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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고글① - 제3차 세계대학생 평화세미나를 다녀와서"남녘에서 오신 학우들입네까?"
문화 | 승인 1995.04.10 00:00|(742호)

  지난 2월 5일부터 9일까지 4박5일간 제3차 세계대학생 평화세미나가 '21세기 새로운 문명과 청년의 역할'이란 주제로 중국 북경에서 진행되었다.
  세계 31개국에서 400여명이 참가한 이번 세미나는 남한 181명의 대학생과 북한 53명의 대표단이 참가하였다.
  특히 우리학교에도 세미나에 관심이 깊은 학우 6명이 참가했다.
 이에 우리 신문사에서는 성상진(건축공학교육ㆍ4)학생이 투고한 기행문을 2회분량으로 나누어 싣고자 한다.  

  편집자주

 
  5일 아침 우리 일행은 비행기로 약 1시간40분정도 걸려 북경에 도착하였다. 우리가 묵게될 숙소는 五州大酒店(Continental Grand Hotel)이라는 5성급 호텔이었다. 호텔에 도착한 뒤 여장을 풀고 있는 도중 친구 한명이 다급한 목소리로 북한 학우들이 호텔 7층에 와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우리는 막무가내로 북한 학우들이 묵고있는 7층으로 내려갔다. 북쪽 사람들을 만난다는 긴장감보다는 무슨 신기한 것이라도 보러가는 듯한 마음이었다. "남녘에서 오신 학우들입네까?" 나이가 지긋이 들어보이는 한 분이 다정하게 웃으며 우리를 안내했다. 우리는 서로 간단한 소개를 나누고 신기한 듯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상당히 나이가 들어보이는 얼굴들이었다. 북한에서는 군대가 6년이라 모두들 군대를 마치고 와서 그렇다고 북의 한 학우가 설명을 해주었다. 북의 학우들과 모여앉아 몇마디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북한사람이라고 해서 특별히 우리와 별다른 차이점이 있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TV코메디에서나 듣던 '고조···'하고 시작하는 평안도 사투리가 특이해서 재미있었을 뿐. 마치 우리고향 옆집 사는 형님들처럼 낯설지 않은 얼굴이었다.
  우리가 공식적으로 북의 학우들을 만난 것은 저녁 만찬회 자리였다. 저녁 만찬회에서는 각 참가국 소개와 환영회가 있었다. 미리 식탁주위로 둘러앉은 각국 참가자들 가운데로 말숙한 정장 차림을 한 북의 대표단이 손을 흔들며 입장했다. 대표단 사이사이로 북의 학우들이 둘러 앉았다.
  내옆자리에도 북의 한 여학우가 앉았다. 우리는 간단히 서로를 소개했다. 처음 만나서 그런지, 여학생이어서 그런지 조금 말하기가 머뭇거려졌다. "오빠는···"하고 여학우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오빠라···?' 나는 초면에 갑자기 '오빠'라는 말에 잠깐 당황스럽기도 했으나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았다. 왜냐하면 내가 예상했던 것은 낮에 만난 북의 형님들이 그랬듯이 기껏해야 동무, 선생 정도의 호칭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음 만난 여학우에게서ㅡ그것도 북의 여학우한테서ㅡ'오빠'란 말을 듣게 되다니 정말 뜻밖이었다. 그 여학우와 몇몇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나는 나와 같이 방을 쓰고있는 친구를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그후로 우리 셋은 세미나 일정동안 깊은 이야기는 나누지 못했지만 여러가지로 매우 가깝게 지다.
  이렇게 북경에서의 첫날은 왠지 모를 들뜬 기분과 설레임이 뒤범벅된채 하루를 보냈다.
  둘째날은 본 세미나의 공식일정이 있었다. 오전엔 개회식 및 주체발표가, 오후엔 분과토의와 종합발표의 시간이 있었다. 주제발표 시간에는 남쪽에서 설인효(서울대ㆍ2)학우가 북쪽에서는 강영철(김일성종합대ㆍ4)학우가 해 주었다. 분과토의 시간에는 "21세기, 새로운 문명과 청년의 역할'이란 대주제 아래 총 4개의 분과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나는 제1분과 '한반도 통일이 세계평화에 미치는 영향'에서 분과토의에 참가했는데 다른 분과보다 많은 관심이 집중된 분과였다. 남쪽에서 여경록(건국대ㆍ4)학우가 북쪽에서는 류경철(김형직사범대ㆍ4)학우가 대표로서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통일문제에 대해서는 남ㆍ북의 학우 모두가 많은 관심을 가지고 조국통일의 당위성과 평화적 통일에 대해 공감하는 견해를 보였다. 그러나 몇 가지 통일의 방법론적인 면에서는 서로 대립되는 의견의 차를 보이기도 하여 역시 통일이 말처럼 쉬운 일만은 아니로구나 하고 분단 50년의 깊은 골을 느낄 수 있었다. 