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어린 백셩'인가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는 돈많고 부자인 상민들이 돈을 주고 관직을 사는 제도가 법적으로 인정되었다. 백성을 다스리는 일에는 일자무식(?)인 그들이 돈을 주고 관직을 사서 양반행세를 한다한들 백성들이 마음놓고 평안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오늘날 이러한 제도가 법적으로는 사라졌다고해도 그 자취는 고스란히 이어져오고 있는듯 하다. 정주영현대그룹명예회장은 지난 92년 대선당시 기업과 연루된 모든 인력과 자금을 동원해서 선거자금으로 사용하였다. 그의 대선출마는 '재벌총수의 정계등단'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일으켰고 결국 대선에서 실패하였다. 또 당시 같이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던 현 김영삼 대통령은 현대그룹 정회장의 정치개입에 대항하여 '권력과 부의 결별'을 주장하며 비판하였다. 따라서 그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정경분리는 그의 정치원칙으로 자리잡았고 93년 공직자윤리법 제정때 다시한번 강조되기도 했다.
  그러나 다가오는 6월 지자체 선거를 두고 여ㆍ야가 공천문제와 함께 뜨겁게 대립하는 이때 김대통령의 느닷없는 정치권력과 기업과의 관계에 대한 입장선회로 온나라안이 시끄러워졌다.
  지난 4일 김석원 쌍용그룹회장이 대구 달성지구당 위원장으로 입당한 일이 바로 문제의 핵심이다. 김회장은 기업과 정치가 공감대를 형성하고 더 큰 발전을 위해 힘을 합쳐야 한다는 이른바 정경일체론을 내세웠고 지역주민에 대한 봉사를 여당입당의 이유로 돌리면서 현대그룹의 정회장과는 정계진출의 차별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한 논리는 정경유착에 대한 합리화일뿐 설득력은 높지않다.
  이는 지자체 선거에 대비하여 TㆍK지구ㅡ소위 '반김영삼'분위기가 우려되는 지역- 에서의 승리를 노리는 여당과 승용차사업 진출의 꿈을 이룬 삼성과 같이 정부의 뒷받침을 은근히 바라는 기업이 그야말로 손발이 짝짝꿍되어 이룬 그럴듯한 합작품이다.
  이번 김회장 여당입당은 김영삼정부의 세계화정책과 함께 대두된 기업의 국제경쟁력 향상 논리와도 위배되며 그가 주창한 정경분리의 원칙과도 모순된다. 이러한 현정권의 정치행태는 온국민의 정권에 대한 한가닥 신뢰마저 져버리는 처사이다.
  김대통령은 아직도 국민을 '어린백성'으로만 바라보는 것인가. 하지만 이제 국민을 기만하는 정부는 도처에서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을 더이상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이숙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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