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서도 일제잔재는 청산되지 않았다'

-글 싣는 순서-
 1. 일본영화
 2. 일본음악
 3. 일본대중매체

 일본음악, 그 개방이 왜 문제인가?
  일본대중문화 개방론을 놓고 몇달간 논의하더니 이제는 개방이 마치 공식화된 것처럼 믿는 사람들이 많다. 작년 국립극장에서 일본공연팀이 뮤지컬을 공연하거나, 요즈음 일본식 영화가 수입상영하거나, 일본노래가 담겨진 테이프들이 시중에서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음악경제학적으로 말한다면 한국이 일본음악의 최대 소비 시장이다. 일본음악이 한국에서 유통구조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 음악상품이 우수한데서 비롯한 것이 아니다. 첫째로 한국 근대의 역사적 전제에서 비롯하였고, 둘째로 우리들이 일본음악 그 자체에 대한 지적 분별력이 없는데다 100년 넘게 한국문화를 체험할(학습받을)기회가 없었다는 점에서 비롯하였다. 그 결과 우리들의 문화는 백년동안 일본 아니면 미국문화에 의한 모방문화를 낳았던 것이고, 이제 '세계화'라는 이름앞에서 창조성을 잃고 '대중적이고도 민족적으로 방황'하고 있는 실정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우리의 '세계화'란 이름으로 일본대중문화를 개방한다는 명분은 기실 일본화를 뜻한다. 먼저, 일본음악의 실체를 알아보고, 이어서 근현대 기간동안 일본음악과 관계성을 밝혀 바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일본음악이란 무엇인가?
  일본음악은 크게 두가지로 나눈다. 하나는 일본의 민족적 음악을 호오가쿠(邦樂,방악)라 하며, 또 하나는 메이지(明治, 1868~1912)시대 직후부터 서양에서 수입한 요오가쿠(洋樂,양악)가 그것이다. 마치 우리들이 전통국악과 양악으로 구별하는 것처럼 말이다. 일본은 더나아가 음악창작면에서 호오가쿠와 요오가쿠 양쪽을 혼합하여 일본 독자적인 현대음악이 있는 바, 이 모두를 오늘의 일본음악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일본의 고전 호오가쿠ㆍ현대 호오가쿠ㆍ민속음악을 통털어 '일본민족음악'이라고까지 부르고 있다. 또 일본음악을 좁은 뜻으로 가리킬 때에는 일본민족음악만을 가리키기도 한다.
  근대적 의미로 일본대중음악 성립은 역시 메이지시대 직후부터이다. 기존의 대중음악은 가요곡(歌謠曲,캬요오키요쿠)이나 예능(藝能,게이노오)이란 이름으로 있어왔다. 메이지 이후 일본어 가사에다가 요나누키 장ㆍ단 음계로 발전한 일본대중음악은 제2차대전 직후 외국 대중음악까지를 수용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에서 요나누키(ョナ坺き)란 '요와 나 音을 뺀 음계'를 말한다. 당시 '도ㆍ레ㆍ미ㆍ화ㆍ솔ㆍ라ㆍ시'중에서 화를 요, 시를 나라 불렀으므로 두 음을 빼고 남는 음은 도레미솔라 5음 음계가 되는 바 이 음계를 요나누키 장음계로 불렀다. 요나누키 단음계란 요나누키장음계인 도레미솔라에서 미와 라를 반음 내린 음계이다.
  요나누키 단음계는 다른 계이름으로 '라시도미화' 5음음계가 되는바 이 음계가 바로 미야코 부시 음계이다. 메이지 시대에 예능사들이 거리에서 자유 민권운동을 전개할 때 연설(演設, 엔제쯔)대신 부른 요나누키음계식 노래를 그 유명한 용어로 엔카(演歌)이며, 타이쇼오(大正, 1912~1926)시대부터 그 가사가 남녀 사랑가로 바뀌어지자 농염짙은 노래라는 뜻의 염가(艶歌)라는 용어가 나왔지만 일본식 발음은 그 이전의 '엔카'와 같다. 일본은 또한 전통적으로 2박자(4분의 2박자나 4분의 4박자를 포함한다. 이 박자로는 일본과 중국 그리고 18세기 유럽이 속한다. 한국은 전래적으로 3박자로 분류한다)
  그러므로 일본 대중음악은 메이지 시대에 발전한 엔카(演歌와 艶歌)와 제2차대전 이후에 서양의 장ㆍ단음계에 의한 모든 노래(최근의 록ㆍ소울ㆍ레게ㆍ댑 등까지 포함하여)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일본대중음악은 주로 일본방송의 '홍백가합전(紅白歌合戰, 홍백 노래 시합전)과 같은 방송매체나 가라오케ㅡ비데오케라는 일본식 노래방과 사회제도로 교류하고 있는데다 인적(엔카시ㆍ뮤지션ㆍ피디ㆍ음반제작자ㆍ방송관계자ㆍ종합상사등)ㆍ물적(직접위성방송ㆍCDㆍLDㆍ테이프ㆍ레코드ㆍ출판등)문화산업을 구축하며 세계국제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의 근현대사와 어떠한 관계였는가?
  일제의 통감부ㅡ총독부는 1906년 이래로 시골 구석진데 이르기까지 한국인들을 일본노래인 동요ㆍ창가ㆍ교가ㆍ군가ㆍ시국가요ㆍ애국가요ㆍ건전가요류를 학교와 시화교육으로 일본화 시킨 바 있다(짝사랑은 같은 뽕짝이 30년대에 '비로소' 히트할 수 있었던 사회적 유통구조를 주목하길 바란다. 한국근대사의 대중가요는 '잡가'이었으며 일본과 그 토대나 성격이 전혀 달랐다는 점도 주목하기 바란다). 해방이 되었지만 일제 잔재요소(일본음계나 박자를 비롯하여)가 청산되지 않은데다 민족문화건설을 좌절시킨 바 있는 역대 친일정권들의 일본문화 재생산 구조로 말미암아 일본대중문화가 사회적 기초를 형성(학교종과 같은 동요부터 뽕짝류까지)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역사적 전제이요 우리 문화의 감수성 현주소이다. 이 역사적인 토대와 조건의 전제에서 일본대중문화와 구미문화를 학습한 모방문화자들의 주장이 아닐까? 한국근현대사의 역사적 인식없이 어떻게 세계화로 나간단 말인가? 세계화란 일본화도 아니고 서양화도 아니다.

 노동은<목원대음악학ㆍ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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