남ㆍ북대학생 모두 서로가 다른 이념과 체제, 문화적 환경에서 자라온 분단 2세대들이기 때문에 그들 스스로가 진리라고 믿는 것에 대해 함부로 비판을 하거나 서로가 서로를 설득시키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상식의 차가 가로놓여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서로가 서로를 믿고 사랑하는 뜨거운 형제애, 동포애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5일 아침 우리 일행은 비행기로 약 1시간40분정도 걸려 북경에 도착하였다. 우리가 묵게될 숙소는 五州大酒店(Continental Grand Hotel)이라는 5성급 호텔이었다. 호텔에 도착한 뒤 여장을 풀고 있는 도중 친구 한명이 다급한 목소리로 북한 학우들이 호텔 7층에 와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우리는 막무가내로 북한 학우들이 묵고있는 7층으로 내려갔다. 북쪽 사람들을 만난다는 긴장감보다는 무슨 신기한 것이라도 보러가는 듯한 마음이었다. "남녘에서 오신 학우들입네까?" 나이가 지긋이 들어보이는 한 분이 다정하게 웃으며 우리를 안내했다. 우리는 서로 간단한 소개를 나누고 신기한 듯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상당히 나이가 들어보이는 얼굴들이었다. 북한에서는 군대가 6년이라 모두들 군대를 마치고 와서 그렇다고 북의 한 학우가 설명을 해주었다. 북의 학우들과 모여앉아 몇마디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북한사람이라고 해서 특별히 우리와 별다른 차이점이 있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TV코메디에서나 듣던 '고조···'하고 시작하는 평안도 사투리가 특이해서 재미있었을 뿐. 마치 우리고향 옆집 사는 형님들처럼 낯설지 않은 얼굴이었다.  우리가 공식적으로 북의 학우들을 만난 것은 저녁 만찬회 자리였다. 저녁 만찬회에서는 각 참가국 소개와 환영회가 있었다. 미리 식탁주위로 둘러앉은 각국 참가자들 가운데로 말숙한 정장 차림을 한 북의 대표단이 손을 흔들며 입장했다. 대표단 사이사이로 북의 학우들이 둘러 앉았다.  내옆자리에도 북의 한 여학우가 앉았다. 우리는 간단히 서로를 소개했다. 처음 만나서 그런지, 여학생이어서 그런지 조금 말하기가 머뭇거려졌다. "오빠는···"하고 여학우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오빠라···?' 나는 초면에 갑자기 '오빠'라는 말에 잠깐 당황스럽기도 했으나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았다. 왜냐하면 내가 예상했던 것은 낮에 만난 북의 형님들이 그랬듯이 기껏해야 동무, 선생 정도의 호칭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음 만난 여학우에게서ㅡ그것도 북의 여학우한테서ㅡ'오빠'란 말을 듣게 되다니 정말 뜻밖이었다. 그 여학우와 몇몇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나는 나와 같이 방을 쓰고있는 친구를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그후로 우리 셋은 세미나 일정동안 깊은 이야기는 나누지 못했지만 여러가지로 매우 가깝게 지다.  이렇게 북경에서의 첫날은 왠지 모를 들뜬 기분과 설레임이 뒤범벅된채 하루를 보냈다.  둘째날은 본 세미나의 공식일정이 있었다. 오전엔 개회식 및 주체발표가, 오후엔 분과토의와 종합발표의 시간이 있었다. 주제발표 시간에는 남쪽에서 설인효(서울대ㆍ2)학우가 북쪽에서는 강영철(김일성종합대ㆍ4)학우가 해 주었다. 분과토의 시간에는 "21세기, 새로운 문명과 청년의 역할'이란 대주제 아래 총 4개의 분과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나는 제1분과 '한반도 통일이 세계평화에 미치는 영향'에서 분과토의에 참가했는데 다른 분과보다 많은 관심이 집중된 분과였다. 남쪽에서 여경록(건국대ㆍ4)학우가 북쪽에서는 류경철(김형직사범대ㆍ4)학우가 대표로서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통일문제에 대해서는 남ㆍ북의 학우 모두가 많은 관심을 가지고 조국통일의 당위성과 평화적 통일에 대해 공감하는 견해를 보였다. 그러나 몇 가지 통일의 방법론적인 면에서는 서로 대립되는 의견의 차를 보이기도 하여 역시 통일이 말처럼 쉬운 일만은 아니로구나 하고 분단 50년의 깊은 골을 느낄 수 있었다. 남ㆍ북대학생 모두 서로가 다른 이념과 체제, 문화적 환경에서 자라온 분단 2세대들이기 때문에 그들 스스로가 진리라고 믿는 것에 대해 함부로 비판을 하거나 서로가 서로를 설득시키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상식의 차가 가로놓여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서로가 서로를 믿고 사랑하는 뜨거운 형제애, 동포애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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