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속 충대人 Season3

 


  경제 대국이며 오늘날 세계를 지탱하는 중심축에 서 있는 일본이지만 이 나라 국민들은 항상 불안하다. 시도 때도 없이 벌어지는 지진은 물론이거니와 매년 엄청난 홍수가 섬나라 전체를 뒤흔들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이 분야에서 일본의 경쟁력은 세계 어느 나라 보다 섬세하며 전문적이다. 그 중에서도 교토 지역의 교토방재연구원은 일본 내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방재기관이다. 이곳에 김선민(토목·97) 동문이 있다. 그는 교토 대학원에서 홍수와 관련 박사학위를 받은 후 이곳 교토방재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2년 째 일을 하고 있다.

 

  그가 처음 이 분야에 관심을 보인 것은 대학교 졸업 이후다. 원래 그는 졸업 후 일반 기업체에 입사를 하고자 했지만 IMF가 터지면서 상황은 그에게 불리하게 흘렀다. “당시 기업체에 지원을 했지만 나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죠. 그래서 기술직 5급 행정고등고시를 응시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어요” 그리고 그는 1년이 조금 넘는 시간을 투자해 고시를 준비한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1차 탈락의 좌절이었다. “어려운 형편에 아르바이트를 하며 열심히 준비했던 것이기에 충격이 컸어요. 약 1주일간은 방에서 한 걸음도 나오지 못할 정도로 패닉상태였었죠” 그의 첫 도전은 뼈아픈 실패의 기억으로 남게 된 것이다.

  첫 번째 터닝 포인트
   혼란스러워하던 당시 그를 다시 일으켜 준 사람은 당시 학과 교수였던 정관수 교수다. 정 교수는 그에게 “한번 실패했다고 벽에 맞은 고무공 튀듯 행동하지 말라”며 질타를 했다. 그리고 대학원에 진학할 것을 권유한다. 그후 그는 대학원에 진학하며 수공학 중에서도 특히 홍수에 관심을 가지며 연구를 시작한다. 그는 “홍수 분야의 연구는 그 성과로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해 자부심이 있었다”고 전공 선택의 이유를 말했다.

  두 번째 터닝 포인트
  “대학원 공부를 하던 중 언젠가는 유학을 가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는 그는 그때부터 영어회화 공부를 시작한다.  이렇게 준비 한 그에게 마침내 기회가 왔다. 2002년 여름 이었다. 당시 태풍 루사가 한반도를 덮치는 큰 홍수 재난이 일어났다. “그때쯤 교토대 방재연구소에서 대규모 조직을 꾸려 한국으로 태풍 조사단을 파견했죠. 우리 정부와 함께 조사 연구를 실시하기 위해서였는데 여기에 제가 한국 조사단의 가이드로 참여를 하게 됐어요.” 홍수에 대한 전문 분야가 전무한 한국에서 홍수를 연구하는 연구원이라는 가치와 미리 준비한 영어회화 실력이 빛을 발한 것이다. 그러던 중 조사대의 일원이던 교토대의 다카라 교수가 그에게 교토대 대학원으로 유학 올 것을 권유한다. 그렇게 두 번째 기회가 찾아 온 것이다.

  연구원들의 천국 일본  
   그는 “일본은 연구를 하는 사람에게는 낙원과 같은 곳”이라고 한다. 우선 연구비의 여유가 많으며 한국에 비해 연구의 자율성 보장이 월등하기 때문이다. 또한 실패에 있어서도 관대한 것이 일본이다.  그는 “우리나라의 경우 100원을 투자하면 반드시 100원의 성과를 내야만 다음 연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 100원을 투자하고 10원의 성과를 내도 연구를 지속시킨다. 그것이 나중에 10000원의 성과를 볼 수 있는 씨앗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며 비유를 했다.

  재난연구에 활발한 일본, 불안한 한국
   이런 활발한 연구들이 바탕이 되어 일본은 홍수나 기타 재난에 대한 예방이나 사후 관리들이 철저하다. 특히 일본은 단순히 기술적 재난 예방과 복구에만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다. 그는 “우리 교토 연구소도 마찬가지이지만 일본은 홍수 재난 이후 피해자들의 사회적응력이라는 사회·과학적 분야의 연구도 활발하다”고 한다. 그는 “한국도 현재 매년 홍수로 인한 피해가 막대하지만 그때그때 단기적 대책만을 내놓을 뿐 아직 전문적 분야의 연구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더 큰 재난을 막기 위해서라도 총괄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우려했다.

   그의 말대로 매년 홍수로 인한 시름을 겪으면서도 전문기관 하나 없는 한국은 늘 재난의 위험이 산재한 국가이다. 그는 한 가지 다짐을 가지고 있다. “일본에서 연구를 하고 다른 나라로 유학을 갈지 모른다. 하지만 결국에는 내가 연구한 것들을 한국 사회에 돌아가 환원하고 싶다”는 것이다. ‘사람을 구하는 연구’를 하고 있는 그는 분명 언젠가 한국사회의 큰 영웅이 되어 활약하게될 ‘인물’이었다. 

이기복 기자 lkb23@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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