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체제속 통상압력의 본질

 세계무역기구의 첫희생양
  WTO체제는 무역, 외환, 자본의 국제화를 촉진시키는 국제기구로서의 역할을 수행함과 동시에 국제화를 위반하는 국민국가에 압력을 가하는 국제기구로서의 역할이 증대된 것이다. WTO체제가 가지는 이러한 본질적인 측면에 대한 이해속에서 '의사결정자'로서의 지위보다는 결정된 사안에 대한 '의사 수용자'로서의 지위가 규정적인 한국을 비롯한 제 3세계국가, 개도국들은 WTO체제하에서 예상되는 제문제에 대한 대응방안의 모색이 현시기의 당면과제로 설정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과의 통상협상에 불만을 품은 미국에 대한 검역절차에 대하여 WTO분쟁해결절차(신속해결절차)에 회부할 것임을 통고해오고 식품유통기한제도에 대해서는 WTO분쟁해결절차(일반분쟁해결절차)에 회부하게 됨으로써 세계무역기구의 출범이후 한국은 미국에 의한 첫 희생양이 되었다.
  미국의 수입농산물 검사검역제도와 식품유통기한제도에 대한 WTO분쟁해결절차에의 회부와 관련하여 사건의 진행과정과 문제의 본질을 WTO체제의 본질석에서 살펴보고 우리의 대응방안을 점검해보고자 한다.
 
 선통관 후검사 요구

  미무역대표부(USTR)는 1995년4월4일 한국의 수입농산물 검사ㆍ검역제도가 WTO에 위배된다는 판단에 따라 10일이내에 양자협의를 시작할 것은 요청하는 서한을 주제네바 한국대표부에 송부한바 있다. 이것은 미국이 한국의 수입농산물 검사ㆍ검역제도를 WTO분쟁해결절차(일반분쟁해결절차 및 신속해결절차)중 신속해결절차에 회부할 것임을 통고해온 것이었다. 검사ㆍ검역제도에 이어 미국은 5월3일 한국의 식품유통기한제도를 WTO일반분쟁해결절차에 정식으로 회부하였다. 미국이 한국의 수입농산물 검사ㆍ검역제도를 WTP신속분쟁해결절차에 회부할 것임을 통고하면서 제시한 양자협의의 근거는 WTO협정의 '부속서 2:분쟁해결규칙 및 절차에 관한 양해' 제4조 '협의(Consultations)' 8항 및 9항(=부패성상품에 관한 분쟁을 포함하여 긴급한 상황에 따른 신속한 분쟁해결절차), WTO위생 및 식품위생조치의 적응에 관한 협정(SPS협정)그리고 WTO기술무역에 관한 기술장벽협정(TBT협정)이었다.
  이번 사건은 1995년2월 미국 Paramont사의 감귤류(자몽) 수출분(약 5만kg, 46만달러상당)이 통관되는 과정에서 일부물량(15-29%)의 부패가 발생한데 기인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이 감귤류에 대해 올해부터 잔류물질검사를 대폭 강화함으로써 검사기간 중 수입잔량이 통관보류되어 이러한 상황이 발생했다고 평가하고 이러한 상황의 사정을 위해 잔류물질검사의 완화와 '선통관 후검사'를 요구하여왔다. 이에 대하여 한국정부는 쌍무협상의 과정에서 신선과일 및 채소류에 대해서도 '선통관 후검사'를 실시하여 부적합 판정시는 사후에 회수하여 폐기한다는 것과 검사기간을 종전의 25일에서 5일로 대폭 단축한다는 내용을 담은 '선통관 후검사제도 개선방안'을 확정하여 4월3일부터 시행할 것임을 미국측에 통보하였다. 이것은 쌍무협상의 과정에서 미국측이 요구한 사항이 전적으로 한국정부에 의해 관철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한국의 수입농산물 검사ㆍ검역제도와 관련하여 신속한 제도개선을 평가하면서도 제도시행과 관련한 의문점 등 관심사항에 관한 협의를 계속할 것을 주장 하였고 이에따라 WTO분쟁해결절차(신속해결절차)에 회부할 것임을 통고하게 된 것이다. 결국 미국이 쌍무협상의 과정에서 자신의 요구를 대부분 관철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GATT제제와는 달리 분쟁해결절차를 크게 강화한 WTO체제하의 분쟁해결절차에 회부하려는 것은 한국의 농산물시장을 철저히 개방시키려는 계산된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자유무역의 확대 및 강화
  WTO체제출범 이전의 GATT체제하에서도 미국은 한국에 대하여 자유무역론을 이론적 무기로 하여 농산물시장을 개방시키기 위한 강압적인 쌍무협상을 진행시켜온바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국은 1997년까지 농산물시장의 100%개방을 약속하고 있었다. 쌍무협상과정에서의 협상력 문제에 대해서는 다시거론하지 않더라도 수입되는 농산물의 안전성에 대해서는 수많은 문제가 있어온 것이 사실이다.

