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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문턱' 결코 높지만은 않다완성도 높은 소극장 통한 공연의 장기화, 관객확보에 주력
문화 | 승인 1995.05.15 00:00|(744호)

  오페라의 발생과 발달
  오페라는 이태리에서 르네상스 말기인 16세기에 만들어져 바로크시대에 꽃을 피웠다. 그 애초의 발상은 르네상스의 복잡한 합창양식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였다. 이때는 성부가 16성부가 넘는가 하면 대위법이 극에 달해 노래의 형태를 띄고 있기는 하지만 실제는 기악과 다를바 없는 표현으로 치닫고 있었다.
  때문에 간단한 화성에 명확한 멜로디를 보다 극적이고 흥미있게 부르고 싶은 욕구가 생기게 된 것이다.
  예술양식이란 항시 기존의 벽을 허물고자 하는 강한 충동에 의해 새로운 양식이 탄생하는 것이듯 이 오페라 운동도 카메라타란 모임에 모인 인물들을 중심으로한 르네상스 정신인 문예부흥운동의 일환이었다.
  1597년 피렌체에서 시작된 오페라는 당시 금융권을 장악한 절대 부호로 교황권까지 움직일 수 있었던 재력가인 메디치가(家)의 문화지원으로 초기 오페라에 큰 활력소가 되었다.
  이어 오페라는 상업도시인 베네치아로 옮겨가 본격적인 오페라붐을 조성하게 된다. 일반을 상대를 한 오페라극장 '산 카치아노극장'이 개장된 것이 1637년의 일이다.
  애초 오페라가 귀족들의 기념일이나 잔치를 위해 만들어졌던 것에 비하면 대중화의 첫 발을 내디딘 것이다. 이때 이미 인구 15만의 베네치아에는 연이어 몇개의 극장이 들어섰고 상류계급의 관람석이 별도로 지정되고 일반 사람들은 싼 티켓을 구입해 오페라를 즐겼다.
  바로크 시대에 불붙기 시작한 오페라가 알프스산을 넘어 유럽에 상륙하는데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독일, 프랑스, 영국으로 급속히 전파되었던 것이다. 물론 그 초기의 본거지는 궁정이었고 이태리 작곡가들은 상당한 대접을 받으며 초청되어 인기를 독차지했다.
  그 결과 '수입 오페라'인 이태리 오페라에 맛들인 귀족들은 좀처럼 자국 작곡가들의 작품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당대의 많은 작곡가들은 이 오페라의 신토불이를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그 성은 너무 높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러나 천재가 나타나면 이는 극복이 되는 것이다. 모차르트가 나타나 천재성을 발휘하면서 문제는 달라졌다. 모차르트 역시 대부분의 작품을 이태리어로 썼고 이태리의 멜로디 등을 중시하면서 말기에 이르러 점차 독일의 정신을 담아 나갔던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루이 14세의 절대적인 지원하에 륄리가 프랑스오페라의 특질을 살리려는 노력을 했고 어떤 오페라에서도 발레를 중시하는 그들의 문화적 자존심을 고스란히 지켜나갔다. 이후 오페라는 여러나라에 퍼져나갔고 국민주의 시대에는 모든 나라마다 자국의 전설이나 역사 등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탄생했다. 오페라에는 어떤 형태로든 국가나 귀족층의 참여가 필수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재정 러시아의 오페라나 발레 역시 정권 유지를 위해 귀족들에게 이같은 예술잔치를 베풀었던 것이다. 오페라 극장이 세워지고 샹드리에가 휘황찬란한 곳으로 마차를 타고 가는 귀족들은 이곳에서 사교와 정치를 했던 것이다.
  이쯤에서 우리의 오페라 대중화를 생각해 보자. 앞서의 설명과 비교하면 우리의 상황이 판이하게 다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 오페라가 첫 공연된 것이 1948년이니 이제 고작 50년 남짓이다. 그리고 오페라 전용극장이 세워진 것이 불과 몇년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오페라도입시 국가나 기업들의 동참이 없었다는 것이다. 오늘의 귀족이라 할 수 있는 기업총수나 재력가들에게 역시 문화투자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현재의 시스템으로는 될수 없는 것이다.
 
  한국의 현실과 개선방향
  여기서 오페라가 대중화되기위해서는 무엇보다 관객이 있어야 하는데 이는 오페라가 국민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도록 사회문화 분위기 조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는 교육에서부터 보다 내실화 되어야 한다. 초등학교에서 대학에 이르는 과정의 예능교육이 지극히 형식적일뿐만 아니라 그나마도 입시때문에 회피하는 실정이다.
  구체적인 방법으로 오페라가 서울중심에서 한 작품이 고작 3, 4일의 공연에 그치는 것을 개선해야 한다. 지방과의 연계나 장기 순회공연등을 통해 수준높은 공연이 되도록해야 한다. 지방마다 오페라단이 있지만 이러한 기회를 통해 상호발전할 수 있는 방향모색이 중요하리라 여겨진다. 지역성만 강조하다보면 그 결과 작품의 질 문제로 이내 한계점에 따르기 때문이다.
  또한 대형 공연물에만 매달리는 풍토를 개선해야 한다. 이번 봄시즌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있었던 서울오페라 앙상블의 '목소리'와 '스잔나의 비밀'에서 보여준 소극장 오페라의 매력은 오페라가 반드시 막대한 제작비에 묶여있지 않아도 성공적인 작품이 나올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여기에는 전자악기주자 2명이 오케스트라의 효과를 충분히 발휘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법은 앞으로 컴퓨터 시대를 맞아 오페라가 새로운 대중을 향해 접근할 수 있을 것이고 탈 공연장화한 공연도 생각해 볼 수 있을것이다.
  때문에 지방여건에서 부족한 예산으로 명작 그랜드 오페라에만 집착하기 보다는 완성도가 높은 소극장 작품을 통해서 공연의 장기화와 관객확보에 주력해야할 것이다.
  오늘날 영상을 통한 오페라 보급 또한 매우 활발하기 때문에 오페라의 대중화는 보다 빠르게 전개될 것이다.
  여기서는 실제 공연을 중심으로 한 대중화에 대한 방법을 말하는 것으로 앞으로 지방자치가 문화에 관심을 갖도록 하려면 그지역의 문화여론 형성이 관건이 되겠다.
  지금껏 우리사회에서 문화가 여론화되는 것이 극히 미흡하기 때문에 앞으로는 대학을 중심으로 활발한 논의를 통해 방향제시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번 김자경오페라단이 '호프만의 사랑이야기'를 공연하면서 리허설을 무료로 공개, 초ㆍ중등 학생들에게 관람시킨 것은 오페라 관객 기반조성을 위해서도 매우 바람직한 기획으로 보여졌다. 이렇게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방법을 모색해 나간다면 오페라의 대중화는 앞으로 다가오는 21세기에 보다 희망적이라 여겨진다. 앞으로의 세대는 삶의 질을 생각하는 문화시대가 오고야 말것이기 때문이다.

 탁계석<경희대시강ㆍ음악평론가>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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