막강해졌다”고 한다. “과거 김치냄새가 난다고 한국인을 피하던 일본인들이 이제는 한국산 김치를 사먹으려고 비싼 돈을 지불하고 있지. 한국산 김치는 일본 기무치의 3~4배의 값에 팔려, 이제 일본인들의 인식은 한국을 배우자로 바뀌고 있어” 경제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우리보다는 발전해 있는 일본이 우리에게서 무엇을 배우려 할까? 그는 “우리 문화를 배우려하지, 끈끈한 정 혹은 한결같은 사랑 이런 것들, 한류 열풍을 일으킨 한국의 드라마들은 모두 그런 정서가 베어 있었어.” 일본은 하루 평균 1백 명이 자살을 한다고 한다. “일본은 경제성장이 유토피아를 가져올 것이라는 예상했지만 오히려 사람들은 인정을 잃었고 개인화돼 사람간의 관계가 사라졌어. 한류는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일어난 것이고 일본이 한국에게 배우려는 것도 이것이지. 사람간의 관계, 정” 그는 이어 “한국 사회가 어지러운데 지도자층이 이러한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부심을 갖고 일본 속 한국인으로, 종교의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가장 큰 것은 정직이다. “일본 사람들은 정직하지 않으면 공동체에서 살아남지 못해. 그것이 이지메의 시초지. 정직하지 않은 사람에 대한 단죄” 다음이 근면이며 또 다른 것이 공중도덕을 잘 지키는 국민성이다. 그는 “심지어 노숙자들도 그들만의 규칙이 있어 자리를 깔끔하게 정리한다”고 하며 “모두가 자신의 위치에서 정직하고 성실하고 근면하게 역할을 수행하는 일본인의 특성과 따뜻한 정과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한국인의 정서 모두를 아우를 수 있다면 사회에서 좋은 인재로 거듭날 것”이라는 당부도 했다.   


이기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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