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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문화를 알자ㅡ영화영화의 국적 판별, 형식이냐 내용이냐
문화 | 승인 1995.04.03 00:00|(741호)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또한번 화두가 되고 있다. 이에 우리 신문사에서는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글을 장르별로 싣고자 한다.
  -글싣는순서- 
 1. 일본영화
 2. 일본음악
 3. 일본대중매체

  
  해방 50년을 맞는 해다. 침략과 수탈의 과거사로 인해 가까우나 먼나라가 된 일본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는 것은 마땅하고도 자연스런 일이다. 그러나 일본문화 개방과 관련된 정부측의 대응자세를 살피다 보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현재 국내에 들여올 수 없는 영화는 북한, 쿠바 그리고 일본 국적의 영화다. 특히 이들과는 합작까지도 금지되어 있다. 그러자니 일본과의 합작과 일본영화 수입문제를 놓고 주기적인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가정교사'라는 영화가 과연 어느 나라 영화인지를 놓고 한바탕 논란이 벌어졌다. 영화 심의를 담당하는 공윤과 그 감독기관인 문화체육부(이하 문체부)는 제작자의 국적을 영화의 국적으로 본다는 기준을 내세워 제작자가 미국인인 이상 이 영화의 국적은 당연히 미국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영화계의 의견은 다르다. 감독과 주연배우가 일본인일 뿐만 아니라 주제가를 비롯한 영화내용 또한 일본색이 강한 만큼 일본영화로 보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과연 어느 주장이 타당할까.
  제작자의 국적으로 영화의 국적을 판정한다는 공윤의 주장은 현행심의규정에 의한 형식논리만으로 따지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 기준은 시대의 흐름과는 동떨어진 규정이다. 지구촌 시대를 사는 지금의 상황에서 여러 국가의 자본과 인력이 어우러져 합작이 이뤄지는 것은 흔하디 흔한 일이다. 따라서 만일 영화의 국적을 가릴 필요가 있다면 좀더 엄격한 국적판별의 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 예컨대 유럽국가들이 유럽국적으로 위장된 미국영화를 가리기 위해 만들었던 기준처럼 제작자의 국적이 아니라 영화 창조작업의 주요부문을 맡은 사람들의 국적에 따라 구분하는 것 같은
  '가정교사'의 국적시비가 일고 그것이 시비를 건 측의 의도와는 달리 영화선전에 유리하게 작용한듯 하다. 이미 두해전에 수입했으나 흥행에 자신이 없어 필름을 창고에서 묵히고 있던 '쇼군 마에다'의 수입작 영화 개봉을 준비하고 나섰다. 이 영화의 제작자겸 감독은 미국시민권을 가진 일본인이다. 이처럼 내용은 일본영화임이 분명한데 국적은 애매한 영화가 또 들어오게될 것이다. 그렇다면 공윤이 나서서 당장에 해야 할 일은 영화의 국적을 가리는 기준을 명확하게 해두는 일이다. 그러나 공윤과 문체부는 형식논리를 내세운 변명에만 급급할 뿐 마땅히 해야할 일에는 관심이 없다.
  일본영화의 수입을 언제까지 막겠느냐는 좀더 근원적인 문제제기가 있을 수 있다. 일본영화의 수입은 왜 문제인가. 이와 관련하여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이 바로 일본문화의 국내 유입이 어느 수준인가하는 것이다. 과연 한국은 일본문화의 유입을 봉쇄해온 나라인가. 결코 아니다. 우리만큼 일본문화가 넘쳐 흐르는 나라가 일본말고 또 있는가. 한국의 실질적인 일본문화 유입수준은 세계 최고이다. 그렇다면 일본영화ㅡ일본색이 강할 뿐만 아니라 일본국적 영화임이 분명한 순 일본영화ㅡ를 개방해도 되는것인가. 결론적으로 일본영화는 지금 시점에서 개방되어서는 안된다. 일본영화의 개방은 문화의 개방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문화산업에 대한 개방의 완결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영화의 국적 판정에 일반 공산품의 국적을 가리는 기준을 적용할 수 없듯이, 무역개방과 문화개방은 다른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UR협정과 세계무역기구(WTO)의 등장으로 자유무역이 국제관계의 규범으로 등장한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시청각 서비스등 문화산업 분야에 있어서 만큼은 아직까지도 자유경쟁의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1985년부터의 외화수입자유화와 1988년부터의 미국영화 직배 허용으로 인해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은 이제 15%를 밑돌게 되었다. 문화분야의 장벽이 엄연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외화수입을 자유화 했는가. 다른 많은 분야가 그렇듯이 영화와 관계된 정부의 대외정책방침은 다자간 협상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한국현대사를 좌우해온 미국이라는 거대국가와의 쌍무협정 혹은 압력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외화수입이 자유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왜 하필 일본영화만을 문제삼느냐, 일본영화 보다 미국영화가 훨씬 더 저질이고 퇴폐적이라는 주장은, 외화의 범람을 막을 수 있는 국제규범이 엄연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왜 대책없는 외화수입 자유화를 시행해야만 했느냐라는 물음으로 바꾸어야 한다. 과거사를 볼모로 일본영화만의 유입을 규제하고 있는 우리의 처지는 차라리 잊고 싶은 한바탕 허깨비 놀음을 벌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본영화 문제를 거론함에 있어서 함께 지적되어야 할 것은 정부의 이중적인 가치관의 문제이다. 한국의 영화감독이 한국의 자본으로 일본침략의 실상을 고발하기 위해 일본배우를 동원해서 종군위안부의 이야기를 다루겠다고 나선다면 이런 영화의 제작을 정부가 방해해야 하는가 지원해야 하는가. 이 물음에 대한 정부의 대답은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판단과는 정반대편에 서 있다. 겉으로는 일본영화는 절대로 안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부가 세워놓고 있는 금지 정책은 정부의 행정력과 정보력이 실제적으로 미칠 수 있는 국내의 범위에 한정되어 있을 따름이다.
  이제라도 정부는 일본영화에 대한 겉다르고 속다른 대응자세를 바꿔야 한다. 늦어도 한참 늦은 일이지만 이제는 민간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존중해 줘야 할 때다. 특히 가장 효과적인 외국영화 유입억제책인 영화심의나 합작을 통한 상호교류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여기서 말하는 억제의 대상이 세계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를 존중하는 합리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아울러 영화문화의 향상과 국내 영화산업의 경쟁력 확보가 가장 확실하고 적극적인 외국영화 범람에 대한 억제방법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이를 위한 정책적인 지원에 힘쓸 일이다.

 김혜준<한국영화제작가협회ㆍ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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