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0년대 우리나라 정치상황

 <글 싣는 순서>
 1. 역사란
 2. 제주 4ㆍ3항쟁
 3. 한국전쟁
 4. 60-70년대 정치상황
 5. 87년 '노동자대투쟁'

  이 글에선 5ㆍ16군사 쿠데타의 성격, 박정희 정권과 미국, 운동세력을 중심으로 60, 70년대 정치상황을 개괄해 보겠다. 먼저 박정희 정권과 미국과의 관계는 5ㆍ16군사쿠데타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결코 배제할 수 없기에 이러한 인식의 토대위에 5ㆍ16군사쿠데타의 성격을 살펴보자.
  5ㆍ16과 관련하여 현재 가장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이 미국의 개입여부, 개입정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논란이 있지만 불분명한 상태이다. 이는 5ㆍ16이후 지속된 군부정권으로 인한 자료의 통제 때문이기도 하다. 다만 그것의 진위여부를 떠나 쿠데타 직후, 주한유엔군 사령관과 주한 미국대사가 군사쿠데타에 대한 공개적 반대를 했다는 이유로 본국으로 송환, 다른 임지로 보내진 사실에서 미국의 의도는 드러난다. 그러므로 미국의 쿠데타에 대한 사전개입이나 사주의 여부보다는 쿠데타에 대한 미국의 입장과 쿠데타 주도세력이 미국으로부터 정통성을 인정받게 되는 경로를 살펴보는 것이 더 유용한 작업일 것이다.
  먼저 쿠데타의 지도부는 강경한 반공노선을 채택함으로써 미국의 확고한 지지를 얻었다. 실제로 군사정권의 혁명공략 제1조는 "반공을 제1의 국시로 삼는다"였다. 다음으로 5ㆍ16군사 쿠데타의 주도세력은 4월혁명 이후 분출하는 운동세력을 잠재우고 기존 50년대의 지배권력 계승자로서 원조경제에서 차관경제에로의 전환에 따른 종속적 자본축전의 관리ㆍ유지, 냉전체제하에서의 미국의 대소 전진 기지로써 분단상태의 지속, 진보적 정치 세력의 탄압등 폭력적 통제를 속성으로 하는 군부정권을 탄생시킬 수 밖에 없는 구조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 마지막으로 군사정권의 지도자와 미국은 정당성의 확보와 국민적 지지를 얻기위해 반공구호와 함께 세계자본주의에 종속된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전략을 채택한다. 이는 미국과 일본의 이해에 맞아떨어짐으로써 60년대에 있어 한일관계의 유착, 월남파병등으로 나타난다.
  한일 국교정상화는 처음부터 미국의 주도로 이루어졌으며 6ㆍ3항쟁을 야기시키며 국민적 지지없이 폭력과 불법으로, 굴욕적으로 이루어졌다. 한일국교정상화는 일본의 자본과 군대를 남한에 진출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로 동북아에서의 일본의 반혁명적 역할의 강화를 보장하기 위한 조치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일협정의 조인직후인 1965년에는 최근해임된 김숙희장관의 발언으로 관심을 모으는 한국군의 베트남파병동의안이 통과된다. 한국군의 파병에 대한 보상조치는 미국의 군사적 목표를 위해 필요한 것들이었으며, 미국의 정치ㆍ경제적 이해에도 부합하는 것이었다.
  박정희 정권은 한일국교 정상화와 베트남 파병을 계기로 거액의 정치자금을 손에 넣어 이것을 바탕으로 통치기반을 강화시키며 영구집권을 향해 나아간다.
  다음으로 70년대의 한국정치는 유신체제로 일관되어진다. 1960년대 말에 이르러 냉전구도의 이완과 전세계적인 데탕트분위기는 미국의 세계지배전략의 수정을 야기시킨다. 이러한 배경으로 닉슨독트린이 등장하고 냉전논리와 안보이데올로기를 통해 정권을 유지해 왔던 박정희 정권에게 이러한 변화는 위기상황으로 다가가게 된다. 또한 70년대 초반의 국내상황 또한 박정권에게 심각한 위기상황이었다.
  이러한 국내외적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박정권은 남북대화를 진전시키는 한편 내부적으로는 강화된 통제기구를 동원한 안보이데올로기의 강화를 통해 정권유지를 모색하게 되고 여기서 유신체제로의 이행 필요성이 도출된다.
  유신체제로의 이행에 있어서 미국과의 관련성을 살펴보자.
  당시 미국이 남북대화를 종용한 것은 미국의 새로운 전략에 따른 해외기지 정비작업에서 한반도의 긴장완화는 미군철수에 필수적이었으며, 또한 궁극적으로는 한반도에 '두 개의 한국'을 고착화시키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유신체제의 성립에 불간섭정책을 취하며 묵시적인 지지를 하게된다.
  결국 1972년 유신체제의 성립원인은 변화된 동북아 전략을 순조롭게 달성하기 위한 미국의 필요성과 1970년대 초 위기상황에 대응해서 정권을 계속 유지하고자 하는 박정희 정권의 필요성이 맞물려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대중운동 부분을 살펴보기로 하자. 70년대의 대중운동은 크게 노동운동, 농민운동, 통일운동, 학생운동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970년대 대중운동은 전국적 혹은 연대적인 규모는 아니었지만 자주적인 대중조직들을 결성하면서 지속적인 투쟁을 전개하는 단계로 이어지며 기층민중들이 한국변혁운동에 주요세력으로 자리잡게 된다. 1970년대 대중운동의 이러한 성장은 1979년 10월 박정희 정권의 몰락을 촉발시킨 부마항쟁으로 이어진다.
  지금까지 5.16군사쿠데타, 미국과의 관계, 유신체제, 대중운동 등을 살펴보며 1960.70년대 정치상황을 개괄해 보았다.

 오인숙
(사법ㆍ2 역사연구회 '횃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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