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과 권력유착의 공식화 선언

  돈에 걸맞는 지위
  지난 91년 지방선거에서 두드러졌던 현상은 지역에서 재력이 있다는 사람들이 대거 정치에 뛰어들었다는 점이다. 대개는 지역에는 규모가 큰 건설업자들이었는데 아파트 건설붐을 타고 졸지에 갑부가 된 사람들도 많았다. 돈은 가질만큼 가졌으니 이제는 돈에 걸맞는 지위까지 누리고 싶은 사람들이었다.
  91년 지방선거 당시 그들은 유권자를 향해 지역주민을 위한 봉사자의 역할을 다하겠다며 한 표를 호소했다. 그리고 그들은 당선됐다. 그러나 무보수 명예직으로 주민을 위해 일하겠다고 다짐하던 그들이 임기 동안 보여준 일들은 당초의 약속과는 달랐다. 관광성 해외연수와 각종 이권개입, 불법행위, 심지어는 형사사건으로 구속되는 일들이 끊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지역주민의 참다운 봉사자의 모습은 사라지고 권력을 견제해야할 의원들이 보여준 것은 또 다른 형태의 권력자의 모습 뿐이었다.
  또한 무보수 명예직이라는 당초의 취지도 사라져 버렸다.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서 연구하는 의원은 찾아볼 수 없고, 활동비 등 예산만을 타령했다. 지방의회 의정자료실을 이용하는 의원이 거의 없는 사실이 우리 지방의원들의 연구자세로 잘보여준다. 더구나 지방의회 출범과 동시에 시작한 일들이 주민을 위한 여론 수집보다는 권위만을 내세워 의사당을 크게 짓는 것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상당액의 활동비를 정액으로 보장받게 되었다.
  이것이 지역갑부들로 채워진 지방의회의 현실이라면 지나친 것일까?
  주민들을 위해 봉사할 것이란 기대는 차지하고라도 돈 있는 사람들이라 더 이상 돈을 벌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 돈이야 충분히 있는 사람들이니 명예에 걸맞는 행동을 할 것이라는 기대는 더 이상 해서는 안된다. 그들이 추구한 것은 주민에 대한 봉사도 명예도 아니었고, 다만 권력과의 공식적인 관계를 맺고자 하는 것이었던 것이다. 그들에게서는 정치적 화려한 간판과 권력과의 끈끈한 맺음으로 자신들의 사업을 보호받고, 사업에 도움을 받으려는 목적 이외의 것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제 지역의 갑부가 아니라 나라의 갑부도 정치에 뛰어들었다. 기업가라는 이름으로 거대재벌의 회장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재벌회사로 성장시킨 탁월한 경영능력을 국가 발전에 활용한다면 나라의 경제성장에 얼마나 많은 보탬이 될 것인가?
  그러나 불행히도 그렇게 될 것 같지는 않다. 지방의회 의원으로 진출한 지역의 기업가들이 지역발전에 도움은 커녕 이권챙기기에 급급했던 사실이 그런 불길한 예감을 뒷받침해 준다. 그들은 참다운 기업가가 아니라 천민 자본가 이상의 수준이 아니었던 것이다. 재벌회사 또한 다른 점이 무엇인가? 우리나라 재벌이 권력의 특혜와 보호속에 성장했다는 사실은 다시 들먹일 필요조차 없다. 재벌의 속성상 권력과 유착하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우리는 재벌회장의 정치참여와 지방정치에 지역 기업인의 대거 참여를 경계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누구를 위한 정치를 할 것인가를 확실하게 물어봐야 한다.

  경제와 정치는 일체(?)
  재벌회장의 정치 참여는 개인의 정치적 권리의 문제가 아니라 재벌과 권력의 유착을 공식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권력이 주어져서는 안되는 집단이 있다면 '재벌'과 '군'을 꼽을 수 있다. '군'은 그 자체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데다 조직의 특수성 때문에 권력의 남용을 초래하게 되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막강한 힘의 원천인 거대 자본을 소유하고 있는 재벌이 권력까지 소유하게 된다면 나라의 정치가 어떻게 될 것인가는 더 이상의 논의가 필요 없는 것이다.
  누가 정치를 하든 막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아무나 정치를 하게 놔 두어서는 안된다. 정치적 권리가 있다고 해서 정치를 할 수 있는 자격까지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우리의 살림살이와 미래를 맡겨서는 안된다.

 이광옥<연합TV뉴스 대전팀장, 경제 82ㆍ졸>

저작권자 © 충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