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쌀교류와 관계전망

  8월 27일 대북한 쌀수용이 재개되었다. 이른바 쌀수송선 억류사건으로 인해 경각된 남북교류는 이로부터 3차 남북당국자 회담이 제의됨으로써 3번째 국면(1차 우성호 사건, 2차 삼선비너스호사건)을 맞게 되었다.
  북한측에 쌀15만톤(약2천억원대로 추정)을 무상지원(1995.6.21)하는 것으로 시작된 95년의 남북한교류는 94년 타결된 경수로건설 합의사항의 진전이 유명무실한 반면, 대북한 쌀공급은 전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2가지 특징을 갖는다. 쌀협상이 전격 진행된 남북한 당국의 속사정이야 어떻든간에, 이러한 사태는 핵타결을 둘러싼 94년의 일촉즉발의 전면전쟁발언(94.6.2일 미의회 특별보고서, 6월9일 이병태 국방부장관 발언)국면과 비교해 보면 대단한 발전임에 틀림없다.
  6월21일 남북합의는 지난해 6월28일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예비접촉이후, 최초의 남북한 고위 당국자가 타결한 합의사항으로서 김일성 사망이후 인도적인 측면에서나마 진척된 한반도의 통일문제의 새로운 전환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엄격히 말해서 이러한 '쌀 타결'이 향후 한반도의 긴장상태 완화국면의 징조라고는 섣불리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가장 흥미로운 사실은 6월27일 지방자치 선거가 집권 민자당의 대패로 귀결된 시점과 쌀타결이후 고조되기 시작한 남북경제협력의 분위기에 비추어 정국반전의 돌파구로서 '대통령 8.15경축사'에서 무엇인가 획기적인 대북제의가 있으리라고 하는 전망이 빗나갔다는 사실이다.
  95년 8.15경축사는 '정전협상을 준수하는 가운데 평화체제구축을 위한 적절한 대책을 함께 강구해 나가자'는 대북제의가 함께 있었지만, 사실상 '한반도 평화3원칙'과 대북제의는 역대 정권의 대북제의에도 못미치고 아무런 실질적 내용도 담고 있지 못한 함량미달의 수사(修辭)에 불과하였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는 대북 쌀수송선인 삼선비너스호의 간첩행위의혹(사진촬영)으로 인한 억류사건이 발생한 것에 1차적인 원인이 있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각종 여론매체및 국회에서는 이른바 '대북 저자세 외교'에 대한 비난성 대정부 공격을 시작하였으며, 급기야 대북정책 전면 재검토(나웅배 통일담당부총리, 95.8.16)가 '경축사'직후에 연이어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태에도 불구하고 사정은 다시 원점인 대북 쌀수용 재개(8.27)로 돌아갔다.
  분명한 사실은 이러한 지루한 일련의 사태, 또는 거의 비슷비슷한 교류악화, 정상으로 환원이라는 현상이 왜 95년에 이르러 계속해서 반복되는 가에 있을 것이다. 엄격히 말해서 김영삼정부의 대북한 원칙은 집권 전 기간에서 현재의 시점까지 대북한 적대이데올로기의 강도의 측면에서 보면 이승만 정권의 북진 통일론 이래 최고의 강도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는 이른바 '문민정권'이라는 수식어를 무색하게 하는 것으로서 역대 군사정권보다도 초강경 대북정책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5년의 유유부단한 대북한 관계로의 급전환의 이유를 우리는 다음의 두가지 사항으로 접근해 볼 수 있다.
  첫째, 잇단 사건에서 보여지는것 처럼, 국내의 정세에 대한 정권적 돌파구로서 대북관계를 간주하는 경향이다. 그러므로 94년 6월의 남북정상회담추진, 김일성 사후 조문시비, 95년 지방자치 선거시점에서 쌀협상 타결, 쌀수송선 사건 등, 현 집권당의 대북원칙의 실제는 대북문제의 정치적 이용이라는 역대정권의 그것과 근본적으로 동일선상에 놓여있다 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이러한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미국의 대한반도 전략에서 파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94년의 전쟁고조 분위기, 또는 대북한 화해분위기는 사실상 미국의 대북한 핵타결 외교전략의 흐름선상에 놓여있다는 단순한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장 결정적으로는 94년 10월 북ㆍ미핵타결 이후부터 한반도 긴장악화가 해제되기 시작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한국정부의 이른바 '대북한 저자세외교'는 사실상 '대미 저자세외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 할 수 없을 것이다.
  향후 남북한 관계의 전망은 이러한 기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95년 미국의 동아시아 방위전력 보고서(EASR)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 보고서의 기조는 여전히 북한의 침략가능성과 한반도에 대한 군사적 강화(한미연합군)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전략이 근본적으로 수정되지 않는 한, 향후 남북한 관계가 여전히 군사적 긴장상태를 골격으로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백일<통일문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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