 농민이익의 최대한 관철
  우리는 7년을 넘게 지리하게 끌어오던 우루과이라운드가 타결되었던 지난 1993년의 겨울을 기억하고 있다. 이미 80년대 초부터 진행되었던 수입개방농성의 와중에서도 선진자본주의국들의 자유무역의 확대요구라는 예측가능한 사실에 대해서 선택가능한 구체적인 대안의 마련보다는 세계적 경제질서의 변화를 당위적으로 수용할 수 밖에 없다는 이데올로기를 전파하기에 급급해 왔다.
  이러한 까닭에 농업해체과정에 있어서 최후의 보루로 인식되었던 '쌀'의 개방문제에 대해서 생산의 직접 담당자인 농민을 비롯해서 전국민적으로 절망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1993년 12월15일 우루과이라운드타결 이후 1994년4월15일 '세계무역기구설립을 위한 마라케쉬협정(=세계무역기구협정)'의 체결로 이제 세계경제질서는 GATT에 이어 WTO체제(1995년 1월 1일발효)로 새롭게 재편되어 있다. 세계화, 국제화라는 이데올로기는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의 경제를 규정하는 현실적 조건이 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더 이상 세계경제질서의 변화를 수용할 수 밖에 없다는 식의 이데올리기 전파가 당면한 문제가 될 수는 없으며 세계화, 국제화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를 구체적으로 확립하는 것이 당면한 최대의 문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자국이익의 최대한 관철' 이것이 자유무역의 확대및 강화를 제일성으로 하여 출범한 WTO체제하에서의 최고의 명제가 되어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힘의논리'는 여전히 유효하게 작용하고 있으며 자유무역론이라는 이론적 포장의 뒷배경을 이루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검역제도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한국의 수입농산물 검사검역제도에 대해서 문제시 할 수 있는 것는 미국이 가지고 있는 정치ㆍ경제ㆍ군사적인 '힘'이고 그 '힘'을 정당화하는 논리는 '자유무역론'이며 '자유무역론'을 법적ㆍ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기구는 새롭게 출범한 WTO체제인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세계경제질서는 '힘'을 가진 선진자본주의국들의 정치ㆍ경제적 상황에 따라 자유무역론으로부터 보호무역론으로 보호무역론으로부터 또 다시 자유무역론으로 그 논리를 바꾸어가면서 재편되어 온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이와 같은 주객관적인 조건하에 앞서 살펴본 바의 세계경제질서 흐름의 본질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선행하는 가운데 우리의 현실적 조건인 WTO체제하의 통상압력에 대응할 수 있는 '협상력'을 키우는 것이 과제로서 제기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UR협정문과 WTO협정및 부속서에 대한 국제적인 감각의 면밀한 분석을 통해서 가능할 수 있을 것이며 '협상력'제고의 목표는 '자국이익의 최대한 관철' '농업ㆍ농민이익의 최대한 관철'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전형진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연구원>

 

 

저작권자 © 충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