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대작가 왜 그런 작품을 써야하는가?

  신세대 작가들은 젊다는 이유만으로 하나로 묶을 수는 없다. 더구나 그들 중엔 문학적으로는 젊은 축에 속하지만 신세대라는 표현으로는 다 규정하지 못할 작가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문학에 있어 신세대라는 개념이 일종의 허구라는 주장도 나올 법하다. 실제로 방현석, 공지영, 김인숙, 공선옥, 김소진, 김한수, 주임석, 정찬 등과 최윤, 구효서, 박상우, 심상대, 채영주, 신경숙, 윤대녕, 장정일 등을 하나의 특성으로 묶어낸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다. 어찌보면 그들의 특성은 90년대라는 새로운 조건 위에서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하게 되었다는 것, 그 결과 '80년대적 이념'의 퇴조와 '탈이념적'담론의 대두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하게 되었다는 점에 국한되는 지도 모른다. 그외의 것들에 대해서 그들은 너무나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앞에서 나눈 커다란 두 유형, 즉 운동권 출신 작가와 그렇지 않은 작가라는 점 외에도 몇가지 기준에 맞추어 더 세분해 볼 수 있다. 그러한 기준들 중 하나가 미학주의적 경향이라는 잣대이다.
  '문예중앙' 봄호가 '테마정담'의 논객으로 부른 구효서, 신경숙, 윤대녕은 바로 이 미학주의적 경향을 대변하는 작가들이다. 미학주의적 경향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예술로서의 문학과 그 문학성 추구를 제일의 가치로 상징하는 경향을 말한다. 물론 이러한 경향을 조금이라도 갖지 않은 작가란 없을 것이다. 작가란 이미 다름아닌 미학에 인생을 걸기로 작정한 자들이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작가들을 하나의 집단적 경향으로 묶어낼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지극히 90년대적인, 즉 그 시대적 필연성을 담지하고 있는 경향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문학은, 80년대 문학에서 정치적 요소가 차지했던 의미를 미학으로 대체한 것이라 요약할 수 있다. 그리고 이점에서 그들의 문학은 다분히 형식주의적이다. 삶을 위해서 작품을 쓴다기 보다는 작품 그 자체를 위해서 글을 쓰는 것이다. 이말이 부적당하다고 생각한다면 다시, 그들은 삶 자체를 미학화 시키기 위해 글을 쓴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정담의 주체가 '우리들 문체는 이렇습니다'라는 것은 뛰어난 편집적 안목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함께 젊은 시인들, 즉 신춘문예 당선 시인들을 향한 도정일의 충고가 담긴 '문학의 숲, 시의 길'또한 한 번쯤 읽어볼 필요가 있다.
  도정일은 '후기산업사회'적인 문화현상과 문학현상을 긴밀히 연관지어 논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비평자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최근에 평론집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를 통해 다시 한번 그러한 안목을 보여준 바 있다.
  아무튼 그는 이 글을 통해 신인 시인들에게 그들이 시를 써야 하는 절박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묻는다. 그들의 시에 그것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지적은 곧바로 최근의 우리 문단, 특히 신세대의 창작풍토에 대한 경계가 될 수 있다. 위대한 문학, 만인의 심금을 울린다는 그 감동적인 작품을 오늘의 신세대는 과연 창출해낼 수 있는 것일까. 왜 그런 작품을 써야 한단 말이냐. 그들 중 누군가 그렇게 반문할 것만 같다.

 방민호<서울대ㆍ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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